작년 10월~11월에는 가급적 많은 프로젝트를 들여다보기 위해 노력했다. 매일매일 ICO 정보가 모아져 있는 사이트들을 들어가서 어떤 프로젝트가 새로 나왔는지, 이 프로젝트는 어떻게 설계되어 있는지를 하나하나 보는 것이 퇴근 후의 주 업무였다.
그러나 그렇게 본 프로젝트들의 대부분은 사실 머리에 남지를 못했다. 대략적으로 해당 암호화폐가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지 정도만 기억할 뿐, 그 이상의 통찰력(Insight)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12월을 지나면서 부터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한 접근 방법을 바꿨다. 그 동안에는 개별 프로젝트로 접근했다면, 그 이후에는 전체 시장의 변화가 어떻게 될 지,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를 고민했고, 그렇다 보니 보는 프로젝트들도 주로 플랫폼 코인 위주로 바뀌었다. 아직 플랫폼이 제대로 갖춰지지 못한 상황에서 Dapp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 들여다 본 블록체인이 카르다노(Cardano)였다. 주변에서 카르다노와 에이다(Ada)에 대해 많이 물어보기도 했고, 3세대 코인이니 도쿄 올림픽이니 여러 용어가 나오는데 모르고 있을 수는 없다고 느꼈기도 했다.
그렇게 카르다노를 들여다 보면서 느낀 점은 IOHK팀이 블록체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카르다노가 앞으로 성공할지(혹은 정말 유망한 것인지)는 각 개인의 영역이나, 카르다노 프로젝트가 던져 주는 고민이 좋아 공유하고자 한다.
▣ Dapp은 제도권과 뗄레야 뗄 수 없다?
이전 글에서 Dapp을 Dapp이라고 부르기 민망하다고 얘기했지만, 용어의 혼동을 주지 않기 위해 일단 플랫폼 코인 위에서 블록체인을 통해 사업을 하는 어플리케이션을 Dapp이라고 칭하고자 한다.
카르다노가 던져주는 고민 중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Business로 돈을 벌어야 하는 Dapp 주체들이 제도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이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을 만들면서 제 3의 금융기관 없이, 자유롭게 금융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자 비트코인을 런칭했다고 써 놓았다. 사토시 나카모토의 궁극적 목표가 담겨있는 블록체인에서 이를 가능하게 해 줄 구체적 사업들이 바로 Dapp이다.
그런데, Dapp은 사업 주체가 있다. 이들은 돈을 벌어야 하고, 현실에서 그 돈으로 월급을 주어야 하며 은행과 거래를 하고, 세금을 내야 하는 등 일반적인 법인과 동일하게 행동해야 한다. 특히, DAO의 형태를 갖추지 않은 Dapp들은 더욱 이 부분들을 무시할 수 없다.
카르다노는 플랫폼 블록체인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Dapp 사업주들의 이러한 고민들을 고려하여, 자신들은 다른 블록체인 뿐만 아니라 제도권과도 상호운용(interoperability)을 할 수 있도록 앞으로 개발 해 나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예를 들어, ICO를 한다 하더라도 은행에서 ICO를 통해 조달된 자금의 출처를 정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할 것이고, KYC, Money Laundering 등에 대해서도 사업 주체가 하나하나 소명해야 하는 비용(시간, 돈 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다.
사업을 하는 주체로서는 카르다노의 이와 같은 모습은 더욱 플랫폼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그러나 분산화, 탈중앙화를 기본 철학으로 시작한 암호화폐가 제도권과의 긴밀한 협조를 하는 것이 정말 제대로 나아가는 방향인지는 좀 더 고민을 해야 할 부분이라고 본다. 어쩔 수 없이 제도권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이지만, Rule Maker가 만들어 놓은 Rule에 대항하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 순응해야 하는 것이 맞을까.
▣ 실제 소비자에 대한 고민은?
IPFS 프로토콜의 경우, 분산화된 파일 저장 시스템이라는 큰 장점을 가지고 있지만 데이터가 저장된 위치를 표현할 때, 해시값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네이버에 접속하려면 실제로는 아이피 주소를 입력해야 하나, 불편하기 때문에 'www.naver.com'만 입력해도 접속이 가능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IPFS도 이처럼 손쉽게 해당 데이터에 접근하기 위해 Naming System인 IPNS를 개발 중에 있다.
이와 같이 사용자들이 사용하기 익숙하지 않은 부분들이 블록체인에는 너무 많다. 최근에 지인의 EOS Key 등록을 도와준 적이 있었는데, 사실 블록체인이나 암호화폐를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다른 누군가의 설명 없이는 간단한 Key Register조차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지갑 생성의 경우에도 개인키를 저장하지 않아 몇번이나 다시 만든 사람을 봤을 정도로 아직 사람들은 익숙하지 않다. 개인키를 이야기하면 더 하다. 이 긴 키를 누가 외울 수 있을까. 외운다 하더라도 입력하는데 한 세월 걸릴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카르다노는 사용자들이 손쉽게 블록체인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 중에 있다.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개발이지만, 사실 플랫폼으로 사용되기 위해서는 '투자자'들이 아니라 '실제 사용자'들이 사용해야 한다. 남녀노소 누구나 사용하기 위해서는 손쉽고 편해야 함이 기본이데, 아직 블록체인은 그 정도 수준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은 TPS조차 제대로 뽑지 못하는 블록체인이 대다수이기 때문에 이 이슈는 뒷전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개발 단계에서 해당 요소를 고려하는 프로젝트와 그렇지 않은 프로젝트는 사람에 대한 이해 측면에서 큰 차이가 나타난다고 생각한다.
정말 기술력만으로 모든 것이 좌우되는 세상일까? 혹시 지금 확장성, 수수료, 상호운영성 등과 같은 기술적 요소에만 빠져 또 다른 중요한 요소인 '소비자'에 대한 고민을 블록체인 업계가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
▣ 거버넌스는 어디로 가는가?
카르다노 프로젝트를 보면서 한번 더 감명을 받았던 것은, 이들은 현재 개발을 주도하고 있는 개발자들이 프로젝트에서 제외된다 하더라도, 그리고 막대한 자본력을 가진 사람들이 에이다를 대량으로 매집한다 하더라도 카르다노가 분산화된 형태로 개발/운영/발전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작년부터 그랬지만, 이제 막 플랫폼 코인들이 등장하고 본격적으로 개발을 하기 시작하면서 당연히 떠오르는 이슈들은 위에서 언급한 확장성, 상호운영성 등이었으며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정작 블록체인의 기본적인 본연의 모습은 분산화된 거버넌스에 있다.
그런데 거버넌스 구축은 그렇게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기술은 만든 후, 테스트넷을 통해 검증이 가능하나 거버넌스는 사람과 사람 간의 사회적 합의에 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실제 시도를 해보지 않은 이상 검증이 어렵다.
오히려 이 부분에서 더 많은 논의가 되어야 하고, 더 많은 고민이 있어야 진정한 분산화와 탈중앙화된 블록체인들이 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현재 있는 중앙화 된 기관들과 다를 바 없다.
카르다노 프로젝트를 보면서, 카르다노 개발진들이 굉장히 다양한 측면에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물론 이와 같은 고민에 대해 카르다노 측이 내놓은 답이 100% 맞다고 말 할 수는 없다.(틀렸다고 판단할 수도 없다)
그러나 이와 같은 고민들은 앞으로 블록체인 프로젝트들이 계속해서 자리를 잡아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고민이고, 프로젝트별로 자신들의 철학에 맞는 답을 내 놓아야 하는 질문들이다. 이는 단순 개발자의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다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 블록체인의 의의인 만큼, 참여자들인 우리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