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로 싸운다는 것을 의미하는 열전의 반댓말로서의 '냉전(Cold war)'이란 2차대전에서 시작해서 1991년까지 사실상 미국과 소련이 중심이 되어 지속했던 시기를 의미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과 유럽, 중국이 나치, 일본 등과 맞섰지만, 전쟁이 종료되고, 소비에트 연방을 중심으로 하는 공산권에 맞서는 대립관계로 국가들의 세력이 재편된다. 그 긴 냉전이 끝나는 시기, 그 시기로 부터 세계가 어떻게 대립하는지를 다루고 있다.
같음과 다름을 나누는 기본적인 것은, 문화와 민족인데 대개 이 구분은 종교를 기준으로 한다. 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의 종교를 중심으로 문명권을 나누고, 그들이 대립하는 양상을 표현한 것이 바로 '충돌'이다. 그리고 책의 표지 역시 기독교의 십자가, 이슬람의 별과 달, 그리고 태극문양이다. 물론 여기서 태극문양이 의미하는 것이 도교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아시아의 종교를 에둘러 표현한 데 지나지 않는다.
아시아의 종교들 까지 많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 저자가 중점에 두는 것은 '이슬람'이다. 그리고 그가 문명들의 세계로 구분한 구분법을 보자.서구,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 이슬람, 중국, 힌두, 정교, 불교, 일본이다. 이 9개의 구분은 사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문명을 구분짓는 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저자가 말하는 표면상 '문명의 충돌'이란, 다시 말해서 충돌할 수 밖에 없는 단위의 구분이다.
한 발 더 나아가서 그의 구분이란 대개 오늘날 미국이란 나라의 시점에서 문제를 자주 일으키는 골치 아픈 존재들을 대충 구분해 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힌두가 그렇고 중국이 그렇고, 이슬람이 그렇고.
새뮤얼 헌팅턴, ⟪문명의 충돌⟫, 이희재 번역, 김영사
다시 말해서 이 책은 사실상 서구와 비서구를 나누고 비서구 세계의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고찰하는 방식으로 보인다. 그리고 충돌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는 정도의 간결한 결과로 정리된다. 즉, "충돌은 불가피하다"이다. 그래서 ⟪오리엔탈리즘⟫의 저자인 예루살렘대학의 에드워드 사이드는 "충돌이 일어나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서로를 알고자 하는 의지가 없기 때문"이란 반박으로 이 책을 "오만한 미국의 잘못된 분석"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사실 정치적으로 이책은 보수적인 입장의 국제분석자료로 의미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상의 비판들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중요한 것은 그 태도와 상관없이 '충돌', '문명', '종교'등에 대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입장에서 간결하게 잘 정리를 해주고 있다는데 있다. 탈냉전 시대에 우리가 알아야 하는 여러 문명권의 사건과 상황들을 이 책만큼 간결하면서도 유기적으로 설명한 책도 또한 없을 것이다. 실제로 이책은 저자의 칼럼에서 시작해서 큰 반향을 주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연구되고 책으로 쓰여진 것이다.
각 문명권들의 역사와 생각을 읽고 미국이란 강력한 패권이 그들의 어떻게 충돌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하는 불편한 시각에서의 해답을 제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그의 말대로 비서구라고 뭉뚱그려져 불리는 우리가 잘 모르는 또다른 비서구들을 알기 위해 우리는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