쾌락을 추구하는 성향은 인간의 생물학적인 본능과 관련이 있습니다. 생존 본능은 열량이 많은 당분이나 지방질이 다량 함유된 음식을 추구하게 하고, 종족 보존 본능은 이성을 찾아 성적 욕구를 충족시키게 하죠. 이 과정에서 느끼는 쾌락이 크지 않다면 인류는 지금까지 번성할 수 없었을 것이고 앞으로 계속해서 생존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쾌락은 쉽게 얻을 수 없는 것을 얻을 때 더 크게 느껴지는 법입니다. 그래서 쾌락을 지속적으로 얻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는 쾌락이라는 자극이 인간의 감각들을 둔화시키기 때문이죠. 자주 얻을 수 있는 것들은 금새 우리의 감각을 둔화시켜 더이상 쾌락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이는 신체의 보호 작용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쾌락의 감각은 우리의 심혈관계에 무리한 부담을 주기 때문에, 쾌락에 대한 감각이 금새 둔화되지 않으면 많은 사람들이 젊은 나이에 요절할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이 꿈꾸는 인생이란 사실 잔잔한 기쁨이 지속되는 인생 보다는 주기적으로 쾌락을 즐길 수 있는 인생에 더 가깝습니다. 위에 언급했듯이, 그렇지 않으면 인류는 더이상 생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후자의 사람들이 당연히 전자의 사람들보다 특정 시점에 늘 더 많아왔을 거라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조상들 중에서도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생존과 번영에 더 유리한 방향의 행동들을 해왔을 테고, 그 결과로 그들의 유전자가 더 많이 후대에 전해져 왔을테니까요.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인생을 처음 계획할 때 지속적인 쾌락이 답보되지 않는 방향의 길을 세우는 것은 어리석은 계획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자기 인생 계획을 세우면서 이같은 쾌락의 요소들을 전부 고려하게 됩니다. 단순히 돈 많이 주는 길을 무작정 택하지 않고 성취욕이나 자신이 호감을 느낄만한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또한 착하고 똑바른 이성 보다 소위 말하는 나쁜 남자 나쁜 여자와 같은 이성에게 더 끌리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죠. 주변 사람들은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보고 (대부분 평소 무척 얌전한 사람의 경우라도) 눈이 잘못 되었다, 뭘 모르는 거다라고 말리지만, 그럴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 알고 선택하는 거니까요.
다만 나이가 들면서 누구나 이런 성향이 조금씩 약해집니다. 일단 신체가 지속적인 쾌락을 견디기에 점점 힘들어진 탓이 가장 크죠. 우리 몸의 건강이 젊은 시절에 비해 급속도로 악화되면서, 우리 몸은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급속도로 쾌락에 대한 감수성을 둔화 시킵니다. 이는 말기암 환자들이나 난치병 환자들에게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쾌락 보다는 잔잔한 일상의 기쁨을 추구하는 경향이 뚜렷해지는 거죠. 저는 이 때부터 비로소 인간이 보통의 짐승들과 다른 형태의 즐거움을 찾기 시작한다고 생각 합니다. 비로소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이성적인 두뇌가 즐거울 수 있는 것들을 찾기 시작하는 거죠.
10년 전, 대중의 곁을 떠난 최진실이 언젠가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
데뷔한 이후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었다
저는 그것이 사실과 다르다고 생각 합니다. 물론 최진실이 끊임없이 불행의 냇물에 늘 발을 담그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을 것입니다. 최진실이 심리적인 장애를 갖고 살았다는 것은 그녀 스스로도 밝힌 바 있고, 악성 댓글을 보고 갑작스런 죽음을 택한 것도 평소 그녀의 심리 상태와 무관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최진실은 마음만 먹으면 늘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상황에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평화로운 삶이란, 탐욕과 거짓이 난무하는 연예계를 떠나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들과만 접촉하며 무미 건조하게 사는 것을 뜻합니다.
그녀가 그런 삶을 택하지 않은 것은, 그녀의 심리적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연예계 생활에서 누릴 수 있는 쾌락이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누군가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쾌락 중 하나에 해당 합니다. 그런 쾌락을 그녀는 스스로 포기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녀가 인터뷰에서 자신의 과거에 대해 어떻게 말했든, 그녀는 그녀의 젊은 시절을 자기 자신에게 맞게 살았던 셈입니다.
다만 그녀는 나이가 들어 몸과 마음이 지치기 시작했을 때 쯤 그녀의 몸에 맞는 제2의 인생을 찾아 나서는데 실패했습니다. 완전히 연예계와 단절하고 살 방법을 찾았어야 했던 거죠. 우리 뿐 아니라 전세계의 연예계에는 그와 같은 삶의 진실을 깨달아 자신에게 맞는 길을 뒤늦게 찾아 연예계에서 사라진 인사들이 많습니다.
화려한 인생을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 그들은 결코 잘못된 길을 걷고 있지 않습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삶은 젊은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죠. 그러나 충분히 누릴 거 다 누린 후에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할 시점이 오면, 슬슬 다른 길을 찾는 것이 현명한 삶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 합니다.
불경기가 지속될수록 일상의 행복을 강조하는 심심한 삶에 대한 예찬이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사실 이런 현상엔 비밀이 숨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진짜로 잔잔한 행복이 있는 심심한 삶을 원치 않습니다. 다만 여러가지 상황상 어쩔 수 없이 심심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자신의 현재 삶이 잘못되지 않았다고 믿고 싶어합니다. 마음 속으로는 쾌락이 가득한 삶을 살고 싶지만, 여건상 그런 삶을 살 수 없는 현재의 자기 삶을 위로 받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자기 삶과 비슷한 삶을 살면서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말하는 누군가의 글이나 사진을 보면 안심이 되는 거죠.
화려한 인생을 좇는 것은 잘못되지 않은 것이고, 심심한 삶을 추구하는 것 역시 마찬 가지일 것입니다. 그저 자신에게 지금 이 순간 더 맞고 더 원하는 것이 어떤 길이냐의 차이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