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사피엔스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

1판 2015년 11월 23일

옮긴이 조현욱

발행인 김강유

발행처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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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이 정말 좋은 책이라고도 했고 또한 리뷰도 좋았기 때문에

많은 기대를 했지만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책 뒷 부분에 책을 번역한 분께서도 이 책은 논란 거리가 많을 거라고 했듯이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이 책은 <<총.균.쇠>> 또는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와 같은 책 처럼

역사 전체를 훑는 책으로

새로운 관점을 소개 해 준다는 면으로 훌륭한 책이라고 생각 된다.

가장 염려 되는 점은

이 책을 읽고

유발 하라리의 이론을 정설로 믿는 것이 가장 우려 되는 점이다.

<<인류의 기원>>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이성적 낙관주의자>>와 함께 읽으면 도움이 될 듯 하다.

Page 44

인지혁명이란 약 7만 년 전부터 3만 년 전 사이에 출현한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을 말한다. 무엇이 이것을 촉발했을까? 우리는 잘 모른다.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는 이론은 우연히 일어난 유전자 돌연변이가 사피엔스의 뇌의 내부 배선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전에 없던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며 완전히 새로운 유형의 언어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지식의 나무(창세기에 금단의 열매 즉 선악과가 열리는 에덴동산의 나무-옮긴이) 돌연변이'라고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지식의 나무 돌연변이를 일으킨 원인보다는 그 결과를 이해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새로운 사피엔스의 언어에 어떤 특별한 점이 있었기에 사피엔스는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을까?

Page 52

인지혁명에 뒤이어 뒷담화 이론이 등장한 덕분에 호모 사피엔스는 더 크고 안정된 무리를 형성할 수 있었다. 하지만 뒷담화에도 한계가 있었다. 과학적 연구 결과 뒷담화로 결속할 수 있는 집단의 '자연적' 규모는 약 150명 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150명이 넘는 사람들과 친밀하게 알고 지내며 효과적으로 뒷담화를 나눌 수 있는 보통 사람은 거의 없다.

Page 53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해서 이 결정적 임계 치를 넘어 마침내 수십만 명이 거주하는 도시, 수억 명을 지배하는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은 아마도 허구의 등장에 있었을 것이다. 서로 모르는 수많은 사람이 공통의 신화를 믿으면 성공적 협력이 가능하다. 인간의 대규모 협력은 모두가 공통의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그 신화는 사람들의 집단적 상상 속에서만 존재한다. 현대 국가, 중세 교회, 고대 도시, 원시부족 모두 그렇다.

Page 59

거짓말과 달리 가상의 실재는 모든 사람이 믿는 것을 말한다. 이런 공통의 믿음이 지속되는 한, 가상의 실재는 현실세계에서 힘을 발휘한다.

==> 리처드 도킨스의 Meme밈과 비슷한 의미 같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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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공동체의 지식은 고대 인간 무리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크지만, 개인 수준에서 보자면, 고대 수렵채집 인은 역사상 가장 아는 것이 많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사피엔스의 평균 뇌 용적은 수렵채집 시대 이래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증거가 일부 존재한다. 그 시대에 생존하려면 누구나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녀야 했다. 하지만 농업과 산업이 발달하자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기술에 더 많이 의존할 수 있게 되었고, '바보들을 위한 생태적 지위'가 새롭게 생겨났다. 별 볼 일 없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으며, 물품을 배달하거나 조립라인에서 단순노동을 하면서 그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되었다.

Page 89

우리는 피상적인 지식만으로 그들을 부정하거나 이상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아체족은 천사나 악마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고대 수렵채집인도 마찬가지였다 .
==> 아체족: 현대 수렵채집인 노인 유아 영아 살해

Page 97

산업혁명 이전의 전쟁에서 사망자의 90퍼센트 이상은 무기가 아니라 굶주림고가 추위와 질병 때문에 죽었다는 점이다.

==> 발견된 화석 한 두 개로는 전쟁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없을 수도 있다.

Page 99

침묵의 커튼

뼈 화석과 석기에서 끌어낼 가능성이 있는 것도 있다. 인체의 해부학적 구조, 기술, 먹은 음식, 심지어 사회구조도 도출할 수 있다. 하지만 뼈나 석기가 결코 말해주지 않는 정보도 있다. 인접한 사피엔스 무리 간의 동맹이라든가, 그런 동맹을 축복하는 망자의 정령이라든가, 정령들의 축복을 얻기 위해 마을의 주술사에게 은밀히 건네는 상아 구슬이 그렇다. 이런 침묵의 커튼은 수만 년에 걸친 역사를 감추고 있다.

Page 117

수렵채집인의 확산과 함께 벌어졌던 멸종의 제1의 물결 다음에는 농부들의 확산과 함께 벌어졌던 멸종의 제2의 물결이 왔고, 이 사실은 오늘날 산업활동이 일으키고 있는 멸종의 제3의 물결에 대한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우리 조상들이 자연과 더불어 조화롭게 살았다는 급진적 환경보호운동가의 말은 믿지 마라. 산업혁명 훨씬 이전부터 호모 사피엔스는 모든 생물들을 아울러 가장 많은 동물과 식물을 멸종으로 몰아넣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생물학의 연대기에서 단연코 가장 치명적인 종이라는 불명예를 갖고 있다. 만일 좀 더 많은 사람이 멸종의 제1의 물결과 제2의 물결에 대해 안다면, 스스로가 책임이 있는 제3의 물결에 대해서 덜 초연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만일 우리가 이미 얼마나 많은 종을 절멸 시켰는지를 안다면, 아직 살아남은 종들을 보호하려는 의욕이 좀 더 생길 것이다.

Page 124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더욱 총명해졌다는 증거는 없다. 수렵채집인 들은 농업혁명 훨씬 이전부터 자연의 비밀을 알고 있었다. 사냥하는 동물과 채집하는 식물을 잘 알고 있어야 생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농업혁명은 안락한 새 시대를 열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농부들은 대체로 수렵채집인들 보다 더욱 힘들고 불만스럽게 살았다. 수렵채집인 들은 그보다 더 활기차고 다양한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고 기아와 질병의 위험이 적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인류가 사용할 수 있는 식량의 총량이 확대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여분의 식량이 곧 더 나은 식사나 더 많은 여유시간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인구폭발과 방자한 엘리트를 낳았다. 평균적인 농부는 평균적인 수렵채집인 보다 더 열심히 일했으며 그 대가로 더 열악한 식사를 했다. 농업혁명은 역사상 최대의 사기였다 .

그것은 누구의 책임이었을까? 왕이나 사제, 상인은 아니었다. 범인은 한 줌의 식물 종, 밀과 쌀과 감자였다. 이들 식물이 호모 사피엔스를 길들였지, 호모 사피엔스가 이들을 길들인 게 아니었다.

Page 129

농업혁명의 핵심이 이것이다. 더욱 많은 사람들을 더욱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 있게 만드는 능력. 하지만 이런 진화적 계산법에 왜 개인이 신경을 써야 하는가? 제정신인 사람이라면 호모 사피엔스 DNA 복사본의 개수를 늘리기 위해 삶의 질을 포기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런 거래에 동의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농업혁명은 덫이었다.

==> 평균수명의 연장, 유아 사망률 감소, 개인 시간의 증가 --> 이런 것들이 나쁜 것은 아닐 텐데 농업혁명이 꼭 덫이라고만 볼 수 있는 것인가? 수렵채집으로 몇 백만 년을 살아왔고 이제는 정착 생활을 하면서 많은 문제를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농업혁명에서 시작된 혁명은 수렵채집 때 보다 더 좋은 삶을 살게 해주고 있지 않은가?

Page 135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 가운데 하나는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 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마침내는 그것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이 된다.

Page 155

신화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농업혁명 덕분에 밀집된 도시와 강력한 제국이 형성될 가능성이 열리자, 사람들은 위대한 신들, 조상의 땅, 주식회사 등등의 이야기를 지어냈다. 꼭 필요한 사회적 결속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인간의 본능이 늘 그렇듯 달팽이처럼 서서히 진화하고 있는 도안, 인간의 상상력은 지구상에서 유례없이 거대한 협력의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갔다

Page 170~177

  1. 상상의 질서는 물질세계에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다.

  2. 상상의 질서는 우리 욕망의 형태를 결정한다.

  3. 상상의 질서는 상호 주관적이다.

Page 181~182

농업혁명에 뒤이어 유달리 복잡한 사회가 등장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종류의 정보가 중요해졌다. 바로 숫자다. 수렵채집 인은 많은 양의 수학적 자료를 다뤄야 할 일이 없었다. 숲 속에 있는 나무에 달린 과일의 개수 따위를 외워야 할 필요는 전혀 없었다. 따라서 인간의 뇌는 숫자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데 적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커다란 왕국을 유지하려면 수학적 데이터가 핵심적이었다. 법을 제정하고 수호신에 대해 지어낸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Page 182

기원전 3500년~3000년 어느 시기에, 익명의 수메르 천재들이 뇌 바깥에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시스템을 발명했다. 대량의 수학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맞춤 시스템이었다. 덕분에 수메르인들은 인간의 뇌에서 비롯되는 사회질서의 제약에서 벗어나 도시, 왕국, 제국의 출현에 이르는 길을 열었다. 수메르인이 발명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은 '쓰기'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

Page 209

악순환: 우연한 역사적 사건은 견고한 사회구조로 변했다.

우연한 역사적 사건 --> 백인의 흑인 지배 --> 차별적 법률 -->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흑인들 --> 문화적 편견

문화적 편견이 다시 차별적 법률과 가난하고 교육받지 못한 흑인들로 돌아간다.

Page 216

진실을 말하자면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이라는 우리의 관념은 생물학이 아니라 기독교 신학에서 온 것이다. '자연스러움'이란 말의 신학적 의미는 '자연을 창조한 신의 뜻에 맞는다'는 뜻이다 .

Page 227

남성이 병사로 복무하기에 더 적합하다는 가정

하지만 병사가 모두 남자라고 해서 전쟁을 관리하고 그 결실을 차지하는 사람도 남자라야 한다는 법이 있을까? 이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것은 농장에서 목화를 재배하는 노예가 모두 흑인이라고 해서 농장주도 흑인일 것이라고 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말도 안된 논리적 비약이다. 앞에서 Page 209에서 '악순환'이라는 표현으로 문화적 편견을 설명했는데 남성 우대를 하게 되는 이유와 전쟁에 참여하는 것도 충분히 '악순환'을로 설명 할 수 있음에도 갑자기 목화농장의 예를 드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Page 237

오늘날 미국 정치도 이 모순을 중심을 돌고 있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좀 더 공평한 사회를 원한다. 설령 그것이 세금을 올려서 가난한 사람과 노약자를 돕는 프로그램에 자금을 대는 것을 의미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자유를 침해한다. 어째서 정부는 내게 건강보험 가입을 강제하는 걸까, 나는 그 돈을 애들 대학 보내는 데 쓰고 싶은데? 반면에 공화당 지지자들은 개인적 자유의 극대화를 원한다. 설령 그것이 부자와 가난한 자의 소득격차가 더욱 벌어지며, 많은 미국인이 건강보험에 가입할 능력을 잃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해도 말이다.

Page 292

오늘날 인도인 중에서 민주주의, 영어, 철도망, 사법제도, 크리켓, 차가 제국주의의 유산이라며 여기서 벗어나자고 국민투표를 요구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설령 그런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이슈를 해결하기 위해서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행위 자체가 그들이 옛 지배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증명 아닐까?

Page 298

실상 종교는 돈과 제국 다음으로 강력하게 인류를 통일 시키는 매개체다. 모든 사회 질서와 위계는 상상의 산물이기 때문에 모두 취약하게 마련이다. 사회가 크면 클수록 더욱 그렇다. 종교가 역사에서 맡은 핵심적 역할은 늘 이처럼 취약한 구조에 초월적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었다. 종교는 우리의 법은 인간의 변덕의 결과가 아니라 절대적인 최고 권위자가 정해놓은 것이라고 단언한다. 이러면 최소한 몇몇 근본적인 법만큼은 도전 받지 않을 수 있었으므로, 사회의 안정을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따라서 종교는 '초인적 질서에 대한 믿음을 기반으로 하는 인간의 규범과 가치체계'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Page 342

그러면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 물리학이나 경제학과 달리,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가령 유럽인이 어떻게 아프리카 인을 지배하게 되었을까를 연구하면, 인종의 계층은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며 세계는 다리 배열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

Page 374

이 물질(화약)의 치명적인 잠재력이 군사 목적에 이용될 때까지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왕이나 학자, 상인들이 새 군사기술이 자신들을 구하거나 부유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때에 출현했기 때문이다. 15~16세기에 이르러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지만, 대부분의 통치자가 신무기의 연구개발에 자금을 대는 데 흥미를 보인 것은 그로부터 2백 년이 더 흐른 뒤였다 .

Page 376~377

역사를 통틀어 사회를 고통스럽게 했던 가난은 두 종류였다. 남들은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나는 이용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사회적 가난 그리고 식량과 집이 없어서 개인의 삶을 위험에 빠뜨리는 생물학적 가난이었다. 사회적 가난은 아마도 결코 근절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의 많은 국가에서 생물학적 가난은 옛말이 되었다.

==> 알랭드 보통의 불행

Page 389

과학연구는 모종의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제휴했을 때만 번성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연구비를 정당화한다. 그 대신 이데올로기는 과학적 의제에 영향을 미치고, 과학의 발견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한다 .

Page 392~393

1747년 영국의사 제임스 린드가 괴혈병에 걸린 환자들에게 대조 실험을 실시 .

민간요법인 감귤류를 먹으라고 지시

비타민 C의 존재를 몰랐지만 효과를 봄

장거리 항해 선원들이 비스킷과 말린 쇠고기로만 연명하고 과일이나 채소는 거의 먹지 않았음

영국 해군은 린드의 실험 결과를 믿지 않았지만, 제임스 쿡은 믿었다. 그는 이 의사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자기 배에 소금에 절인 양배추를 대량으로 실었으며, 탐험대가 육지에 상륙할 때마다 선원들에게 신선한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으라고 지시했다. 쿡은 괴혈병으로 한 명의 선원도 잃지 않았다. 그 다음 몇 십 년간 세계의 모든 해군은 쿡의 해양 식단을 따랐으며, 수없이 많은 선원과 승객이 이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 .

Page 397

많은 과학자들은 제국주의 주인을 위해 무기, 의학, 기술을 개발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았다. 아프리카인 적을 맞이한 유럽 군대가 흔히 했던 말은 "뭐가 오든 상관없다. 우리에게는 기관총이 있고 그들에게는 없다" 였다 . 민간기술의 중요성도 군사기술 못지않았다. 통조림은 병사들을 먹여 살렸고, 철도와 증기선은 군대와 장비를 수송했다. 그러는 도안 새로운 의약품이 병사와 선원과 기관차 엔지니어들을 치료했다. 병참 부문에서의 이 같은 진보는 유럽인의 아프리카 정복에 기관총보다 더욱 중요한 역할을 했다.

Page 399

중국인과 페르시아인에게 부족했던 것은 증기기관 같은 기술적 발명이 아니었다(그거라면 공짜로 베끼거나 사들일 수도 있었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서구에서 여러 세기에 걸쳐 형성되고 성숙한 가치, 신화, 사법기구, 사회정치적 구조였다. 이런 것들은 빠르게 복사하거나 내면화할 수 없었다 .

==> 약간 동의하기 힘든 부분도 있다. 물론 빠르게 복사하거나 내면화 할 수 없기는 했지만 한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 등의 국가의 발전 속도는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빨랐다. 그렇다면 단순히 사회정치적 구조만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적인 요인도 있지 않았을까?

Page 403~404

1969년 7월 20일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은 달 표면에 착륙했다. 탐험에 앞서 아폴로 11호 우주비행사들은 몇 개월간 달과 환경이 비슷한 서부 사막에서 훈련을 받았다. 이 지역은 여러 아메리카 원주민 공동체의 고향인데, 우주비행사들과 한 원주민과의 만남을 담은 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느 날 훈련 중이던 우주비행사는 늙은 아메리카 원주민과 우연히 마주쳤다. 남자는 우주비행사들에게 이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달을 탐사하기 위해 곧 떠날 원정대의 대원들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들은 노인은 잠깐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자신을 위해 부탁을 하나 들어달라는 것이었다.

"무엇을 원하세요?" 그들은 물었다 .

"우리 부족 사람들은 달에 신성한 정령들이 산다고 믿는다오. 그들에게 우리 부족에서 보내는 중요한 메시지를 당신들이 전해줄 수 있을까 해서."

"그 메시지가 뭔데요?" 우주비행사들이 물었다.

남자는 자기 부족의 언어로 뭐라고 말했고, 우주비행사들에게 그 말을 정확히 외울 때까지 계속 되풀이해서 말하게 시켰다.

"그게 무슨 뜻이지요?" 우주비행사들은 물었다.

"그건 말할 수 없어요. 이 말의 뜻은 우리 부족과 달의 정령들에게만 허락된 비밀이랍니다."

기지로 돌아온 우주비행사들은 그 부족 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수소문한 끝에 마침내 통역할 사람을 찾아내어, 비밀 메시지를 해석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들이 암기한 내용을 되뇌자 통역자는 껄껄 웃기 시작했다. 웃음이 잦아들자 우주비행사들은 무슨 뜻인지 물었다. 통역자는 비행사들이 조심스럽게 암기한 문장을 이렇게 번역했다. "이 사람들이 하는 말은 한 마디도 믿지 마세요. 이들은 당신들의 땅을 훔치러 왔어요."

Page 411

정화 제독의 원정은 유럽이 뛰어난 기술적 우위를 누리지는 못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정화 제독은 1405년부터 1433년까지 일곱 차례에 걸쳐 대함 대를 이끌고 중국에서 인도양의 먼 곳까지 항해했다. 가장 규모가 컸던 함대는 3백 척에 가까운 배에 3만 명 가까운 인원이 탑승했다. 1492년 콜럼버스의 선단-세 척의 작은 배에 120명의 선원) 유럽인들이 이례적인 점은 탐험과 정복의 야망이 어느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이 탐욕스러웠다는 데 있었다 .

Page 421~423

설형문자의 해독

1618년에 발견

거의 2세기 동안 해독 불가

1830년대에, 헨리 롤린슨이라는 영국인 장교가 해독

자그레스 산맥의 절벽의 거대한 베히스툰 비문

높이 15미터, 폭 24미터의 비문

기원전 500년경 다리우스 1세왕의 지시에 따라 만들어진 것

고대 페르시아어, 엘람어, 바빌로니아어의 세 언어를 설형문자로 써둔 것이었음

현지인들은 비문의 존재를 잘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읽을 수는 없었음

탁본을 떴고 1847년 완벽하고 정확한 사본이 유럽으로 보내짐

페르시아어 부분을 해독 성공

윌리엄 존스

산스크리트 어

Page 428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에서 인종주의가 차지하던 자리는 이제 '문화주의'가 차지했다는 것을 말이다. 사실 '문화주의'란 말은 없지만, 이제 만들어낼 때가 되었다. 오늘날 엘리트들은 다양한 인간집단이 서로 대조적인 장점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할 때 이것을 문화 간의 역사적 차이라고 말하지, 인종 간의 생물학적 차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Page 436

사람들은 보통 자기 시대보다 과거가 더 좋았으며 미래는 현재보다 더 나쁘거나 기껏해야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믿었다 .

Page 459

미시시피 버블은 역사상 가장 극적인 금융붕괴 사태였고, 프랑스의 금융 시스템은 결코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다.

--> 네덜란드의 튤립 1990년대의 닷컴

Page 487

진화심리학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기본 교훈은, 야생에서 형성된 욕구는 설사 더 이상 생존과 번식에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할지라도 계속 주관적으로 느껴진다는 점이다.

Page 493

자본주의 윤리와 소비지상주의 윤리는 동전의 양면이다. 이 동전에는 두 계율이 새겨져 있다. 부자의 지상계율은 "투자하라!"이고, 나머지 사람들 모두의 계율은 "구매하라!"다.

Page 499

시간표 체계가 확산된 결정적 고리는 대중교통이었다. 노동자들이 오전 8시에 근무를 시작해야 한다면 기차나 버스는 공장 문 앞에 7시 55분까지 도착해야만 한다.

1784년 영국에서 운행시간표를 붙인 마차 서비스가 운영되기 시작했다. 시간표에 명시된 것은 출발시각뿐이었다. 도착 시각은 없었다.

당시만 해도 영국의 각 도시와 타운은 각자의 현지 시간이 따로 있었고, 이 시간은 런던 시간과 크게는 30분까지 차이가 났다. 런던이 12시면 리보풀은 12시20분, 켄터베리는 11시 50분이었다. 전화나 라디오도 없었고 TV나 급행열차도 없던 시대였다. 시간을 누가 알 수 있었겠으며 누가 상관했겠는가?

Page 500

최초의 상업용 기차가 리버풀과 멘체스터 사이에서 운행을 시작한 지 10년 뒤인 1839년에 최초의 기차 시간표가 나왔다.

기차가 마차보다 빨랐기 때문에 시간차이에 불편을 느낌

1847년 영국의 열차 회사들이 현지 시간이 아니라 그리니치 천문대 표준시에 맞추기로 합의

1880년 영국 정부는 영국의 모든 시간표는 그리니치를 따라야 한다는 법률을 제정.

Page 529

낙관주의자와 비관주의자 모두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결론 내릴 수도 있겠다. 우리는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는 갈림길에 서 있다. 한쪽으로 난 문과 다른 쪽으로 열린 입구 사이에서 초조하게 오락가락하고 있다. 역사는 우리의 종말에 대해 아직 결정 내리지 않았으며, 일련의 우연들은 우리를 어느 쪽으로도 굴러가게 만들 수 있다.

Page 537

흥미로운 결론 중 하나는, 돈이 실제로 행복을 가져다 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어느 정도 까지만 이며, 그 정도를 넘어서면 돈은 중요치 않다. 경제 사다리의 맨 밑에 붙박여 있는 사람의 경우, 돈이 많으면 행복이 커진다.

Page 539

가족과 공동체는 우리의 행복에 돈과 건강보다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보인다. 가족간에 유대감이 강하고 구성원을 잘 돕는 공동체에 소속된 사람은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즉 가족이 제 구실을 못하거나 소속될 공동체를 찾지 못한 이들에 비해서 훨씬 행복하다. 결혼은 특히 중요하다. 좋은 결혼은 행복과, 나쁜 결혼은 불행과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은 각종 연구에서 거듭 확인되고 있다 .

Page 575

붉은털원숭이의 뇌에 전극을 심어 분리되어있는 생체 팔다리를 생각만으로 제어하는 훈련

팔 세 개를 움직일 수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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