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가 살아야 스팀잇이 산다

저는 인간사 대부분 문제의 해결책은 짬짜면이라고 믿기 때문에, 굳이 짜장면과 짬뽕 중에 하나를 골라야만 하는 시간 소모적 논쟁에는 참여하지 않는 편입니다.

다만, 암묵적으로 서로 건드리면 안되는 자존심의 영역이 있긴 한데 예를 들면 저는 탕수육 찍먹파의 강력한 지지자로써 부먹파와는 같은 밥상에서 함께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에 들었던, 이제 인터넷으로 잘 찾아지지도 않는 어떤 이야기가 기억 납니다. 어떤 부자가 가난한 마을에 아침마다 1만원이 들어 있는 돈봉투를 집집 마다 꽂아두기 시작합니다.

처음 몇일은 사람들이 이 부자의 의도를 의심했지만, 이런 선행이 계속되자 사람들은 새벽같이 나와서 감사의 인사를 하기도 하고 작지만 보답의 선물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이런 선행이 계속되자 열렬했던 사람들의 반응은 점점 식어갔습니다. 아침에 부자를 맞아주는 사람은 거의 없어졌습니다.

하루는 다른 급한 일로 돈 봉투를 전달하지 못했던 이 부자는 다음 날 2만원씩 봉투에 넣어 자신을 애타게 기다릴 사람들이 사는 마을로 향했습니다.

오랜만에 많은 인파가 아침부터 몰려 있었습니다. 역시 나를 기다려 주었구나라는 생각에 흐뭇했던 부자는 갑자기 달려온 누군가에 의해 멱살이 잡히고 맙니다.

"내 돈 어딨어 ?"

사람들은 자신이 늘상 받아왔던 자신의 돈 1만원을 주지 않는 부자에 대한 증오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 뒤로 매일 나타나던 1만원짜리 돈봉투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저는 대역폭 제한으로 댓글 몇개도 남기기 힘든 신규 유저들의 정착을 위해 @virus707님이 댓가없이 자신의 보팅을 나누어 주시는 짱짱맨 프로젝트를 보고 감동을 받았는데, 과연 도움을 받고 있는 수백 명의 사람들 중에 몇 퍼센트가 그 분의 글에 댓글을 달거나 보팅을 하시는지 조금 의문입니다.

이 세상에 당연한 것이 없습니다. 이런 분이 힘내시도록 열광적인 지지와 성원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들만의 친목행위나 아부 등으로 오해를 받을까봐 스팀파워 높으신 분들의 글에는 의도적으로 댓글을 달지 않는데, 저도 친하게 지내고 싶은 분들이 엄청 많습니다. 태연하게 관심없는 척 할 뿐입니다. 다만, 머리 숱이 없는 것이 확실한 어느 분의 글에는 가끔씩 동질감의 확인 차원에서 댓글을 남기곤 합니다. 양갈래 머리 소녀의 아이콘이라니 믿을 수 없습니다.

@virus707님은 한국에서 뵐 기회가 생기면 100g에 20만원짜리 와규를 사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후기를 읽어보니 이 와규는 10g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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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얘기도 생각납니다.

2005년경 동영상을 올리고 공유할 수 있는 사이트가 하나 생겼습니다. 꽤나 인기를 끌면서 많은 유저들이 몰렸는데 대부분은 시시껄렁한 저화질의 동영상들이었고 그나마도 늘어나는 사용자를 감당하지 못해 수시로 버퍼링이 걸리는 최악의 웹사이트였습니다. 전혀 수익 모델이 없어 적자는 지속되었고 망하기 직전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흑기사 구글이 나타나 무려 2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투자하여 그 사이트를 인수합니다. 이후로도 천문학적인 투자를 지속하면서 밑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많은 비판에 직면했습니다.

오늘 날 그 망하기 직전의 듣보잡 사이트는 이러한 구글의 하드캐리로 100조원의 기업 가치와 10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튜브의 얘기입니다.

작년 유튜브의 광고 수익은 페이스북이나 아마존과 같은 다른 유명한 플랫폼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옛날의 시시껄렁한 유튜브가 아닙니다. 어쩌면 인류 최초의, 전세계를 아우르는 자료의 기록 보관소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아이디어만으로는 구현을 하지 못하고 걸걸 대다가 자본을 만나 인류의 희망 차원까지 발전한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합니다.

저는 제가 좋아하는 유튜버의 영상을 시청할 때면 처음이나 중간에 광고가 나오더라도 넘기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야 광고 수익의 많은 부분이 저자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제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성의라고 생각해서 입니다.

불과 몇달 전 전업 유튜버를 선언한 Data Dash의 경우 이제 거의 30만의 구독자를 거느린 세계 최대규모의 가상화폐 채널이 되었습니다. 요즘 좀 구설수가 있긴 하지만, 아마 유튜브만으로도 월 수천만원 이상은 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던가 말던가 저는 광고를 계속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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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스팀잇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정확히는 스팀잇과 스팀은 같은 것이 아니지만, 현재 시점에서는 같은 운명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글을 게시하고 "좋아요"를 받으면 지급되는 돈의 원천은 어디일까요 ? 어느 부자가 몰래 돈을 꽂아 놓고 가는 걸까요 ? 아니면 플랫폼 사업자가 끌어온 광고 수익의 일부를 지급하는 걸까요 ?

현재는 전자에 가깝습니다. 스팀잇의 포스팅 수익은 순전히 스팀파워를 구매한 투자자의 "기부"로 발생합니다.

투표로 선정된 증인이 채굴자의 역할을 겸임합니다. 그렇게 채굴된 스팀의 일부는 채굴자와 스팀파워 보유자에게 배정되고, 대부분의 스팀은 컨텐츠 제작자와 추천인에게 75% : 25%의 비율로 배분됩니다.

즉, 기존 스팀을 기반하여 인플레이션 개념으로 스팀이 늘어나며, 이렇게 늘어난 스팀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배분될지는 스팀파워 보유자가 "좋아요"를 눌러 결정합니다.

본인이 작가를 겸하는 경우에는 하루에 한개 혹은 두개의 포스팅을 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므로 셀프 보팅 등을 통해 대략 25~50% 정도는 본인에게, 나머지 50~75%는 본인이 좋아하는 작가에게 스팀을 "기부"할 수 있도록 설계 단계에서 고려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이러한 기부를 통하여 아무런 자본 투자없이도 자신의 시간과 재능을 투자하는 작가들은 금전적 보상을 받으며, 이 보상이 늘어날수록 더 많은 작가들과 그들의 팬들이 스팀잇으로 유입되어 트래픽이 늘어나면 사업의 가능성이 늘어나고 스팀의 가치가 올라 가면서 모두가 윈윈하는 게임이 됩니다.

그런데, 이런 윈윈 게임이 발생할 경우 가장 큰 이익을 보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 모든 어뷰징을 동원하여 자신의 스팀파워 100%를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사람들입니다.

기부가 없이는 커뮤니티는 침몰하게 되어 있습니다. 스팀의 수요는 줄어들고 가격은 내려가며 작가와 팬들은 떠나며 투자자는 망하므로 적정량의 기부는 어느 정도 강요되는 측면도 있습니다. 그런데, 스팀잇이 흥할수록 기부를 하지 않는 사람이 가장 큰 이득을 보게 되어 있습니다.

이 것이 현재 스팀잇의 풀기 어려운 아이러니입니다. KR 커뮤니티는 너무 청정하고 고퀄리티의 글들이 넘쳐서 조만간 페이스북을 능가할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그러다보니 저의 허접한 글이 트렌딩에 두 개나 오르는 날에는 혹시라도 누가 될까봐 포스팅을 하루 쉽니다.

그런데, 이런 환경이 투자자에게는 불편한지 고래 계정이 거의 없다는 것도 아이러니입니다. 몇분 계시지만 기부를 넘어 거의 희생만 하고 계십니다.

반면 해외 채널들을 보면 약간 고개가 갸우뚱합니다.

아래는 최근 제가 올린 포스팅 중에 조회수가 높았던 글입니다. 5만 5천회의 조회수, 447개의 추천, 그리고 $140 달러의 보상.

아래는 어제 모 채널 트렌딩에 올랐던 글입니다. "제 이름은 데이빗입니다, 잇힝~" 같은 류의 글에 $359 달러의 보상이 찍혀 있습니다. 신규 계정에 보팅 봇을 이용해 보상을 높인 것인데, 이 글 뒤로 자신이 어떻게 스팀잇에서 성공했는지 성공 스토리도 포스팅합니다. 조회수 20 인데 보상이 $900에 육박합니다. 물론 보팅 봇에 의한 성공입니다.

어떤 글은 조회수가 1,000인데 추천수가 1,100입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매일 트렌딩에 오르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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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런 해외 채널의 악용 사례에도 불구하고, 스팀잇이란 재능과 열정을 가진 이들의 꿈을 응원하는 공간으로써의 가능성을 높이 보고 있습니다.

20여년 전에 배운 내용을 더듬더듬 기억해 썰만 푸는 저 같은 사람도 있지만, 엄청난 자료 조사와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엄청난 고퀄리티의 글을 쓰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런 글에 $20의 보상이 찍혀 있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이런걸 최저임금의 개념으로 접근하시는 댓글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요즘 최저시급이 7천원이 안되는 것으로 압니다. 하루 8시간 일하면 5.6만원입니다. 15년차 엔지니어인 저의 경우만 해도 시급이 5.6만원 이상입니다. 일당이 아니라 시급입니다. 3D 업종에서 오랜 경험과 전문성을 가진 사람에게는 응당 그에 상응하는 댓가가 주워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는 글이라면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이런 쩌는 작가님들을 응원하고자 부계정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드린 바 있습니다. 좀더 여력이 되면 수줍음이 많으셔서 글은 올리지 못하고 기부만 하시는 분들께도 의미없지만 성의의 보팅을 했으면 합니다.

본래는 어느 정도 운영을 해보고 간지남으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부계정 가입 승인을 기다리지 못해 7 스팀을 주고 계정을 만들었더니 누가 무슨 계정을 만들었는지 기록에 남더군요. 블럭체인의 무서움입니다. 혹시라도 이상한 의도로 오해하실까봐 미리 밝혔습니다.

$5~10 정도 보팅할 수 있는 겨우 플랑크톤 부스터 수준의 계정이 될 예정입니다. 스팀 시세가 가장 저렴한 Poloniex 거래소에서 샀더니 지갑이 닫혀있어서 충전은 아직 못하고 있습니다. 싼게 비지떡이라는 걸 다시 느끼고 있습니다.

최근 스팀잇의 붐은 한국 업비트 거래소를 통한 스팀의 시세 상승과 KR 커뮤니티를 통한 엄청난 신규 유저의 유입이 그 직접적인 원인입니다. 해외 채널의 어뷰저들만 잘 관리된다면 스팀은 SMT가 아니더라도 밝은 미래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오늘은 생각이 아직 정리되지 못했는지 글이 많이 길어졌습니다. 늘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p.s. 우연히 예전에 잠시 흥했던 어느 그룹이 생각났습니다. 실력이 출중한 멤버들을 데리고 희한한 컨셉으로 대성공한 드문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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