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늘 책을 곁에 두시는 어머니를 따라 주말마다 광화문을 순례했다. 서점가들을. 동대문 헌책방거리부터 정동 구세군회관까지 이어지는 길은 소년에겐 인생의 길 그 자체이다. 책 속에 묻혀 사는 삶. 책들 사이로 걷는 삶. 그건 소년의 성향과 잘 맞았다. 소년은 문자 중독에라도 걸린 양 늘 책을 집어 들었다. 잠 안 자고 책 읽는다고 아버지에게 혼난 기억이 숱하다. 커서 생각해보니 애들은 일찍 잘 필요가 있었다. 부모님의 밤을 위해.
읽다읽다 읽을 게 없으면 백과사전을 1권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친구네 집에 놀러 가서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그 집 서가를 훑는 일이었다. 그러다 보지 않은 책, 끌리는 책이 있으면 여지없이 '나 이거 빌려 가도 돼?'하는 것이다. 그러면 친구는 '엄마 얘 이거 빌려 가도 돼?' 하는 것이다. 대부분 빌려주었지만, 간혹 전집류의 경우 이가 빠진다며 안 빌려주는 친구의 부모님을 만나면 그게 그렇게 못마땅했다. 그리고 그게 그렇게 읽고 싶었다.
무슨 책들을 읽었는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올해 책을 몇 권이나 읽었는지 물으실 때 소년은 무심코 '백 권이요'했다. 정말 백 권을 읽었는지는 소년도 모르고 선생님도 모른다. 다만 선생님은 반신반의하며 '저엉~말?'해주셨다. 그리고 소년은 백과사전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아 하나 더 있다. 아카데미. (이건 등판에 아카데미라고 쓰여진 티셔츠를 입고 다닌 통에 얻게 된 별명이다.) 그때에 소년은 남산 밑자락 해방촌에 살고 있었는데 산을 넘으면 그곳에 닿았다. 광화문.
광화문 그 거리에 소년의 유년 시절과 학창 시절이 모두 담겨있다. 동쪽으로는 동대문 헌책방거리와 대학로로부터 서쪽으로는 정동, 북쪽으로는 안국동 정독도서관까지. 해방촌으로부터 동서남북으로 뻗은 이곳을 유년시절과 학창 시절 내내 헤집고 다녔다. 물론 언제나 루트는 서점들이었고.
사춘기가 된 소년은 해방촌을 떠나 광화문에서 꽤나 멀리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러나 운명은 자석처럼 소년을 광화문 근처에까지 끌어다 놓았다. 집 앞의 학교를 두고 버스를 타고 한참이나 가야 하는, 대학로가 내려다보이는 학교에 배정을 받았다. 학교에서 단 3명만이. 다시 돌아온 소년이 방과 후 갈 곳은 당연하다. 정독 도서관 담벼락 너머로 바라다보이던 경복궁과 광화문. 그리고 바다로 간 목마와 아프리카여 안녕. 잊을 수 없는 기억들. 광화문 그곳이 그리운 소년은 성인이 되어서 집을 잃고 갈 곳이 없어졌을 때에도 그곳이 내려다보이는 삼청동 언덕 위로 올라갔다. 노숙을 할 때에도 광화문을 떠날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아르바이트를 한 곳도 광화문의 서점이었고 마지막으로 직장생활을 한 곳도 남대문 언저리였으니 그 인연은 참 질기고 아련하다.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 달려간 정동 구세군회관의 삐그덕 거리는 마룻바닥 소리와 시청 앞 광장이 생겨나고 아마도 처음이었을 콘서트를 기획한 일은 두고두고 가슴에 남아있다.
얼마 전, 어떤 설문에서 집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는가? 묻기에 대뜸 '사색과 광화문'이라고 적었다. 지금 생각하니 하나를 빼먹었다. 그리고 책. 광화문 네거리에 쏟아지던 석양과 풍겨나오던 책 냄새를 소년은 언제나 기억하고 있다.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 덮인 조그만 교회당
향긋한 오월의 꽃향기가
가슴 깊이 그리워지면
눈 내린 광화문 네거리 이곳에
이렇게 다시 찾아와요.
소년은 그 책들 사이에서 운명을 발견하고 마음의 소리를 따라 달리고 달려 결국 마법사가 되었다. 그리고 젊은 마법사는 '마법사는 ridiculous 해야 하며 그것을 두려워해선 안된다'는 마스터의 가르침을 따라 세상을 ridiculous 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그 시선으로 미래로 미래로 나아가기로 했다. 그것이 수련 과정의 마법사에게 우주가 내린 미션이었다. 에너지는 충분했다. 광화문에서 축적한 마음의 에너지, 그것이면 되었다.
동서남북으로 뻗은 광화문 네거리에서 처음으로 선택한 방향은 동쪽이다. 젊은 마법사의 동방견문록. 현해탄을 넘고 태평양을 건너 동쪽으로 동쪽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매일매일의 현장을 기록했다. 이 책은 그래서 마법사 멀린의 동방견문록이다. 개와 소년의 시선으로 기존의 고정된 율법의 담장을 훌쩍 뛰어넘는 ‘馬法士’이자, 지배적 시선을 과감히 탈피하여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 삶과 인생의 방방곡곡을 열심히 헤집고 다니고 있는 개새끼소년의 위험한 여행기이다.
'이것은 어쩌면 고함이었는지 모른다. 동방을 향해 세상을 달리며 “야, 이 새끼들아 똑바로 살아라. 내가 새소년이다.” 선언을 한 것이다. 태평양을 건너고 아메리카 대륙을 가로질러 동쪽의 끝 가장 높은 곳까지 치달아, 여전히 나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너희들의 개새끼이며, 대지의 어머니가 낳은 새소년 ‘Ridiculous boy’ 임을 선언하고 호통치고 고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나는 멈추지 않고 성장하여 진정한 어른이 되겠다고 하늘의 신과 대지의 어머니께 서원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7년 만에 오월의 꽃향기가 가득 퍼져 나가고 있는 광화문, 그곳에 다시 섰다. 그때에는 알지 못했지만, 그로부터 4년이 지나 총수를 찾아 나선 일, 'Everything이 아니라면 이번 생은 여기까지'라며 교토로 소환되었던 일, 그리고 눈물을 쏟으며 함께 걸어가자고 써 내려간 모든 기록들이 바로 이 광화문 눈 덮인 교회당 옆 정동길에서 기록되었다. 이 기록 역시. 광화문에서 시작해 동쪽으로 동쪽으로 세상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온 광화문에서 너를 찾은 것이다. 그대와 만난 것이다. [스팀시티]를 미래에서 21세기로 가져다 놓은 것이다. 누가? 개새끼소년이.
그대에게 권하고 싶다. 나의 책이 아닌 마법사의 동방견문록을, 광화문에서 자라난 개새끼소년의 용감한 기록을. 그리고 마법의 도시 [스팀시티]를 태동시킨 직관의 원형을. 그 모든 것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이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개새끼소년 Ridiculous boy>의 예약판매를 시작합니다.
[위즈덤 레이스 + Music100] 06. 광화문 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