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서 일본인처럼 보이는 한 교수가 약간 어눌한 한국어로 독도 문제에 대해 논리 정연한 의견을 피력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가 바로 세종대 독도종합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는 호사카 유지 교수이다.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학 공학부를 졸업한 그는 1988년 고려대 정외과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조선, 만주, 대만에 관한 일본의 동화정책을 연구했다. 1998년부터 세종대 교수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독도 문제를 연구하기 시작하였고 2015년에는 일본계 인사로는 최초로 독립기념관 비상임이사로 임명되었다.
일본계? 그렇다. 한국에 온 지 15년이 되는 2003년에 한국으로 국적을 바꾸었으니 이제는 어엿한 한국인이다. 그의 강연에서 한국을 '우리나라'라고 부를 때는 어떠한 가식도 없이 가슴 뭉클한 감동이 느껴진다.
2016년 8월에 발간된 이 책에는 독도를 둘러싼 역사와 갈등, 독도가 왜 한국 땅인가에 대한 정연한 논리 그리고 영토/영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에 대한 전문가적 식견이 담겨져 있다.
1장 독도를 둘러싼 역사
2장 독도를 둘러싼 갈등
3장 독도는 왜 한국 땅인가
4장 영토 문제를 움직이는 역사의 힘
독도가 우리 영토임을 증명하는 수많은 문헌들이 우리쪽 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많이 있다. 이런 문헌들은 여러 채널로 많이 소개되었기 때문에 독도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이 왜 독도에 집착하기 시작하였는지에 대한 역사적 사실과 이유는 잘 모를 것이다.
1903년부터 독도 부근에서 강치잡이를 해오던 일본인들이 있었다. 그 중 시마네현 오키섬에 살던 어부 나카이 요자부로는 1904년 9월 강치잡이를 독점할 생각으로 대한제국이 자신에게 단독으로 독도를 빌려줄 것을 요청해 달라고 일본 정부에 부탁했다. 이 이야기를 전해들은 해군성 수로부장인 기모쓰케 가네유키는 아예 독도를 일본 영토로 편입하려는 욕심을 갖게 되었다.
1904년 2월에 시작된 러일전쟁 이전에 일본은 독도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다. 일본 정부 차원에서는 조선의 영토라고 인정하고 있었고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는 그 존재자체도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독도 문제는 1904년 9월에 있었던 바로 이 사건을 계기로 시작된 것이다.
1919년 3.1운동을 경험한 일본은 소위 문화정책이라고 하면서 조선인들 사이에 친일파를 만들기 시작한다. 조선인들끼리 반목하게 만들어 그들의 야욕을 성취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전략은 해방이 된 후 지금까지도 주효하게 먹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독도, 종군위안부 등 일본과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는 일본의 극우세력과 한국의 친일파들이 있다고 봐야한다. 박근혜정부에서 위안부 문제를 졸속으로 종결하고자 했던 것은 바로 그들의 정치 기반이 1세기전 친일파들이 만들어 준 것이기 때문이다.
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의 노력 또한 매우 중요하다. 일본엔 아베와 같은 극우 정치인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호사카 유지 교수와 같은 지식인들도 많이 있다. 그동안 우리가 이러한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과 얼마나 유대관계를 맺어왔는지 돌이켜 보면 참으로 반성할 일들이 많지 않나 싶다.
ps: 호사카 유지 교수의 다른 저서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일본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