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To Kill a Mockingbird
저자: Harper Lee(하퍼 리)
한국어판 제목: 앵무새 죽이기
특이사항: 이 책은 미국에서 성경 다음으로 영향력 있는 책으로 꼽혔으며,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2015년에 후속편 격인 <파수꾼>이 발간됐다.
사진출처: 교보문고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없이 나약한 존재인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도 마음이 동요된다. 모두가 당신이 잘못한 거라고, 당신이 틀린 거라고 말한다면 “정말 그런가?”하고 스스로를 의심하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때, ‘나’를 믿는 것이 가능한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옳다면, 세상 사람들 앞에서 내 주장을 굽히지 않고 꿋꿋이 그 길을 걸어나갈 수 있는가? 세류에 휩쓸리지 않는 믿음이란 가능한가? 이 책은 말한다. 양심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고.
아직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이 심하던 시기 남부의 어느 작은 마을, 그곳에 사는 8살 백인 소녀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다. 소녀의 아버지는 변호사인데, 확실한 물증 없이 백인 여자를 강간했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는 흑인을 변호하게 된다. 인종차별이 심하던 당시 분위기상 이건 거의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단지 흑인이라는 이유로 피고인의 범죄가 사실이라 여겼고, 사사로이 그를 단죄하려 했으며, 그 와중에 그를 변호하는 소녀의 아버지 애티커스와 대립을 하게 된다.
주인공 소녀 스카우트 눈에는 모든 것이 부조리하게만 보인다. 이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고,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한다. 제대로 스카우트를 이끌어 주는 사람은 현명한 아버지 애티커스뿐이다. 하지만 모두들 자신의 아빠를 비난하자, 주인공 스카우트도 아빠가 틀린 게 아닐까 걱정을 한다. 조심스럽게 물어오는 딸의 질문에 아빠는 이렇게 대답을 한다.
“Atticus, you must be wrong...”
“How’s that?”
“Well, most folks seem to think they’re right and you’re wrong...”
“They’re certainly entitled to think that, and they’re entitled to full respect for their opinions,” said Atticus, “but before I can live with other folks I’ve got to live with myself. The one thing that doesn’t abide by majority rule is a person’s conscience.” (p. 120)“아빠가 틀린 것 같아요.”
“어째서?”
“그러니까, 사람들이 전부 자기들이 옳고 아빠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거 같아서요.”
“사람들은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권리가 있지. 그리고 그 생각을 존중받을 권리도 있고.” 아빠가 말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 의견보다 먼저 나 자신의 생각에 귀 기울여야 해. 사람의 양심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단다.”
양심은 다수결의 원칙을 따르지 않는다고 하지만, 많은 이들의 비난과 손가락질에 맞서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건 얼마나 힘든 일인가. 모두가 그 흑인 청년의 죄를 확신하고, 단지 그를 변호한다는 이유로 그와 그의 자녀에게 위해를 가하는데 이 와중에 마음의 소리를 따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이 책의 플롯만 들었을 때는 인종차별에 대한 슬프고 어둡고 우울한 이야기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의외로 너무나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풍경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따뜻하고, 미소를 짓게 만드는 부분도 꽤 많았다. 또한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보석 같은 문장들이 가득해서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됐고, 나는 어떤 사람인지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책을 읽으며 발견한 유일한 단점(?)은 변호사인 소녀의 아버지가 상당히 비현실적일 정도로 이상적인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게 원래 우리 모두가 지향해야 할 바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이쯤에서 애티커스가 자녀들에게 해주는 충고 몇 마디를 듣고 가보자.
“Baby, it’s never an insult to be called what somebody thinks is a bad name. It just shows you how poor that person is, it doesn’t hurt you.” (p. 124)
“얘야, 누군가가 너를 욕해도, 그건 절대 모욕이 될 수 없단다. 그건 그저 그 사람이 얼마나 불쌍한지 보여줄 뿐이야. 널 상처 주지는 못해.”
“I wanted you to see what real courage is, instead of getting the idea that courage is a man with a gun in his hand. It’s when you know you’re licked before you begin but you begin anyway and you see it through no matter what.” (p. 128)
“난 네가 진정한 용기가 뭔지 알았으면 좋겠어. 용기란 손에 총을 든 사람이 아니야. 용기란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깨질 거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어쨌건 시작하는 거,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해내는 거야.”
예전에는 막연히 이 책에 대해 어려울 것 같다거나 재미없을 것 같다는 편견이 있었다. 퓰리처 상을 받았다는 점과 ‘앵무새 죽이기’라는 낯선 우리말 제목도 내 편견을 부추기는데 한몫했다. 그래서 이 책을 집어 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것 같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는, 왜 이 책을 이제야 읽었을까 하는 생각과 그래도 지금 읽었으니 이나마 라도 내가 이해했겠지 싶은 생각이 교차한다. 혹시 나처럼 편견 때문에 이 책을 멀리 했던 분이 계시다면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하고 싶다.
Disclaimer) 본문에 실린 인용은 제가 직접 번역한 것으로,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기 때문에 한국 출간본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