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일생동안 단 하나의 작품만을 작업한다면 허무를 못 느낄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그리는 그림은 언젠가는 완성되기 마련이다. 그토록 염원하고 기다렸던 작품의 완성 후에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완성된 작품 옆에 작가만 홀로, 외롭게 덩그러니 남아있게 되어 버린다. 곧 현실에서 초라하고 무능력한 내 존재가 발견되고 그것을 숨기기 위해 또다시 다른 작업을 그려야 하는 굴레에 빠지게 된다. 작가의 정체성은 '작품'이 아니라 '작업하는 순간'이기 때문에, 즉 명사가 아닌 동사이기 때문이다. 아마 많은 작가들은 이렇게 생각보다는 낭만적이지 않는 방식으로 작업을 이어가는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