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신의 고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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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cminus, 슬픈 눈망울의 버섯소녀

따뜻한 햇살을 받고 신전이 빛을 낸다. 신전을 향해 경배를 올리는 이들의 얼굴에서도 빛이 난다. 신전을 지키는 이들의 얼굴에서도 빛이 난다. 근엄한 표정을 지어야 할 터인 그들조차도 즐거움을 감추지 못 한다. 실로 빛나는 도시다. 그리고 즐거운 표정을 지은 사람들 사이에 홀로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는 본디 평범한 소녀였다. 이 빛나는 도시에서 그녀의 평범함에 대한 이야기는 그녀의 신성성을 해치기에 금기시 되고 있다. 그녀는 철저히 여신으로서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금기다. 그래서 그녀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어느날, 잠에서 깬 소녀는 거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의 머리에 버섯이 자라 있었다. 당황한 그녀는 며칠간의 식단을 점검했지만 곧 부질 없는 일임을 깨달았다. 가난한 마을에 사는 그녀는 항상 굶주려 있었고 다른 마을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녀 또한 산에서 배를 채웠다. 그녀가 살기 위해 먹었던 많은 것들을 모조리 되짚어 볼 수 없었고 되짚어 본다고 해도 가난한 그녀의 마을에는 의사가 없어 아무 소용 없는 일이었다. 당장 그녀는 가족을 전염병으로 잃었다.

부질 없는 고민을 마쳤지만 그녀는 집 밖에 나갈 수 없었다. 비록 산에서 굶주린 배를 채우는 처지지만 소녀에게는 소녀로서 지키고 싶은 품위가 있기 마련이다. 순수한 그녀는 자신의 품위를 위해 정오가 지나고 해가 지도록 집 안에 있었지만 아마 그녀가 마을 사람을 만났다면 전염병 환자로 몰려 산채로 불태워졌을지 모른다. 그들이 특별히 잔인해서는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너무 많은 가족을 잃었다. 배고프고 절박한 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법이다.

하지만 순수한 그녀는 무서운 고민은 하지 않고 집에서 거울을 보며 한숨만 쉬었다. 버섯을 뽑아내려고도 해보았으나 버섯과 피부의 경계가 없었다. 버섯들은 그녀의 신체의 일부인 양 자연스레 붙어있었다. 그녀는 굶주린 배를 끌어안고 한숨만 쉬고 있었다. 그렇게 집에서 한숨만 쉬던 그녀도 허기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산에 올라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산에 올랐다. 달이 적당히 밝아, 산길은 적당히 비추어주고 그녀의 버섯은 적당히 가려줄 것이란 희망 속에.

산에는 그녀만의 나무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한 나무. 그녀는 다람쥐를 쫓다가 우연히 그 나무를 발견했는데, 그 나무 근처에는 항상 먹을거리가 풍부했다. 마을 사람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소녀는 비밀장소를 갖고 싶은 법이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돌아가는 길에 나무열매를 품에 안고 내려가곤 했다. 그 날도 그녀는 그 나무로 향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나무에는 그녀가 특별히 좋아하는 나뭇가지도 있다. 곧게 솟은 가지 중 혼자 아래로 쳐져있는 가지. 그 가지에 열리는 열매를 따먹으며 쉬는게 그녀의 즐거움이었다. 하루하루 살아남는게 일인 마을에서 그녀가 소녀다움을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 그 날도 그녀는 열매로 배를 채우고 나무에 기대어 쉬며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려 했다. 그녀는 여러가지 생각을 했다. 아예 마을로 돌아가지 않고 산에서 지낼 생각, 어떻게든 도시로, 자신을 고쳐줄 의사가 있는 도시로 가서 자신의 버섯을 보여줄 생각.

모든 이야기에서 그렇듯, 그녀의 평화도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함께 깨졌다. 감은 눈을 뜬 그녀는 곧 비명을 질렀다. 소리로 진작에 사람들이 오는건 알고 있었다. 그 사실도 충분히 그녀를 힘들게 하고 있었지만 비명을 지르기엔 충분치 않았다. 그녀를 놀라게 한건 그녀의 나뭇가지였다. 정확히는 나뭇가지에서 빛을 내고 있는 버섯이었다.

빛나는 버섯은 야밤에 배가 고팠던 마을 사람들이 발견했다. 그 버섯을 바로 집어먹은건 용기였을까, 걱정보다 허기가 컸을기 때문일까, 아니면 산에 대한 신뢰였을까?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다. 그 버섯은 아주 맛있었고 깊은 포만감을 주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빛나는 버섯은 길을 이루었고 마을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 빛나는 버섯을 따랐다.

마을 사람들도 놀랐다. 그녀의 비명에 놀란 것도, 적당히 가려진 그녀의 머리에 돋은 버섯에 놀란 것도 아니었다. 그들이 따라온 버섯의 길이 그녀의 나뭇가지에서 끝이 난다는 사실과 그녀 근처에 빼곡히 자라난 버섯에 놀랐다. 그 버섯들을 다 훑어낸 뒤에서야, 그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 버섯을 누가 피워냈으며, 그 버섯이 무엇인지를.

그녀의 버섯은 실로 기적의 존재였다. 마을 사람들의 굶주림을 해결한 것 물론이고 앓던 사람들도 금새 기운을 차렸다. 소문이 바람보다 빠르게 퍼져나가고, 그녀는 금새 여신으로 추앙 받고 그녀의 신전이 건설되었다. 가난했던 그녀의 마을 또한 여신의 마을이 되어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의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빛이 난다. 그렇다면 왜 그녀만 아직도 슬픈 표정을 짓고 있을까?

물론 그녀가 슬플 이유는 충분하다. 그녀의 삶에는 제약이 많다. 더 이상 그녀는 그녀의 나무에 기대어 쉴 수 없다. 그녀의 신민들에게는 행복한 기적이었지만, 기적의 도래 또한 그녀에게는 충분히 슬플 일이다. 그녀는 이미 그녀의 가족과 이웃들을 지독한 병에 잃었다. 사람이 오고 가는건 어디에서나 있는 일이라지만, 가난한 마을에서 맞는 병자의 최후는 특별히 비참하기 마련이다. 그 비참함을 아는 사람이라면 늦게 찾아온 기적에 대한 그녀의 원망을, 배부른 이의 투정이라 여기지 못 할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슬픈 표정을 지은 이유는 이 중 어느 것도 아니었다.

마찬가지로 어느 날, 잠에서 깬 그녀는 자신이 간절히 원한다면 기적이 끝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비로소 행복해진 마을 사람들을 다시 배고픈 삶으로 돌려보낼 수는 없었다. 마을 사람들 뿐만이 아니다. 그녀의 신민들의 문화는 격변했다. 그녀의 신민들은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는다. 가축을 사육하지도 않는다. 그들의 요리는 버섯을 활용한 요리 뿐이다. 의술은 쇠퇴했다. 의사들이 게을러서 연구를 멈춘건 아니다. 모두 버섯만 먹고 살고, 버섯만 먹으면 병에 걸리지 않는데, 어떻게 병자 없이 병을 연구하겠는가. 모두 그녀가 일으킨 기적이다. 게다가 그녀의 신민들은 기적이 끝이 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멍청한 것도, 기적에 눈이 먼 것도 아니었다. 그냥, 알았다. 기적이 멈추지 않을 것임을.

그래서 그녀는 기적을 멈추고 평범한 소녀로 돌아갈 수 없었다. 기적이 끝이 나면 사람들의 삶이 비참해질 것이기에. 그녀는 고민을 털어놓을 수도 없었다. 자신의 신민들이 자신의 희생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죄책감을 갖길 원하지 않았기에.

사실, 그녀가 기적을 멈추면 그녀는 무사하지 못 할 것이다. 다시 찾아올 굶주림과 전염병은 그녀의 책임이 된다. 그 굶주림과 전염병에 의해 삶이 무너진 이들은 그녀를 증오할 것이다. 감정에서 그치면 다행이다. 지금은 그녀의 옆에서 빛을 내는 신전의 호위병들이, 절박함과 비참함이 변질된 분노로 그녀에게 가장 먼저 창끝을 돌릴 이들이다.

하지만 역시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기에는 너무나도 순수했다. 그녀는 그저 자신의 머리에서 버섯을 치우고 싶었을 뿐이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소녀답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영원히 알지 못 할 사실은, 그 순수함 때문에 자신의 머리에 버섯이 돋았다는 사실이다.

나는 그 사실을 미안하게 생각한다.


@zzoya님의 그림작가&글작가 콜라보 이벤트 출품작입니다. 해당 이벤트는 kr-art 태그 진흥을 위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그림에 관심 있는 분들은 kr-art 태그를 많이 이용주세요. 그리고 그림에 관심 없는 분들도 kr-art 태그에서 눈호강하고 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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