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사람이 꿈에 호랑나비가 되어 즐겁게 훨훨 날아다니다가 깨어보니 놀랍게도 사람이었다. 사람이 꿈에 나비로 변한 것인지 나비가 꿈에 사람으로 변한 것인지 의심스러웠고, 과연 어느 것이 꿈이고 어느 것이 현실인지 알 수 없었다. 사람으로서 나비의 꿈을 꾸었다면 나비는 곧 사람 꿈 속의 사물이고, 나비로서 사람의 꿈을 꾸었다면 사람은 나비의 꿈속 사물일 것이니, 사람과 나비는 다 같은 꿈속의 환상일 뿐이다. 어느것이 꿈이고 어느 것이 현실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는가? 그 가운데 스스로 꿈꾸지 않는 것이 존재하고 있으니, 일찍이 사람도 아니고 나비도 아닌 것이다. 꿈 그리고 깨달음
나비 꿈을 꾸다가 깬 사람이 생각을 바꾸어서 꿈 속의 나비가 지금 사람 꿈을 꾼 것이 아닌지를 반문하는 장자의 유명한 호접몽 이야기이다. 여기서 화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질문한다.
어느 것이 현실인지 구분할 필요가 있는가?
꿈에서 깨어난 현실도 꿈일 수 있다면 꿈이나 현실이나 꾸어서 살아가는 삶이란 이야기이다. 꿈도 현실도 진정한 내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완전한 소유의 삶도 없다는 뜻이니 어차피 빌려서 사는 인생 아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 내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그런데 남의 것 빌려서 아무렇게 쓰면 뒷날 그것에 대한 응징을 어떻게든 받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다. 그러니까 인생 아무렇게 살면 고대로 돌려받는 것이 카르마의 법칙,
그런데 빌려 사는 그 삶을 누구한테 빌린 것일까? 뭔지 모르는 그 무엇한테 빌린 것인데 빌린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하느님일까? 아니면 나의 마음일까?
주역에서는 그냥 변화라고 퉁친다.
生生之謂易
태어나고 태어면서 가는 것을 변화라고 한다.
화자는 그 가운데 스스로 꿈꾸지 않는 것이 존재하고 있으니, 일찍이 사람도 아니고 나비도 아닌 것이라고 했다.
이거 알게되면 나는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나비여도 상관없고 사람이여도 상관 없는 것처럼 부귀빈천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고 그냥 즐길수 있으려나?
술몽쇄언(述夢瑣言)
프롤로그 | 눈뜨고 꾸는 꿈(開眼) | 스스로 불러옴(自求) | 징조와 경험(徵驗) | 마음에 물음(問心) | 뒤바뀜(轉倒) | 진실한 것을 인정함(認眞) | 도장 자국(印影) | 스스로 의심함(自疑) | 범위에 한정됨(圈局) | 무념(無念) | 어둠과 받아들임[昧受] | 항상함을 앎[知常] | 업과 명[業命]
몽념수필(夢念隨筆)
자각몽 연습을 시작하며 | 쓰끼다시 | 수면마비| 업과 명[業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