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의 정의는 뭘까. 소수의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혹은 ‘불특정 다수’에게 정신적, 물리적 행위를 가하는 것. 특히 범죄자, 테러단체가 그동안 수많은 이들을 다치게 하고, 법과 공권력이 그들을 잡지 못해서 뉴스에 나오는 단 한사람의 용의자는 수많은 관계없는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 넣는다.
그리고 그들의 흉악하고 잔인한 범죄는 그 저지른 죗값을 충분히 받지 못해서 또 직접적인, 혹은 간접적인 피해자들을 공분하게 하며, 법이 더 엄중해져야 하고, 법이 안되면, 우리가 직접 복수에 나서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분노를 치밀어 오르게 한다.
그리고 드는 생각, 차라리 “저렇게 정말 정말 나쁜놈들 국가가 싸그리 잡아다가 짐승처럼 때리고 벌주고, 정신 차리게 혼구멍을 내주고, 교수형, 총살 시킬 때, 그 때가 참 치안이 좋던 평화의 시대였다”고 지난 시절을 그리워 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게 치안과 안보가 개인 한사람 한사람의 생명, 재산, 가족, 인권 - 사람으로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한 - 을 지켜준다고 믿었던 우리는 그런 하나 하나의 ’나쁜놈’들로부터의 위협을 느끼지만, 정작 큰, 아니 거대한 나쁜놈, 그들이 스스로 더 좋은놈이라고 포장하고, 또 누군가를 나쁜놈으로 만들고, 정당하게, 떳떳하게 수많은 사람들을 고통받게 만드는데 대해서 우리는 오히려 담담해 진다.
세월이 지나서 나치즘 같이 셀 수 없이 힘들만큼 많은 사람을 살해하고 고통받게 만들어도, 일각에선 “히틀러의 삶을 보거나, 유태인들의 작태를 살펴보면 히틀러가 그럴만도 했다.”와 같은, 자신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도 없이 실언을 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 주변의 작은 범죄들에 대해서 그렇게 가혹한 이들이 셀 수 없이 수많은 이들에게 학살을 자행하거나 방관한 이들을 너그럽게 대할 수 있는 것은 지나버린 역사이기 때문일까, 나와는 관계없는 일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성인과 같이 마음이 넓어서일까. 상대적으로 작은 범죄에 대해서는 그톨
사건, 사고 물론 많은 경우 인재일 수 있다. 아무튼 그것들로 부터 우리를 지켜줄거라고 믿었던 국가가 행사하는 폭력들. 대체 그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누군가는 또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우리는 스스로를 ‘헬조선’에 사는 ‘분노조절장애’인 ‘N포세대’로 진단내렸다.
그리고 이렇게 문제가 발견된 이상, 그 책임자를 찾아야 되는데, 아무도 내가 그 책임이 있다고 나서질 않는다. 그리고, 그 책임을 정치인들, 범죄자들, 게으른 사람들, 이슬람들, 유태인들, 빨갱이들, 경상도 놈들, 전라도놈들, 심지어 도대체 누구를 가리키는 지 당최 알 수 없는 ‘한국놈들, 조선놈들’이라고 특정하고 덤탱이 뒤집어 씌어서 욕하고 밟아왔던 것은 아닐까.
이 문제들의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우리가 ‘관심 가질 필요없는 정치, 굳이 되새길 필요없는 격동의 근대사, 꺼내면 시람들과의 논쟁거리 밖에 안되는 이야기, 바쁘고 절실한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겐 가치 없는 이야기’ 등 온갖 이유로 굳이 외면하고 피했던, 바로 그 가까운 과거사를 만날 수 밖에 없다. 과거사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돌아가는게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과거사의 진실에 대해 과연 얼마나 잘 알고 있는 것일까.
가까운 과거, 근대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자세히 들여다 봄으로서 현재의 우리가 겪는 문제들의 근원을 찾아가게 해 주는 책이다.
김동춘, ⟪대한민국은 왜? 1945-2015⟫, 사계절
최근, 한 뉴스의 인터뷰에 초대되었던 칼럼니스트 알랭 드 보통은 “수많은 사건 사고를 뉴스에서 쏟아내는데, 사람들은 그 뉴스를 챙겨 보며 희안하게도 안심하고 잠이 든다. 저렇게 수많은 사건들에 내가 들어있지 않다는 안도감 때문이다”란 말을 했다. 어쩌면 그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국가폭력’ 이만큼 강력하고 다수에게 행해지며, 마치 정의의 모습으로 우리를 안심시키는 말이 있을까.개인의 시민 한 사람들이 국가폭력에 홀로 맞서야 하는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는 세상을 새로운 행정부가 만들어 주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