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bookclub 독후감]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by 볼테르 ㅡ 캉디드의 낙관주의, 현실을 합리화하는 바보 같은 순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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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디드는 "이 세계는 최선의 상태이며, 지금과 다른 결과는 상상할 수 없다"는 스승님 팡글로스의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있다. 부모가 없는 고아이면서도 부유한 남작의 성에서 안락하게 살고 있는 그에게 "이 세상이 최선의 세계"라는 건 의심의 여지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철학이었을 것이다. 그가 살고 있는 성은 독일에서, 아니 세계에서 최고로 멋진 성이(라고 믿)었고, 사랑하는 남작의 딸 퀴네공드를 매일 볼 수 있었으며, 스승님의 위대한 가르침으로 무지를 깨우치고 있었으니 과연 이보다 더 좋은 세계는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캉디드가 자신의 딸인 퀴네공드에게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한 남작은 화가 나서 그를 성에서 내쫓아 버린다. 그 후로 캉디드는 온 세계를 전전하며 신밧드에 버금가는 모험을 하고, 오디세우스와 맞먹는 고난을 겪게 된다. 겨우 목숨만 부지하며 생을 이어가는 캉디드는 탄식을 한다. 팡글로스가 내 모습을 봤다면 뭐라고 할까? 이래도 이 세상은 최선의 세계라고 할까?

If this is the best of all possible worlds, what are the others like? (p. 29)

이게 최선의 세계라면 도대체 다른 세계는 어떤 모습이란 말인가?


출처: Goodreads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중 하나는 아마도 '낙관주의'일 것이다. 책의 제목에도 버젓이 나와 있는 '낙관주의(Optimism)', 과연 그것은 무엇인가? 이 책의 표현을 그대로 빌자면 이렇다.

“Optimism, what is that?”
“Alas!” replied Candide, “it is the obstinacy of maintaining that everything is best when it is worst”; (p. 77)

"낙관주의, 그건 뭐죠?"
"아!" 캉디드가 대답했다. "그건 모든 것이 최악의 상황일 때도 그것이 최선이라고 주장하는 완고함이랍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낙관주의는 바보 같은 순진함이다. 돈을 다 날렸으면서도 이번에는 대박이 날 거 같아서 또 빚을 내서 달려드는 도박꾼처럼 맹목적이다. 애초에 "만물이 최선의 목적을 가지고 창조되었으니(all things have been created for some end)", 그 결과물도 당연히 최선의 결과일 테고, "지금과 다른 결과는 있을 수 없다(things cannot be otherwise than they are)."고 주장한다. 또한 모든 일은 다 그 일이 일어날만한 충분한 이유(sufficing reason)가 있어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비록 겉으로는 최악의 상황처럼 보일지라도 지금이 최선의 상태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낙관주의는 좀 다르다. 나는 낙관주의란 그렇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생각한다. "더 좋은 일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애초에 만물이 최선의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일어날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지금이 최선이다"가 아니라, "지금 현 상황이 나쁘다고 해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점을 찾으려고 애쓰는 것"이 낙관주의라고 믿는다.

만일 모든 일이 다 이유가 있어서 일어난다면, 불행한 일이 일어났을 때 그 이유가 뭔지 고찰해보고, 어떻게 하면 그런 불행이 반복되지 않을지 고민해봐야 한다. 현재를 바꿀 수는 없겠지만 더 나쁜 상황이 아님에 감사하며,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것, 그것이 낙관주의다.

"캉디드"의 낙관주의는 과거를 답습하고, 현재에 안주하며 현실을 합리화한다. 내가 생각하는 낙관주의는 과거를 성찰하고, 현재에 감사하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얘기한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없이 그저 현실에 만족해하는 것은 진정한 낙관주의가 아니다.

이 책 "캉디드"는 사회에 만연해있는 부조리는 외면하면서 그저 "이게 최선이다, 지금이 최선의 결과다"라고 떠드는 당시 세태를 비판하려는 목적이 명확한 책이다. 그렇기에 조롱의 대상을 필요 이상으로 더욱 희화화하기도 하고, 으레 콩트들이 그렇듯 과장과 허풍도 동반되어 있다. 그걸 알면서도 '낙관주의'를 '바보 같은 믿음'으로만 치부해버리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이 책의 한글판을 구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영어 번역본으로 읽었다. 워낙 철학을 어려워하는 데다 옛 어투로 쓰인 영어로 읽었기 때문에 이 책이 전하는 의미와 재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자와 해학이 넘치며, 실소를 자아낼 만큼 재미도 있으니 이 책에 대한 내 평가는 다소 긍정적(optimistic)이라 하겠다.


한국어판 제목: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영어판 제목: Candide or Optimism
저자: 볼테르 (Voltaire)


Disclaimer) 본문에 실린 인용은 제가 직접 번역한 것으로,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기 때문에 한국 출간본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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