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과 조건[因緣]

속담에 "마음에 있는 것은 취중에 드러나고, 욕망에 품고 있는 것은 꿈에서 나타난다."고 한다. 꿈이 비록 텅 빈 환상이라고 하나 또한 반드시 원인이 있어서 이루어진다. 하물며 인생의 번영과 쇠퇴함에 어찌 원인이 없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전생의 인연을 알고자 한다면 금생에 받은 것이 그것이다. 내세의 인연을 알고자 한다면 금생에 짓는 것이 그것이다."라고 하였다. 세상일에서 그것을 관찰해 보면, 사람이 운을 타고 위세를 얻으면 복과 권세를 함부로 부린다. 턱으로 가리켜 시키고 기세를 부려도 감히 원망하지 못한다. 그 운이 바뀌고 위세가 가버리면 오랜 원한과 빚이 때를 틈타 모여든다. 세상 사람들은 단지 그때의 위세의 변화만을 알고 마음이 끓고 식으니, 그 유래하는 바가 멀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진실로 생각이 능히 이에 미친다면 무엇을 원망하고 무엇을 탓할 것인가? 불교를 사랑한 조선 유학자의 선어록

우리가 안다고 해서 정말로 아는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이해했다고 해서 정말로 이해한 것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옳다고 생각한 것이 정말로 옳은 것인지 얼마나 확신할 수 있을까? 틀리다고 생각 한것이 정말로 틀린 것인지도 얼마나 확신할 수 있을까? 불교의 이론을 빌리자면 모두 인연에 의해서 안다고 하고 이해한다고 하고 옳다고 하고 그르다고 할 뿐이다.

그 유래하는 바가 멀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
不思其所由來遠矣

내 마음 속 흔적이 지워졌다고 해서 정말로 지워지지 않는단다. 고작해야 표층의식에 새겨진 기억이 희미해졌을 뿐이란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말이 가장 무섭고 두렵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나의 행동은 실재로 무섭고 두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인연법을 알지도 이해하지도 옳다고도 틀리다고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불교에서는 단정지어 말한다.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에 의해서 일어나고 사라질 뿐이다.

여기에는 어떠한 옳고 그르고의 가치판단이 없다.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나도 안이하게 간과하고 있다.


Tungevaag, Raaban - Samsara


술몽쇄언(述夢瑣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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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념수필(夢念隨筆)


자각몽 연습을 시작하며 | 쓰끼다시 | 수면마비| 업과 명[業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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