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의 요건
국가는 커뮤니티가 맞습니다.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와 권리가 있고 권한과 책임이 있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커뮤니티라고 할 때는 이것들이 따라와야 하는 겁니다. 그럼 누구에게 의무를 지우고 누구에게 권리를 주겠습니까? 국민입니다. 주민등록을 가졌건 여권을 가졌건, 국가의 영토 안에서 태어났거나 국민의 자녀로서 국적을 취득했거나, 입회가 있고 탈퇴의 절차를 가지는 것이 커뮤니티의 기본 요건입니다.
그러면 스팀잇 kr은 커뮤니티입니까? 뭔 말입니까? 태그일 뿐입니다. 카테고리일 뿐입니다. 스팀잇 kr에 kr이 붙었다고 해서 국가가 되고 커뮤니티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물론 광의의 의미에서 커뮤니티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요즘의 커뮤니티는 그 의미가 확대되어서 인간과 인간의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그러니까 스팀잇에서는 포스팅을 하고 댓글을 달고 보팅을 하고 또는 큐레이션과 투자를 하는, 일련의 행위에 참여하는 모든 주체를 아우르는 말로 쓰이고 있기는 합니다. 뭐 좋습니다. 어쨌든 인류라는 커뮤니티의 구성원이라면 구성원이고 암호화폐 커뮤니티의 일원이라면 일원인 것이니까요.
그러나 본질적인 의미의 커뮤니티라면 그리고 그것이 결속력을 가지려면, 입,탈퇴의 절차와 과정이 생겨나고 구성원으로서의 권한과 의무가 분명해져가야 합니다. 그것은 협소한 의미이긴 하지만 지속성과 결집력을 분명하고 단단하게 해주는 요건이기도 합니다.
그간 인류는 강력한 커뮤니티의 사회를 구성해 왔습니다. 한번 정해진 커뮤니티는 죽기 전에는 바꿀 수 없고 인류는 그러한 커뮤니티의 강력한 구속과 보호 아래 살아왔습니다. 그게 심지어 마피아 일지라도 말이죠. 그러나 씨족 공동체로부터 시작하여 부족과 국가로 확장되어오며 그 구속력은 조금씩 완화되어왔습니다. 그리고 지구촌 시대를 맞이하며 점점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확장된 만큼 결속력은 느슨해지고 책임과 권한의 정도 역시 약해진 것이 사실입니다. 개인주의의 이념 아래, 사람들은 더 많은 자유를 원하고 답답한 구속에서 좀 더 자유로워지기를 바라고 있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구속과 의무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만큼 커뮤니티의 보호로부터는 점점 소외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개인의 자유를 확대시켰는지는 모르나 공동체의 구성원에 대한 책임의식은 반대로 약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속화시킨 온라인 세계는 SNS에 이르러 정점을 맞이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데나 커뮤니티를 붙이고 공동체 입네 하지만, 사실 보호와 책임은 최소화되어있고 서비스 주체들의 권한과 권리만 무한대로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떤 출판사가 내 글 마음껏 가져다 쓰고, 많은 사람들이 읽게 해 주었으니 되지 않았냐고 주장한다면 누군들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은 거대 커뮤니티에서의 인지도에 목이 말라 자신의 콘텐츠를 무료로 가져다 바치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현대인의 커뮤니티에 대한 목마름을 반증해 주는 것입니다.
호모 사피엔스. 호모 사피엔스..
확대되는 개인주의는 능력자들에게나 신나는 일입니다. 가진 것 많은 이들, 어디든 속할 수 있는 이들은 커뮤니티를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으니까요. (이런 이들일수록 그들의 진짜 커뮤니티는 작고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보호받고 책임의 범위 안에서 성장해야 할 아직 미약한 개인들은 노예해방 뒤, 갈 곳 몰라 방황하던 노예들처럼 부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광장은 점점 식상해지고, 각종 이름만 그럴듯한 커뮤니티들에 기만당하는 일에도 사람들은 지쳐가고 있습니다. 구속의 대명사인 결혼은 거부하면서도 커뮤니티에 대한 목마름에 애완동물과의 공동체를 대체재로 삼고 있는 것이 인간입니다. 호모 사피엔스, 사회적 동물로서의 인간은 결국 강아지와 고양이의 아빠와 엄마, 심지어 집사로서라도 커뮤니티 안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커뮤니티에 목이 마릅니다. 매주말이면 가가호호 방문하며 떡볶이를 사주던 주일학교 선생님들이 그립고, 엄마가 집에 없는 날이면 어디든 가서 저녁 한 끼 얻어먹을 수 있던 동네 이웃들이 그립습니다. 그때에는 개인의 자유가 더없이 제한되어 있었지만 우리는 커뮤니티의 보호 아래 성장할 수 있었고, 재난 상황에서도 기댈 곳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국가뿐입니다. kr뿐입니다. 가진 소속감이라곤 주민등록증, 여권이 전부인 사람들이 태반이니까요.
이러한 심리적 공간을 파고들고 있는 겁니다. 그 대단한 플랫폼 업자들이 말입니다. 대충 광장에 사람들을 모아 놓구선 커뮤니티 입네, 흉내 내게 만든 겁니다. 밸 꼴리면 언제든 뛰쳐나갈 수 있고, 똥 싸질러놓고 사라지든, 사기 치다 도망치든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도, 나의 권리를 보장하라 요구할 수도 없는, 기가 막힌(?) 공동체에 모두 대충 발을 담그고 있는 겁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스팀잇의 kr은 커뮤니티입니까? 공동체입니까? 지난 시간 동안 이곳에도 여러 다양한 공동체적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다양한 커뮤니티적 시도를 하는 움직임도 있었고, kr을 국가 개념으로 인식하여 국가 수준의 커뮤니티적 질서를 무의식중에 장착한 채, 스팀잇 활동을 이어온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들 말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kr은 한국어를 쓰는 사람들의 거대한 보팅풀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한때는 외국인이 한국말로 포스팅을 하면서 kr 태그를 쓰거나, kr의 여러 기본 보팅 프로그램을 활용하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kr은 본질적인 의미의 커뮤니티는 아닙니다. 그렇게 될 수도 없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됩니다.
플랫폼 업자들의 입에 발린 말로서의 커뮤니티도 커뮤니티라면 커뮤니티인 겁니다. 우리도 그 수준은 됩니다. 그러나 오만 정 다 주며 댓글과 보팅으로 사귐을 이어가던 우리의 연인들은, 시세 하락과 함께 한마디 말도 없이 사라지거나 잠적해 버렸습니다. 나는 그들이 심지어 봇이 아니었나 생각하기도 합니다. 물론 봇의 수준이 아직 그 정도에 미치지야 못하겠지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일어나지 못할 일이 아닙니다. 감성을 흉내 내며 기계적으로 대답하는 그들을 우리가 분별해내지 못하는 수준에 이를 때면, 나는 인간이 아닌 기계에게 내 감정을 전달하고 싶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될 겁니다. 물론 떠나간 그대들은 봇들이 아니었을 테고 시세의 상승과 함께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그런 관계를 우리는 커뮤니티라 부를 수는 없습니다. 언제든 단절될 수 있고 상호 간의 합의나 협의 없이 중단되는 관계에 공을 들일 사람은 없습니다.
스팀잇을 창작공간으로만 인식한다면 그것은 그리 문제 될 일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투자 정보교환의 장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이 정신건강에 이로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곳이 커뮤니티이려면 관계의 책임감과 상호 간의 인식은 이 수준에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이건 그냥 여행 중 호스텔에서 만난 관계들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한때 즐겨 찾다 시들해지고 마는 동호회, 단골집 수준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뭐 어떻습니까? 그렇게 심각하게 이 서비스를 받아들이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글 써서 닭 먹을 수 있다니까 한 번 해 봤는데, 돈도 안되고 불편하기만 하니 하다 말아도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이 새로운 시대의 화폐, 그리고 역사를 뒤집을 만한 혁명의 도구를 제대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는 이 거친 세상을 뚫고 새로운 흐름을 만들어 낼 수가 없습니다.
광장의 시대가 막을 내리고
광장의 시대가 저물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진정성 있는 관계에 목이 마릅니다. 가짜 관계, 가짜 커뮤니티, 가짜 상호작용에 진절머리를 내고 있습니다. 어설픈 흥분만 가득한 숨막히는 열기에 지쳤습니다. 이 서비스는 곧 막을 내립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의 커뮤니티를 찾아 긴 여행을 떠나게 될 겁니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종말과 함께 'Great America Again!'을 외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자 트럼프가 그 최선봉에 서고 있습니다. 마구 선전포고를 날리고 있습니다. 영국은 그 거대한 커뮤니티 EU를 박차고 나와 노딜 브렉시트의 지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일방적으로 절교선언을 해버리고 만 것입니다. 이렇게 다시 세계가 지구촌에서 부족 시대, 절대왕정, 제국의 시대로 회귀하고 있는데, 여전히 상황 파악하지 못하고 코스모폴리탄을 외치고 있다간, 망해버린 로마 시민으로 화석이 되어버리고 말 겁니다.
그러나 이 블록체인/암호화폐의 시스템은 말 그대로 탈중앙화를 외치며 시작된 진정한 의미의 지구촌 커뮤니티 서비스 입니다. 거의 유일하게 남다시피한 국가 커뮤니티조차 초월하여 세계인으로서의 화폐를 실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면 그들은, 그 패권자들은 가만히 있겠습니까? 우리 안에 성숙되지 못한 공동체 의식은 과연 패권들과의 화폐전쟁에서 이 새로운 시스템을 안착시킬 수 있을까요? 그것은 도리어 작고 단단한 커뮤니티들이 수없이 등장하면서야 가능한 것입니다. 탈중앙화를 기치로 시작되었으나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려 금권력의 노예로 전락해 버린 이 피라미들이, 작은 단위로 결집하고 연대하여 거대한 네트워크 그물망을 형성하기 전에야 이룰 수 없는 환상인 것입니다. 역설적으로 신자유주의도 실패한 지구촌 사업을 코인이즘(koinism, Koinonia + Coin)으로, 새로운 공동체주의, 커뮤니티즘으로 극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책임지고, 또 다른 한 사람과 권한을 나누고, 다시 그 옆 사람과 책임을 나누어 지며, 또 그 옆 사람과 권한을 배분하고 또다시 그 옆 사람과 책임을 함께 감당하는.. 커뮤니티. 역중앙화의 커뮤니티. 시작은 자기가 자기 자신을 책임지는 행위로부터입니다. 그래서 모든 권한과 책임은 총수에게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를 책임지는 첫 사람. 스팀시티(@stimcity)의 총수는 그렇게 추대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실험 중에 있습니다.
우리가 실패하면 암호화폐는 실패합니다.
우리가 성공하지 못하면 암호화폐는 역사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저만 살겠다고 난리인 이 시대에
이런 쓸데없는 미친 짓을 시도할 이들이
또 없을 테니 말이죠.
걱정 마십시오.
스팀시티 안 망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