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빔바입니다.
최근 "지독한 하루"라는 책을 매일 몇챕터씩 읽고있었는데요, 내일부터 새로 읽어야할 책이 있어 오늘 다 읽어버렸습니다.
이 책의 저자인 "남궁인"씨는 응급의학과 전문의로, 현재 이대목동병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젊은 분인데 사상이 바로 서있고 의사로서의 실력도 대단하신 것 같더라구요. 물론, 이 분을 아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글솜씨도 정말 뛰어나십니다.
이 책은 남궁인씨가 의대생, 레지던트, 인턴, 전문의를 거치며 경험했던 여러 이야기들을 정리한 책입니다.
남궁인씨가 응급의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책의 내용은 주로 응급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기술되어있습니다. 기술되어있다고 말했지만, 냉정하고 사실 위주로 서술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남궁인씨가 환자들을 보고 응급실 현장을 경험하며 느꼈던 것들을 어떻게보면 문학적으로, 어떻게보면 감정적으로 바라본 것들을 유려한 문체로 풀어나갑니다.
책을 읽어보며 느낀 것은, 응급실에서의 하루 하루는 말 그대로 "지독한 하루"라는 것입니다. 그 곳에선 온갖 인간 군상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칼에 찔렸지만 치료를 거부하는 조폭, 번개에 맞아 온 몸이 구워진 사람, 놀다가 방충망이 터져 아파트에서 추락한 남매, 온 몸의 뼈가 조각 나있는 아이, 성탄절에 방에 가스를 가득 채우고 라이터에 불을 붙여 스스로의 목숨을 끊어버린 외로운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살리려는 의사, 간호사, 소방관 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기적적으로 살아나고, 어떤 사람들은 한 때 인간이었던 고깃덩이가 되어버립니다. 그리고 응급실의 의사들은 이런 장면을 매일 지켜봅니다. 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매일 매일이 지독한 하루입니다.
저는 의사는 아니지만 정신보견계열에서 근무하게 되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과 완전히 동떨어져있지 않기에 더욱 공감이 가는 것 같습니다. 이미 중요성이 충분히 인정도고 있는 응급실이나 중증외상의학과가 이런 대우라면 정신보건 계열은 훨씬 더 열악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죠...
이 책에는 여러 제도적인 문제들에 대한 지적도 언급됩니다. 응급실에 대한 지원 부족, 소방 시스템의 구멍, 그리고 전국 중증외상센터에 대한 부족까지... 안타까운 하나 하나의 죽음들은 모두 거대한 구조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정부의 의료정책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습니다. 저는 주로 정신건강증진센터, 치매 센터의 대폭 증설과 같은 정책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실효성있게 진행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쪼록 더 많은 사람이 국가의 보호를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태어나서 응급실을 가본 적이 없지만 간접적으로나마 접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 궁금하신 분들은 일독을 권합니다.
이상, 빔바였습니다!
appendix
아래의 글들은 제가 행동프로젝트 글을 쓰며 책에서 발췌한 일부 문장들입니다. 맥락 없이 보면 이해가 안갈 수도 있을 듯 하지만, 어떤 책인지 분위기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
"절 죽이세요..."
그의 마지막 말이 모두의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소생술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우리가 그를 죽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가 스스로를 죽여가고 있는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는 이 육신을 더이상 사용하기 싫다는 듯,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를 포기하고 공식적으로 사망을 선고했다. 그러자 모두 허탈감에 그를 보며 멍하니 서 있었다. 의료진의 손바닥은 그의 살점과 그을음으로 뒤죽박죽이었다. 그의 흉부는 뼈가 드러날 정도로 벗겨지고 흩어져 있었고, 사지의 붕대는 흐트러져 엉망진창이었다. 그것은 마치 함부로 다뤄진 미라 같았다. 그는 이제 하얗고 평평한 리넨 한 장만 덮으면 충분했으므로, 복잡한 붕대 감기나 다른 처치는 더이상 필요없었다. 인턴 하나가 그의 몸에 감긴 붕대를 모조리 끊어 쓰레기통에 던졌다. 하얀 리넨 한 장이 즉시 그의 몸 위에 덮였고, 간호사는 그의 생전 이름을 출력해서 그위에 테이프로 아무렇게나 붙였다.
남궁인 "지독한 하루" 어느 편 중
세 문장으로 사건의 모든 경위를 순식간에 파악한 나는 환자를 급히 마주했다. '벼락 냄새'가 진동했다. 그녀의 전신은 이미 푸른 기색이었고, 피부가 잔뜩 불어있었다. 손발도 차디찼다. 나는 여기로 오기까지 필연적으로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결국 이런 날씨에 산 정상에서 사람을 데리고 내려오는 것은, 온전히 사람의 힘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신고 시각을 확인해보니 두 시간도 더 지난 상황이었다. 나는 비숨ㄹ에 불어난 팔과 다리를 이리저리 들어보았다. 관절이 전혀 접히지 않았다. 벼락을 맞은 순간 심장이 멈추었을 것이다. 곧 상황을 정리하고 이야기했다.
"돌아가셨네요.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더이상 할 처치가 없습니다. 지금 이 시간으로, 사망선고 하겠습니다."
죽었단 말, 말씀입니까?"
"네, 시간이 너무 지체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아, 어떻게 해, 아, 아니,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그는 뭐라고 항의하려는 듯한 기색이엇다가, 이내 마음을 접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기색도, 그 접은 마음도 필연적이었다. 누구든 그럴 것이다. 그들은 그 힘겨운 사투 속에서 그녀가 살아나기만을 소망했을 것이다."
남궁인 "지독한 하루" 어느 편 중
"아, 엄마가 대신 바닥에 처박혔어야 하는데. 엄마는 어디든 부서져도 괜찮아. 시간을 돌려 엄마가 죽을게. 엄마는 그딴 거 100번도 뛰어내릴 수 있어. 지금이라도 뛸게. 승호야... 창문... 방충망... 엄마 평생 빛 안 드는 곳에서 살 테니까, 엄마랑 집에 가자. 엄마한테 뭘 해도 괜찮아. 내가 당장 이 창문을 다... 아냐, 엄말아 집에 가자, 아..."
남궁인 "지독한 하루" <1미터의 경계> 중
- 이 부분은 남매 둘이 아파트에서 장난을 치다 방충망이 찢어져 추락한 사고를 다루고 있습니다. 여자 아이는 흙에 떨어져 다리가 부서졌지만 생명은 건졌는데, 남자아이는 아스팔트로 추락해 즉사합니다. 의학계에서는 심정지 상태에서 뇌가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것은 소생률 0%로 본다고 합니다. 어떤 노력을 해도 살릴 수 없었다고 하더군요... 위의 발췌문은 아이의 엄마가 자신이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죄책감에, 그리고 아이의 죽음을 부인하며 외치는 말들입니다. 자식을 보내는 부모의 심정을 "단장"의 심정이라고 하더군요. 장이 끊어지는 심정이라고요... 저는 자식이 없지만 이 챕터를 보며 부모의 마음이 어떤 것일지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날 위해 기도해줘, 날 위해 기도해. 빨리, 예수님께 기도해줘. 기도하란 말이야. 기도, 날 위해 빨리 기도해줘."
수 없이 겪었을 이 상황이 여전히 끔찍했는지, 어머니는 무릎을 꿇은 채 울며 붕대 사이로 삐져나온 아이의 손가락을 꽉 잡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화답했다.
"엄마가 널 위해 기도할게. 예수님과 너를 위해 기도하렉. 제발 살아나줘. 지금 너를 위해 기도하고 있어, 예수님도 기도하고 계셔. 기도, 기도하고 있어."
이미 신음으로 혼잡한 응급실에 괴성을 지르며 눈물을 흘리는 모녀의 비명이 퍼져나갔다. 그 찢어지는 소리가 울리자, 응급실은 예배당처럼 경건해졌다. 눈물바다 속에서 흰 가운들은 묵묵히 아이의 조각을 한데로 모았다. 그것들을 맞춰 온전한 영혼을 만들기라도 할 것처럼.
남국인 "지독한 하루" <조각난 몸> 중.
- 이 부분은 "불완전 골형성증(Osteogenesis imperfecta)"라는 질병을 가진 아이가 응급실에 실려온 이야기입니다. 이 질병은 선천적으로 뼈가 약해 쉽게 부러지는 희귀병이라고 합니다. 뼈는 쉽게 부숴지지만 뼈가 붙는 속도는 일반인과 동일하다고 하네요. 고칠 방법은 없다고 합니다... 위의 장면은 아이가 침대의 난간을 쳐서 팔뼈가 조각나 응급실에 찾아와 몸에 깁스를 두르는 상황입니다. 병원에선 입원할 것을 권유하지만 어머니는 집에서 신에게 기도하겠다며 입원을 거부하죠. 저는 이런 어머니가 답답하게 느껴졌지만, 위의 상황을 읽고 나서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도 했습니다. 고칠 수 없는 병, 끊임없이 고통을 느껴야 하는 병 앞에서 신 말고 다른 어떤 것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어려운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