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눈이 내리던 보름 전 일이다. 버스에서 내려 작업실로 들어오려는 참이었다. 뒤에서 "저기요.." 라는 소리가 들린다. 3차선 갓길에 웬 노인이 옆으로 쓰러져있다. 버스에 치일수도 있는 위험한 위치였고 추운 날 저체온증으로 큰일날 수도 있겠다 싶어 황급히 달려갔다.
"어르신 괜찮으세요?"
"나 좀 일으켜줘.."
"다치셨어요? 다리가 불편하세요?"
"아니.. 그냥 술을 좀 먹었어.. 택시좀 잡아줘.."
"네 잡아드릴게요. 위험하니까 일단 여기 앉으세요"
"고마워.. 연락처좀 남겨줘.."
"아닙니다 어르신. 택시 잡았어요. 댁이 어디세요?"
"평창동이야.." (문 닫기 전) "연락처좀 줘 사례하고 싶어.."
"아니에요 아니에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착한 일 했다며 뿌듯하게 생각하고 엘레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이거.. 인생에 세 번만 온다는 일생의 기회를 놓친게 아닌가 싶다. 평창동 노인이라.. 그는 일평생 일궈온 대기업 회장직을 내려놓으려는 참이다. 후계자 선정 과정에서 두 아들이 너무 심하게 다투는 바람에 속이 상한 나머지 경호원에게 말하지도 않고 몰래 막걸리 한 잔을 마시러 나온 것이다. 귀가하려는 찰나, 갑자기 쓰러졌고, 마침 눈 앞에 기적처럼 내가 나타난 것이다..
시간을 다시 되돌리고 싶다.... 자네 연락처좀 알 수 있는가? 네 당연합니다. 고마움을 표하고 싶네. 네 정 그러신다면 큰 건 바라지 않고 아이맥 프로 풀옵션 정도로 간소하게 부탁드리겠습니다. 좋네. 4k영상을 동시에 수십 개 돌릴 수 있다는 아이맥 프로 말이로군. 아참 아이폰x는 필요없는가? 아 저는 펜슬 기능이 있는 갤노트8이 더 유용할 것 같습니다. 알았네 더 필요한 건 없는가?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저는 지윤테크 크레인V2와 GH5 정도로 간소하게.......
회장님의 아들들이 또 다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