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엽장군이 낙동강 방어선에서 가장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 당시 1사단의 전공이 그리 특별하지 않다고 하는 증거가 있다. 작전상황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것은 작전상황도이다.
몇년전에 한국전쟁 초기 상황에 관한 보고서를 입수한 적이 있다. 영국의 문서고에서 확보했다고 하는데 유감스럽게도 출처가 정확하지 않다.
첫째장은 다음과 같다.
라디오 방송을 위한 자료로 만들어진 것 같은데 S.L. Andree 란 사람이 만들었다. 여기에서 당시 낙동강 전선의 상황을 전반적으로 알 수 있는 상황도가 있다.
8월 1일부터 8월 15일 까지의 상황은 그림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한국군이 담당하던 지역은 북한군 5사단과 12사단이 주로 공격하던 안강기계와 포항전선이 가장 심각했다.미군이 담당하던 지역에서는 북한군 6사단이 공격하던 마산 진동 지역전투가 가장 심각했다.
북한군은 당시 전정면으로 그냥 밀고 들어온 것이 아니라 양쪽으로 포위공격을 실시한 것이다. 이 당시 경부가도는 견제하는 역할을 했다.
위의 상황도는 8월 15일부터 8월 31일까지의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군은 한국군이 담당하던 지역에서는 여전히 안강기계 방향으로 공격을 하는 한편, 영천지역에 공격을 집중하고 있다. 미군이 담당하던 서쪽지역에는 여전히 마산지역과 영산지역을 집중해서 공격했다. 북한군은 전력을 다해 마산지역을 뚫고 부산을 점령하고자 했다.
다부동 전투는 이시기에 벌여졌다. 위의 부분에 보이는 다부동 전투는 한국군 제1사단 좌측 연대가 뚫려서 북괴군 일부가 다부동까지 깊숙하게 들어온 상황이었다. 백선엽이 내가 돌격하겠으니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고 했다는 것은 이 상황이었다. 사실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 안했는지 알수는 없는 것이지만, 그 상황은 제1사단의 방어작전이 실패했던 것이다. 다부동을 뚫고 들어온 북괴군은 강력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이 상황도만 보아도 다부동 전투가 낙동강 전선의 아주 일부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군은 북한군 주력이 집중해서 내려온 안강 기계 방면과 영천지역이 가장 심각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백선엽은 마치 낙동강 방어선을 혼자 지킨 것 처럼 전사를 바꾸어 놓았다.
낙동강 전선에서 싸운 사람중에서 구국의 영웅 아닌 사람 아무도 없었다. 살아있는 사람중에서 스스로 전쟁영웅이라고 하는 자는 파렴치하다. 진정한 전쟁영웅은 전쟁터에서 살아 남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대로된 나라들은 모두 전쟁터에서 이름없이 사라져간 무명용사를 최고의 영웅으로 치는 법이다.
전쟁터에서 살아 남아 스스로 영웅인체 하는 것은 산화한 전우를 보아서 할짓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은 파렴치한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