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그림의 가능성

KakaoTalk_Photo_2018-02-21-17-59-52.jpeg



간만에 붓 잡았다가 보기좋게 망하고 시원하게 사우나를 다녀왔다. 그리고 눈에 띄지 않게 저 높은 곳으로 그림을 올려놨다. 잊어버릴 때쯤 문득 꺼내보면 의외로 괜찮을 때가 많더라고. 붓질하다가 마른 걸레를 캔버스에 던지고 물감을 뿌리고 더럽혀진 바닥을 닦고 쓸고 생난리를 치느라 오늘치 체력이 다 방전됐다. 이틀째 가득 쌓여있는 싱크대에 그릇들을 애써 외면하고 있다. 아 누가 좀.

몇 주간 작업실을 가득 채울 유화 기름냄새가 없어질 무렵, 문득 꺼내보면 괜찮겠지..(제발)

망하지 않았으면 탄생하지 않았을 작업이 예전에도 꽤 있었다. 망해야만 변수가 생긴다. 망해야만 우연이 겹친다. 망해야만 캔버스 위에서 어떤 사건이 벌어진다. 끝이 정해져 있는 지루한 픽션 영화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사건이 겹치면서 의미심장한 메세지를 전달하는 생생한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그림이 완성되려면, 일단 망해야 한다. 계획대로 착착 진행되었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난다. 그래서 그림은 대개 못 그리는 사람이 더 좋은 작품을 그린다.

물론 망한건 언제봐도 그냥 망한 경우가 90%긴 하다. ㅎㅎ

@thelump

H2
H3
H4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1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