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비스트라우스 라고 하면 Levis 청바지가 떠오르는게 당연한 일입니다.
저도 대학교에 진학해서 레비스트로스 (Levi Strauss)를 만나기전까지
리바이스는 청바지 회사였으니까요.
(리바이스 너무 비쌉니다. ㅠㅠ )
그런 무식이 흘러 넘치던 저에게,
사회인류학이라는 수업을 통해서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레비 스트로스의 이론에 확 빠져버렸습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러서
동네 도서관에 있는 책을 한 권 보게 됩니다.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레비 스트로스
그리고 그 책 제목은 바로.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우리는 모두 식인종이다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 저 / 강주헌 역
이 책을 일부러 고른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식인에 관한 글을 읽을 기회가 되어서
식인 관련 도서를 찾던 중에 발견 하게 되었습니다.
학술서적이 아니라 신문 등에 기고 했던 글들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식인종에 관한 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주제의 글들을 쓴 것인데
번역 하고 편집 하시면서 아마 가장 자극적인 주제를
책의 제목으로 선전 하신 듯 합니다.
책의 첫 부분에서 크리스마스에 관한 이야기를 다룹니다.
다음의 글들을 읽어 보시면 놀라실지도……
거짓말에 맞서 싸우려는 교구의 모든 기독교 가정을 대신해, 250명의 아이가 디종 성당의 정문 앞에 모여 산타클로스를 화형 시켰다. 구경거리로 계획된 것이 아닌, 일종의 상징적 행위였다. 산타클로스와 관련된 거짓말이 아이들에게 종교적 감성을 일깨우지 못하고 조금도 교육적 수단이 못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많은 사람이 산타클로스에 대해 자기 바람대로 말하고 글을 쓰며, 산타클로스를 매질하는 할아버지와 동일 선상에 있는 존재로 삼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기독교인에게 크리스마스 축제는 언제까지나 구세주의 탄생을 기념하는 날로 유지되어야 한다 (12).
유럽에서는 적어도 프랑스에서는 크리스마스에 산타클로스가 선물 주고 돌아다니는 풍습이 없었더군요. 산타클로스를 화형에 처했다니…
물론 현재에 일어난 일은 아니고 2차 대전 정도 즈음에 일어난 일입니다.
크리스마스는 본질적으로 현대 축제이지만 고풍스런 특징을 많이 지닌다. 예컨대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에 겨우살이의 사용은 드루이드교의 유물이다. 따라서 중세시대의 유행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크리스마스트리는 17세기의 독일 문헌에서 처음 언급되었고, 18세기에 영국으로 전해졌고, 프랑스에는 19세기에야 전해졌다 (18).
크리스마스가 기독교 (개신교 천주교 모두 포함)축제 이기는 하지만 이교도의 풍습이 많이 포함 되어있습니다. 여기에서도 겨우살이의 사용이 드루이드교에서 나왔다고 하네요. 그리고 크리스마스트리 역시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고요.
그리고 다음 기사를 보면 크리스마스 트리와 한국과의 재미있는 인연도 있습니다.
http://news.joins.com/article/10240929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나눠주는 역할을 맡은 사람의 이름도 산타클로스, 니콜라우스 성자, 노엘 할아버지 등으로 다양했다는 사실에서, 크리스마스트리도 어디에서나 동일한 형태를 지니던 원형이 아니라 수렴 과정의 결과물로 여겨진다 (18).
어느 종교 또는 신화 모든 것이 원형 그대로의 보존 보다는 주변 문화를 흡수해 가면서 지역화와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또한 산타클로스에 대한 이야기가 신 또는 통과 의례에 관한 의식(Ritual)일 수도 있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예를 든 것이 미국 푸에블로 원주민들의 카치나에 관련된 의식입니다. (카치나에 관한 이야기도 재미있기는 한데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아니라서). 카치나에 대한 기원 신화가 빠져죽은 아이들에서 왔다고 합니다. (22~24). 그런데 이와 비슷한 행사가 일본에도 있습니다. 나마하게 축제로 알고 있는데 (배운지가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 가물 합니다) 하나의 통과의례로 시작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도 빠져죽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비키(Mabiki)라고 표현 되는데 2번째 아이가 너무 일찍 태어날 때 이런 일을 했다고 하는 군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엽 까지 행해졌다고 합니다. (글이 삼천포로 빠져버렸습니다)
어린아이들의 공간은 다른 곳에 있다. 가면과 살아 있는 사람이 있는 곳이 아니라 신과 죽은 사람이 있는 곳이다. 신은 죽은 사람이며 죽은 사람은 어린 아이들이다 (24).
산타클로스의 먼 기원이 '학대 받는 사람들의 수도원장,' '환희의 수도원장,' '어리석은 사람들의 수도원장' 등에 있다는 것을 종교역사학자와 민속학자가 일반적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25).
프랑스 고고학자 살로몽 레나크 (1858~1932)가 통찰력있게 지적한 바에 따르면, 고대 종교와 현대 종교의 커다란 차이는 "이교도들은 죽은 사람들에게 기도하지만 기독교인은 죽은 사람들을 위해 기도한다."는 관습과 관계가 있다 (34).
기독교와 다른 종교들과의 차이점일까요? 조상을 모시는 (죽은 사람들에게 기도) 기도와 죽은 사람을 위해 하는 기도. 별로 통찰력 있게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의 민속 종교에서는 조상신에게 기도를 하기도 하지만 조상신을 위해서 제를 지내기 때문입니다. 그 때 당시의 눈으로는 통찰력 있게 보였을 수도 있지만 지금이라면 그렇게 보이지 않을 듯 합니다.
남성의 할례가 남성의 성적 쾌락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 않더라도 어린아이의 온전한 몸에 위해를 가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다시 말하면 여성 할례와 마찬가지로 남성 할례도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게 하는 폭력적인 흔적을 남긴다 (62).
장신구는 우리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하며, 더구나 그 부분은 내가 '야생의 사고'라고 칭했던 것이 생생하게 지속되는 부분이다. 우리 시대의 여성도 귀걸이를 착용한다. 그런 여성이나, 그런 여성을 바라는 남자도 불멸의 물질로 소멸하는 몸을 굳건히 해야 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셈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장신구가 물렁물렁한 곳을 딱딱한 것으로 변화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게다가 장신구는 후세에 전해지기도 하지 않는가? 장신구가 그 역할을 해낼 수 있다면, 우리가 자연에서 발견하는 가장 안정된 재료들을 결합해 왕관처럼 불안정성을 떠올려 주는 형태를 만들어내거나 장신구의 단단함을 우리의 연약함과 결부함으로써, 그런 모순이 존재할 필요가 없는 이상적인 세계를 작은 형태로 축약해놓은 것이 장신구이기 때문일것이다 (93).
개인적으로 장신구를 좋아합니다. 요즘은 잘 안하고 다니지만 꽤 많은 양의 장신구를 했었는데 장신구에 이러한 의미가 있었다니…
예술가의 초상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젊은 족장은 조각상을 꼼꼼하게 살펴보았고, 조각상이 인간의 몸과 완전히 똑같이 변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틀링기트족은 침샨족의 예술적 재능을 높이 평가하며 기꺼이 많은 작품을 주문했다. 그런데 침샨족은 그 목각상에 대해 틀링기트족과 다른 식으로 이야기한다. 죽은 부인의 조각상을 조각한 사람은 홀로된 남편이었다. 물론 그 남편도 조각상을 살아 있는 사람처럼 대했고, 대화를 나눈다고 생각하며 질문하고 대답한다. 어느 날 두 자매가 그 집에 몰래 들어와 몸을 숨긴다. 남자가 목각상을 껴안고 입맞춤까지 하는 것을 보고 두 자매는 웃음을 터뜨린다. 그제야 남자는 두 자매를 발견하고, 그녀들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한다. 동생은 조심스레 식사하지만 언니는 게걸스레 먹는다. 잠시 뒤 언니는 잠들었지만 자기도 모르게 설사하며 몸을 더럽힌다. 동생과 남자는 몇 가지 약속을 조건으로 결혼하기로 한다. 남자는 목각상을 붙태워 없애고 언니의 창피스런 실수를 함구하는 대신, 동생은 '남자가 목각상에게 한 짓'을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102~104).
먹을 것에 관련된 (양적인) 악습과 성관계의 (질적인) 악습을 비교한 것이 인상적이다. 두 경우가 모두 어휘의 남용이란 점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지나친 폭식과 조각상과의 섹스는 별개의 영역에 속하지만 세상의 모든 언어에서 '먹다'와 '성교하다'를 뜻할 때 대체로 같은 단어를 사용하므로 충분히 비교될 만한 행동이다. 하지만 틀링기트족의 신화와 침샨족의 신화는 모티프를 똑같은 방식으로 다루지 않았다 (104).
먹다와 성교하다를 뜻하는게 많은 문화에서 발견된다니 놀랍습니다!
수천 년이란 척도에서 보면 인간의 열정은 뒤섞인다. 시간이 흐른다고 인간이 경험한 사랑과 증오, 인간들 간의 약속, 인간의 투쟁과 욕망 등에 덧붙여지는 것도 없고 제외되는 것도 없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열정은 똑같다 (105).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인간’이라는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나 봅니다.
Page 110
누구나 자신의 관습에 속하지 않은 것은 야만적인 것이라고 부른다.
Page 114~115
양자물리학이 미시적 관점에서 묘사한 현상을 거시적 관점으로 옮겨 놓은 듯한 멋진 예를 들어보자. 세네카족(이로쿼이 연맹을 결성한 다섯 부족 중 하나)의 한 신화에는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들어 있다. 한 처녀가, 상대 남자가 강력한 여자 마법사의 아들이란것을 알고 결혼을 승낙한다. 그러고는 남자를 따라 시어머니의 마을로 간다. "남편이 앞에서 걸었다. 그들은 길이 둘로 갈라지는 지점에 이르렀다(두 좁은 길은 먼 곳에서 다시 만나기 때문에 길쭉한 고리를 형성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여자가 보기에 남편이 둘로 나눠지더니 각자 하나의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녀는 어안이 벙벙해져 어느 길을 택해야 할지 몰랐다. 다행히 그녀는 오른쪽 길을 택했고 (신화에서는 왼쪽 길을 택했을 경우에 어떤 일이 벌어지느닞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다), 곧 두 길이 합해지는 것을 확인했고, 그와 동시에 남편의 두 몸이 다시 하나로 합해지는 것도 보았다. 이 때문에 그 이상한 남자는 '평행하게 달리는 두 길'이란 뜻의 이름으로 불렸다." 형식적으로 복수인 개념이 하나의 존재를 가리키는 셈이다.
따라서 이로쿼이족은 일반적으로 경험하는 세계와 확실히 다른 어떤 세계, 즉 하나의 몸이 때로는 회절하는 파동처럼, 때로는 자신의 개체성을 보존한 입자처럼 행동하는 세계를 생각해냈다.
플루타르코스 [식탁에서의 화제]
어느 날 데모크리토스가 무화과를 먹다가 꿀맛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며, 하녀에게 그 무화과를 어디에서 구했느냐고 물었다. 하녀가 과수원에서 딴 것이라고 대답하자, 데모크리토스는 무화과에서 꿀맛이 나는 이유를 알아내기 위해 그 과수원을 조사하기 위해 하녀에게 그곳으로 데려가달라고 부탁했다. 하녀는 "괜한 수고를 하실 것 없습니다. 제가 꿀을 담았던 그릇에 무화과를 무심코 넣어두었기 때문에 무화과에서 꿀맛이 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데모크리토스는 "네가 그렇게 말하니 화가 나는구나. 난 내 생각대로 하겠다. 진짜로 무화과에서 꿀맛이 나는 그 이유를 따져봐야겠다."라고 꾸짖었다 (117).
예나 지금이나;;; 하녀가 하는 말을 들을 생각도 안하는…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은 평행하게 같은 방향으로 발전한다. 또한 두 학문의 발전 방향에 따르면, 비유적인 언어에서 사유의 근본적인 방향을 찾아내야 한다. 사유의 근본적인 방향은 일반적인 생각처럼 비유적인 언어와 현실 세계를 떼어놓는 게 아니라 오히려 비유적인 언어를 현실 세계에 접근 시키기 때문이다 (119).
식인의 풍습
식인의 풍습이란 자체는 객관적인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식인 풍습은 자기 종족 중심주의적인 것이어서, 식인 풍습을 금지하는 사회의 눈에만 존재할 뿐이다. 생명의 단일성을 믿는 불교에서, 모든 살은 어디에서 왔던 간에 식인종의 먹을거리이다. 반면에 아프리카와 멜라네시아에서 몇몇 종족은 인간의 살이 가장 맛있거나 가장 훌륭하지는 않아 이름이 없지만, 다른 짐승의 살과 마찬가지로 먹을거리로 생각한다 (128).
모권제 아래에서도 권력은 항상 남성의 몫이었다는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모권제에서는 어머니의 남자 형제들이 권력을 행사하고, 부권제에서는 남편이 권력을 행사한다는게 유일한 차이였다 (154).
그런데 뇌신경과학은 언어가 약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등장보다 훨씬 이전에도 존재할 수 있었다는 것을 입증해냈다. 우리의 먼 조상 중 하나인 호모 하빌리스의 유해를 바탕으로 경뇌막을 주조해 본 결과에 따르면, 언어의 생성과 제어에 관련된 브로카 영역과 왼쪽 전두엽이 이미 200만 년 이상 전에 형성되어있었다. 호모 하빌리스로 붙여진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호모 하빌리스는 초보적이지만 그런대로 규격화된 형태를 지닌 연장을 만들었다. 이런 점에서 오른손을 제어하는 부분이 브로카 영역에 인접해있고, 두 부분이 함께 발달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호모 하빌리스가 말을 했다고 주장할 근거는 없지만, 호모 하빌리스가 말을 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수단을 지녔던 것만은 확실하다 (160).
인간이 의식하든 않든 간에 살아 있는 생명체를 죽여서 영양을 취한다는 사실이 인간에게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은 조금도 놀랍지 않다. 따라서 그런 철학적인 문제를 모든 사회가 나름대로 해결하려고 애썼다. [구약성서]는 인간의 육식을 타락의 간접적인 결과로 해석한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채소와 열매만을 먹었다.([창세기] 1장 29절). 노아 이후에야 인간은 육식동물이 되었다 ([창세기] 9장 3절). 인간과 다른 동물들 간의 이런 단절이 바벨탑 이야기 직적에 있었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바벨탑 사건은 인간들 간의 단절 이기 때문에, 인간들 간의 단절은 앞서 있었던 인간과 다른 동물들간의 단절에서 비롯된 결과이거나, 그런 단절의 한 특수한 사례쯤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생각하면 육식은 어떤 의미에서 채식의 보충이 된다. 반면에 문자가 없는 일부 종족은 육식이 식인 풍습을 어렵게 약화기킨 형태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사냥꾼(혹은 어부)과 사냥감 간의 관계를 친척 관계에 근거해서 생각함으로써 그 관계를 인격화한다. 예컨대 결혼이나 더 직접적인 인연을 통해 맺어진 친척 관계, 혹은 부부 관계로 생각한다 (프랑스어도 그렇지만 세계의 모든 언어가 은어적 표현에서 먹는 행위와 성교 행위를 동일시한다). 따라서 사냥과 고기잡이는 같은 종족 내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식인 풍습으로 여겨진다 (166).
매 순간 우주에 존재하는 생명의 총량이 항상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종족들도 있다. 따라서 생명의 총량에서 일부를 죽인 사냥꾼이나 어부는 자신의 수명으로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이런 해석도 육식을 식인 풍습의 한 형태라고 생각하는 것이 된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타인을 먹는 행위가 결국을 자신을 먹는 행위가 되기 때문에 '자식풍습auto-cannibalisme'이다 (165)
우리가 먹을거리를 마련하기 위해 살아 있는 생명체를 키우고 학살하고, 더 나아각 그런 가축의 살을 조각해서 진열장에 전시한다는 생각이, 16세기나 17세기의 여행자들이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및 아프리카에서 보았던 식인 풍습적인 식사만큼이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날이 올 것이라는 예견이었다
동물보호운동이 점점 확산되고 있는 현상이 그 증거이다. 우리 풍습이 우리를 옭아매는 모순, 즉 노아의 방주에 온갖 동물이 들어갈 때도 분명히 드러나 창조의 일관성과 그 동물들이 방주에서 나올 때 창조주 자신에 의한 육식 허용 사이의 모순을 우리가 점점 뚜렷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166).
예전에 식인을 하는 부족을 미개하다고 하던 문화가 이제는 육식을 하는 문화를 혐오하는 문화로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모든 곳이 그렇다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문화가 생겨나고 있다는 이야기 입니다.) 육식을 한다는 것이 결국은 식인의 풍습과 차이가 없다는 말일까요?
광우병만이 우리에게 육류 섭취를 멀리하라고 경고하는 유일한 변수는 아니다. 앞으로 한 세기 내에 인구가 십중팔구 두 배로 증가할 세계에서, 가축들은 인간에게 무서운 경쟁자가 될 것이다. 현재에도 미국에서 생산되는 곡물의 3분의 2가 가축을 먹이는 데 사용된다 (170).
육식을 줄여야 하는 걸까요? 육식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반대 하지도 않는 입장이다 보니…
히말라야 중국 쪽 국경에서 살아가는 한 종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절대적으로 모계에 속하는데 남매와 누이가 낳은 자식들로 구성 된다고 합니다. 여자가 여러 다른 남자들과 성관계를 통해서 자식들을 낳습니다. 여자의 경우는 인척관계가 아닌 모든 남자와 성관계를 가질 수 있습니다 (근친상간은 금지 되어있습니다.) 대체적으로 이런 만남은 내일이 없는 요즘 식으로 말하면 원나잇 스탠드 입니다. 밤이 되면 남자들은 열심히 여자를 찾아다니고 여자는 남자의 방문을 무제한 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누구인지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화에서는 ‘아버지’나 ‘남편’을 뜻하는 단어가 없다고 합니다. 이러한 경우에 아이들은 사회 (부족)이 키우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