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네버웨어 by 닐 게이먼 ㅡ 때로 모험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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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을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말도 통하지 않는 미지의 나라로 가야 하는 걸까.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1년 동안 전 세계를 누비며 배낭여행을 해야 하는 걸까. 물론 그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때로 모험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시작된다. 사소한 행동 하나가 모험의 빌미가 된다. 바로 이 책에서처럼.

<네버웨어>의 주인공 리처드는 런던에 살고 있는 평범한 남자다. 그에게는 저녁에 돌아갈 수 있는 작은 아파트가 있고, 튼실한 직장이 있으며, 아름다운 약혼녀가 있다. 매일매일은 그저 똑같이 돌아간다. 때로 지루할 순 있겠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그건 불평할 수 없는 행복한 현실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리처드는 길모퉁이에서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한 여자를 발견한다.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그는 그녀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서 치료해주고 쉴 수 있게 해준다. (웬일인지 그녀는 병원으로 가기를 거부했다) 다음날 그녀는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났지만, 이번엔 리처드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사람들이 자기를 못 보고, 마치 투명 인간인 듯 지나쳐버리는 것이다. 전철을 타려 해도 매표원이 자기를 보지 못해 표를 살 수가 없었고, 도로에 뛰어들어 아무리 손을 흔들어도 택시가 멈춰 서지 않았다. 겨우겨우 도착한 회사에서는 자기 책상이 치워져 있고, 약혼녀마저 자기를 못 알아본다. 급기야는 부동산에서 빈 집이라며 자기 아파트까지 세놓으려 한다. 내가 버젓이 이 집에 살고 있는데!!!

리처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자신의 일상을 그리워한다. 그 지루하고, 멋있었던 일상을.

I'm going to go home. Everything is going to be normal again. Boring again. Wonderful again.

난 집으로 돌아갈 거야. 모든 게 다시 정상으로 돌아갈 거야. 다시 지루해지고, 다시 멋져질 거야.

이 모든 이상한 일의 시작이 자기가 길거리에서 도와줬던 그녀였다는 걸 깨달은 리처드는 그녀를 찾아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녀가 어디에 사는지도 모른 채 무작정 길을 나서는 리처드. 아는 것이라고는 '도어(Door)'라는 그녀의 이름뿐이다. 사라져 가는 도어의 흔적을 찾아 떠난 리처드는 보통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런던의 지하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위험한 악당과 괴물, 그리고 천사가 살고 있는 지하 세계로.


출처: 교보문고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평범한 현대인의 모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대부분 모험 이야기는 특정한 시대와 공간에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다. 아니면 주로 어린이들의 이야기이거나. 그런데 이 책은 평범한 어른의 모험 이야기라는 점이 좋았다. 나도 주변을 잘 둘러보면 지금이라도 당장 모험을 떠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주기 때문이다.

런던의 지하세계를 다루고 있는 만큼 지하철역이 배경으로 많이 나오는데, 그 지하철 역 이름에 맞춰서 신기한 모험이 펼쳐진다. 예를 들어 '얼스코트(Earl's Court, 백작의 법정/중정)'역에는 진짜로 백작이 있고, '블랙 프라이어스(Black friars, 검은 옷을 입은 수도사들 - 도미니크 수도회 수도사들)'역에서는 수도사를 만날 수 있으며, '엔젤(Angel, 천사)'역에는 실제로 천사가 살고 있다. 마치 서울로 따지자면 잠실역 지하에는 아직도 신비한 존재들이 누에를 기르고 있다던가, 서빙고역 지하에는 커다란 얼음동굴이 있다던가 하는 식이다. 이 책을 재미있게 보고 나니, 어느 글 잘 쓰는 작가가 서울의 지하철을 배경으로 이렇게 환상적인 소설을 써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어른이 주인공인 현대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오즈의 마법사> 같은 느낌이다. 판타지 모험 소설을 좋아한다면 권하고 싶다.


한국어판 제목: 네버웨어
영어 원서 제목: Neverwhere
저자: Neil Gaiman (닐 게이먼)
특이사항: 원래 BBC 텔레비전 시리즈였는데, 그걸 다시 소설로 쓴 것이다. 2013년에는 제임스 맥어보이와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등장하는 라디오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판타지 모험 소설.


Disclaimer) 본문에 실린 인용은 제가 직접 번역한 것으로,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기 때문에 한국 출간본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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