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연민속 우리 모습 「상실의 시대」에 대한 생각없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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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광고가 생각난다. 버스에서 한 여자가 상실의 시대를 읽고 있고, 그 여성에게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던 남자는 어떻게 말을 걸지 고민하다가 검색을 하고 이 책의 원제를 말하며 말을 건다.
" 노르웨이의 숲엔 가보셨나요?" 하고.

광고 덕분인지 이 책은 유명해졌고, 국어교과서에 실린 야스나리의「설국」외에는 전혀 읽어본 적도 관심도 없었던 일본문학의 하루키라는 작가의 책을 읽게 되었었다.
그 때가 20대 초반이었던 것 같다.

일본이 한국보다 10년 앞서간다고 했던가? 나보다 연배가 있는, 그러니까 소위 운동권 세대는 이해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해봐도 시대흐름상 내 20대는 이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사랑이란 걸 한 번도 해본적이 없는 나로서는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감정들. 재즈광인 하루키가 늘어놓는 재즈가수 이름과 노래들... 그냥 글자를 읽었지 내용을 이해하지는 못했었다. 그렇게 이 책은 잊혀져갔다.

얼마전 겨울, 책장을 정리하다가 어느 덧 누렇게 바랜 이책을 다시 꺼내들었다.

비행기 안에서 흘러나오는 비틀즈의 노래를 통해 과거로 들어가는 주인공...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오마주 같은 느낌을 받는다.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또는 노르웨이산 가구)」
는 홍차에 적신 마들렌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이 미치자 다시 이와이슌지의 영화「러브레터」가 떠오른다. 마지막 장면에서 여학생들이 여자 후지이 이츠키에게 보여준 남자 후지이 이츠키의 그림이 있는 독서카드, 그 책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였다.

잃어버린 시간속에서 우리는 그 것을 추억하든지, 아쉬움을 극복하든지, 그 속에서 헤매며 빠져나오지 못하기도 한다.

삼십대의 중반을 넘기고 40대를 바라보는 지금, 이 시점이 바로 상실했던 지난 난들을 되돌아보는 시기가 아닐까...

이 소설 속의 인물들은 모두 살아있다. 꼭 주인공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등장인물 그 누구에게라도 감정이입 할 수 있다.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언급된 재즈가수들의 노래를 찾아 들어보며, 하루키와 공감해보려 시도해본다. 맥주와 함께 때론 커피와 함께. 확실히 재즈라는 음악은 감성에 빠지게 하는 듯 하다.

그 무엇보다도 20대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여러 섹슈얼한 대사와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우울증이란 것에 공감할 수 있을만큼 성숙해졌고, 그리움과 상실감 그리고 생존욕구와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것이 사람이라는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통찰한 나이쯤되면 이 책은 새롭게 다가온다.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주인공이 아무 이유없이 달린것 처럼, 이 책 주인공이 아무 생각없이 떠돌아 다닌것처럼
우리는 아무것도 하기싫고 아무 곳에서나 되는대로 살아보고 싶은 욕구를 늘 가슴에 두고 사는 것도 알고있기에 나이가 들어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다.

나와 같이 그 어떤 상실에 대한 기억을 함께 향유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어떤 동질감을 느끼리라 기대해보며...

생각없는 생각같은 생각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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