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러블리 본즈 by 앨리스 세볼드 ㅡ 그들이 다시 '가족'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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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살해됐다. 남은 우린 다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이 책은 미국에서 2백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이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책 겉표지를 넘기면 수많은 매체와 비평가들이 이 책이 얼마나 좋은 가에 대해 써놓은 찬사가 가득하다. 사람 마음이란 게 이상해서, 남들이 좋다고 하면 “어디 얼마나 좋은가 한번 두고 보자.”하는 심리가 생긴다. 그래서 감동받지 않을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책장을 넘겼다. 그 덕분인지 처음에는 별로였다. 이거 계속 읽어야 하는 걸까 잠깐 고민도 했다. 그러다가 훅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 책이 왜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았는지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거기에 나의 작은 찬사도 소심하게 보태 본다.

책의 화자가 이미 죽은 소녀라는 것은 책의 첫머리에 나온다. 수지 새몬. 그녀는 14살의 나이에 성폭행당한 후 살해된다. 이 소설에서 수지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고 범인이 누구인지 앞부분에서 독자에게 다 밝히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CSI 드라마가 아니었다. 경찰은 범인에 대한 단서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었고, 이젠 그녀의 가족이 발 벗고 나서서 범인을 찾는데 주력한다. 범인을 찾아다니느라 가족의 울타리는 무너지고, 가족이 있던 자리엔 그저 허허벌판만이 남았다. 그녀는 천국과 지상 사이인 Inbetween(이 곳도 일종의 천국이지만)에 머물면서, 지상에 남은 가족이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어떻게 망가져가는지 지켜보게 된다. 수지의 죽음으로 인해 와해되고 무너졌던 한 가정이 다시 서로를 보듬어 안고, ‘한 가족’이 되어가는 이야기, 라는 건 사실 너무 식상한 소감문이지만 이 보다 더 적당한 문장을 찾기가 힘들다.

수지가 죽은 후 수지의 가족은 생각지도 못했던 또 다른 싸움을 하게 된다. 바로 '피해자의 가족으로 살아가기'이다.

Of everyone in the family, it was Lindsey who had to deal with what Holly called the Walking Dead Syndrome – when other people see the dead person and don’t see you.
When people looked at Lindsey, even my father and mother, they saw me. Even Lindsey was not immune. She avoided mirrors. She now took her showers in the dark. (p. 59)

우리 가족 중에 홀리가 말하던 ‘살아있는 좀비 신드롬’과 싸워야 했던 건 바로 린지였다. ‘살아있는 좀비 신드롬’이란 누군가를 봤을 때 그 사람을 보는 게 아니라 죽은 사람을 떠올리는 현상이다. 사람들이 린지를 볼 때면, 심지어 우리 엄마 아빠 조차도, 모두 나를 떠올렸다. 린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린지는 거울을 안 보기 시작했다. 이제는 샤워할 때도 어둠 속에서 했다.

동생 린지는 범인으로 의심되는 동네 사람 집에 몰래 숨어 들어가 단서가 될만한 그림을 훔쳐온다. 하지만 이렇다 할 결과도 없이 오래 지속된 범인 찾기에 지친 엄마는 그림 볼 생각을 안 한다.

“I’m going to pick up Buckley,” my mother said.
“Don’t you even want to look at this, Mom?”
“I don’t know what to say. Your grandmother is here. I have shopping to do, a bird to cook. No one seems to realize that we have a family. We have a family, a family and a son, and I’m going.” (p. 184)

“난 네 동생 데리러 갈게.” 엄마가 말했다.
“엄마는 이게 뭔지 보고 싶지 않으세요?”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하니? 네 할머니도 와 계시지, 장도 봐야 하지, 닭고기도 요리해야 하지. 여기 가족이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는 거 같아. 여기 가족이 있다고. 가족이랑 아들이 있어. 그러니까, 엄마는 동생 데리러 나갈 거야.”

가족이 있다. 남아 있는 가족이 있다. 딸이 죽었어도 여전히 장을 봐야 하고, 밥을 지어야 하고, 밥을 먹어야 한다. 남은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 하고, 학교가 끝나면 어린 막내를 데리러 가야 한다. 부모는 그 가족을 돌봐야 한다. 딸이 죽었어도.


한국어판 <러블리 본즈> 표지. 영화화됐다는 걸 강하게 어필하는 띠지가 붙어 있다. -_-;;
출처: 교보문고

살인과 같은 커다란 사건이 발생하면 대개 사람들은 엽기적인 살인행각과 피해자에게 집중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범인을 잡아서 감방에 처넣을지(!)를 얘기한다. 그간 보아왔던 CSI와 같은 숱한 형사 드라마들은 사건 해결을 위해 범인을 잡는 데에 골몰해왔다. 영화 ‘살인의 추억’에서도 범인을 잡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영화 내내 맴돈다. 인기리에 방영됐던 드라마 ‘시그널’에서도 오래된 미제사건을 통해 범인을 밝히지 못한 범죄에 대해 그렸었다. 그런데 정말로 범인만 잡으면 끝인 걸일까? 범인만 잡으면 사건이 해결되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걸까?

누가 이런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알아내고, 범인을 잡아서 단죄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죄를 저지르면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된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고, 범인의 또 다른 후속 범죄를 막는다는 차원에서도 그렇지만,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도 이 사건을 뒤로하고 다시 자기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마무리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었는데 어떻게 죽었는지, 범인은 누구인지, 어느 하나 밝혀지지 못한다면 이들은 결코 그 사건에서 헤어나지 못할 테니까. 하지만 피해자의 가족에겐 범인을 잡는 것이 그 ‘마무리’의 시작은 될 수 있어도 끝은 될 수 없다. 범인을 잡은들, 범인이 무기징역이나 사형선고를 받은들, 아니 사사로이 범인을 잡아서 고문하고 고통스럽게 죽여서 복수를 한들 죽은 피해자가 살아 돌아올 리 없으니까. 범인이 도망을 갔든, 감옥에 갔든, 죽었든 상관없이 ‘사랑하는 사람이 살해됐다’는 상실감과 충격을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건 바로 피해자의 가족이니까 말이다.

이 책에서는 그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지의 엄마와 아빠, 여동생 린지, 막내 남동생 버클리. 그들이 어떻게 슬퍼하고, 어떻게 견뎌내는지,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아픔 속에서도 어떻게 사랑하며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마치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쓰레기와 잔해들을 치우고 주춧돌을 하나씩 놓아 집을 다시 짓듯이, 가족의 일원을 끔찍한 사고로 잃은 후 다시 일어서는 남은 가족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한 가지 신선했던 건 화자가 수지였기 때문에 죽어서 저승에 가 있는 그녀의 감정도 보여준다는 거였다. 죽은 수지의 입장에서 보자면 역으로 사랑하는 모든 가족을 잃고 자기만 홀로 살아남은 셈이었으니까. 자신의 죽음으로 인해 서서히 무너져내리는 부모님과 동생들을 보면서 슬퍼하고, 그들을 그리워하고, 그럼에도 자신이 없더라도 잘 살아갔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애틋하게 그려지고 있다. 수지가 자신과 가족을 이해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참 좋았다.

When my father’s car pulled into the drive, I was beginning to wonder if this had been what I’d been waiting for, for my family to come home, not to me anymore but to one another with me gone. (p. 316)

아빠의 차가 집 앞에 들어섰을 때, 난 이게 내가 그토록 기다려온 순간이 아니었나 생각했다. 우리 가족이 집으로 돌아오는 순간. 이젠 더 이상 나한테 오는 게 아니라, 내가 없는 우리 가족이 서로서로에게 돌아오는 순간.

이 책을 읽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사랑하는 사람을 황망히 잃어버리고 살아도 사는 게 아닐, 세월호를 비롯한 현실에 있는 피해자들의 가족들이 떠오른다. 그들도 서로가 서로에게 돌아오고, 다시 '가족'으로 일어설 수 있길 진심으로 바라 본다.


한국어판 제목: 러블리 본즈
영어 원서 제목: The Lovely Bones
저자: 앨리스 세볼드 (Alice Sebold)
특이사항: 동명의 영화도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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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 출처: 다음영화


Disclaimer) 본문에 실린 인용은 제가 직접 번역한 것으로,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기 때문에 한국 출간본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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