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점점 더 상호 의존성이 커지고 복잡해지는 커뮤니케이션, 에너지 모체와 경제 패러다임에 모여 있는 더 넓은 가상 가족으로 인간의 공감 욕구가 확대되는 현상과 불규칙하지만 명명백백한 인간 의식의 변화에서는 인간의 진화를 감지할 수 있는 패턴이 존재한다. 만약 이 과정에 대한 이야기가 뜻밖의 새로운 사실로 느껴진다면, 그것은 오로지 대부분의 역사가들이 주로 인류의 무용담을 돋보이게 만드는 병적인 사건들, 즉 사회 대변동과 전쟁, 대량 학살, 천재지변, 권력 투쟁, 사회 불만 제거 등을 역사에 기록했기 때문이다. 역사가들이 인류의 여정 중에서 어두운 면에 몰두하는 성향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예외적이고 이례적인 사건들이 사람들의 주목을 끌기 때문이다. 그런 사건들은 우리의 일상을 동요시킨다는 이유, 그리고 정말로 이례적이라는 단순한 이유로 인간의 집단 기억에 지울 수 없는 자국을 남긴다. 하지만 인류 역사의 많은 부분이 기본적으로 병적인 사건들과 파괴적인 사건들로 이루어졌고 하나의 종으로서 인간 본성이 약탈적이고 폭력적이고 공격적이고 불안정하고 심지어는 소름 끼칠 정도 였다면, 인간이라는 종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졌을 것이다. 삼십 년도 더 전에 헤겔이 인류 역사의 특징에 관해 쓴 글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의 글은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고, '공감의 시대'를 쓸때 모종의 영감을 주기도 했다. 헤겔은 "행복의 시대는 화합의 시기이기 때문에 역사에 백지로 남는다."라고 말했다.
인간의 실제 역사에는 또 다른 면이 존재한다. 인간 의식이 진화한다는 점과 더욱더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영역으로 공감적 욕구가 확대된다는 점이다. 인간의 역사에서 기록되지 않은 부분에는 행복의 시기와 함께 지속적으로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 점점 더 진화하는 사회적 틀 속에서 정체성을 찾기 위한 인간의 충동이 일으킨 화합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틀들은 사회적 자본을 만들고 인류 여정의 의미를 탐구하며 상황의 원대한 계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때 이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된다. 공감은 문명이고, 문명은 공감이다. 이 둘은 실제로 분리할 수 없다.
한계비용 제로 사회 - 제러미 리프킨저/ 안진환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