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SSX 콜라보] 너, 그날, 내 허리띠 어떻게 했어?(초장문 주의)


이 소설은 성인을 대상으로 쓰여졌습니다. 만일 당신이 성인이 아니시라면, 뒤로가기를 눌러 주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만약 자신이 어린애인지 어른인지 모르겠다면 어머니에게 전화해서 확인받으십시오. 우리 딸~ 아직 엄마 눈엔 아직 어린이지~ 라는 대답을 들으면 보셔도 괜찮고, 오밤중에 웬 지랄이여 얌전히 가서 잠이나 자란 소릴 듣는다면 보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이 소설은 사랑받지 못한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게 제작되었습니다. 또한 소설을 읽고 생기는 정신적 피해를 책임지지 않으며 소설을 읽느라 드는 시간을 보상해 주지도 않습니다. 평균 러닝타임은 20분이며 이동진 평론가에게 “여기 범죄자가 있습니다” 라는 평론을 듣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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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가 기억하는 은정이의 가장 예뻤던 모습이다.
그러나 이제는 무표정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다.

“너 내가 말했지. 내 앞에 보이면 그땐 진짜 신고한다고.”

“잠깐만, 나, 사과를 하고 싶어서...”

“사과? 무슨 사과? 애초에 사과할 짓을 하지 말았어야 하는 거 아니야? 어떻게 그래? 어? 난 니가 진짜 친구라고 생각했어. 근데, 근데...니가 어떻게 그래? 이제 널 보면 무서워. 내가 무슨 기분인지 알아? 니 문자를 읽을 때마다 내가 어떻게 되는 지 아냐고!”

그녀가 떨리는 손으로 약봉지 몇 개를 꺼내다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그 때 이후로, 잠이 안와. 아니 잠을 못 자! 밤에도 자다 퍼뜩퍼뜩 깨고, 그림자 때문에 자꾸 잠이 깨. 너 진짜 뭐야? 나한테 왜 그랬어?”

은정이의 얼굴은 눈물로 범벅이 돼 있었다.

“그때 나한테 뭐했어? 어? 왜! 왜 내 허리띠가 없어졌냐고! 똑바로 말해! 죽여버리고 싶으니까!”


은정이를 처음 만난 건 학교의 정문에서였다. 은정이는 소위 ‘도를 아십니까’에 붙잡혀 쩔쩔매고 있었는데, 사이비들이 좀 독한 놈들이었는지 길을 막고, 손을 붙잡고 ‘기도를 해야 한다, 기운이 안 좋다’고 계속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여자애의 쩔쩔매는 모습을 보아하니 사이비들을 처음 겪는 것 같았기에 구해 줄 요량으로 가까이 다가갔다가 깜짝 놀랐다. 은정을 보고 든 첫 인상은 ‘이런 사람에게 용케 전도할 생각을 했구나’였다. 날카로운 눈매에 흰 피부, 한 겨울처럼 느껴지는 분위기. 얼굴이랑 성격이 꼭 들어맞진 않는구나, 생각하며 사이로 쓱 들어가 어깨를 감쌌다.

“죄송한데, 저 이 친구랑 밥 먹기로 했거든요. 좀 비켜요. 배고파요.”

은정은 어지간히 놀랐는지 토끼처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표정 연기 정말 못하는구나. 그냥 데리고 빠져나가려는데 남자 사이비가 얼굴을 찡그리며 내 팔목을 붙잡았다.

“놔.”

은정이는 그때 자기도 내 목소리가 무서웠다고 했다. 남자가 팔을 안 놓으면 진짜 패 죽일 것 같은 목소리였다고. 은정은 어깨부터 다리까지 완전히 얼음이 돼서 내가 안 끌어주면 그 자리에 몇 년이고 멈춰 있을 것 같았다. 딱딱히 굳은 여자애를 겨우겨우 끌어서 도서관 앞까지 가고 난 다음 어깨에 두른 팔을 풀었다.

“죄송해요. 많이 놀라셨죠?”

은정이는 얕은 목소리로 몇 번이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아직도 무서운지 연신 뒤를 돌아보며 내가 가는 방향으로 따라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거의 30분동안 붙잡혀서 사이비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특히 남자가 자꾸 인도를 가로막고, 여자가 손을 잡고 기도하자는 식으로 나와 뿌리치고 나오기 정말 무서웠다는 것이다. 은정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친절하게 달래며 몇가지를 이야기를 꺼냈다.

“어? 사회학과 신입생이에요?”
말을 나누며 알게 된 몇가지 사실은 은정이가 강동구에 있는 여고를 나왔고, 이번에 나와 같이 사회학과에 들어온 신입생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는 곳이 강의실 223호인 것까지 같다고. 아무래도 같이 오리엔테이션을 듣게 될 모양이었다. 은정은 무서운 곳에서 벗어나서 그런 지 새처럼 끊임없이 재잘거렸고, 나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몇 가지는 고개를 끄떡거렸고 대답했다.

“네, 정은정이랑 이수현, 명찰 여기 있어요.”
은정이는 의자에 앉고, 나를 위해 옆의 의자를 쓱 빼 주었다. 내가 앉는 걸 잠시 망설이자, 차갑고 뾰로통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의자 쿠션을 팡팡 두드렸다. 네 자린 여기야, 내 손을 잡아끌듯.

나는 여기 앉으면 한 학기 내로 아주 골치아픈 일이 생길 거란 걸 짐작했지만, 내 심장은 진도 8의 지진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은정이가 내 눈을 쳐다봤다. 나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렸다. 목이 마르면 물을 마시고, 잠이 오면 누우며, 고래가 태어나서 노래를 부르듯. 나는 조용히 은정의 옆에 앉았다.

결국 나는 하루의 오리엔테이션이 끝날 때까지 은정이와 함께 다녔다. 3월의 절반이 가기 전 우린 아주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수현이 넌 아직 연애하냐?”

축제의 시끌벅적한 소음 속에서 지훈이가 물었다. 지훈, 정훈, 명훈. 소위 훈 트리오. 생긴 것도 멀쩡하고 패션도 괜찮은데, 정훈이는 은정이를 좋아하고 지훈 이새끼는 좋아하는 사람이 누군지 교수님도 안다. 내가 손을 들어 커플링을 보여주자 아주 잠깐 실망한 표정이 스쳐갔다. 표정 관리를 저렇게 못하니까 소문이 다 나지. 불쌍한 등신새끼.

“지훈이 점마 완전 빙시다. 울 할매도 쟤 빙시인 거 알던데? 친하게 지내지 말라드라.”

명훈이 얘는 와꾸가 박보검이랑 이수혁을 합쳐서 키를 184까지 들려 놨는데, 음...그냥 미쳤다. 친구가 소개팅 한번 해 달래서 주선해 줬다가 그런 애일 줄은 몰랐다는 말을 두시간 동안 들었다. 내가 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렸는데 자기가 해 놓고는 왜 나한테 그러는지. 다시는 혜지랑, 명훈이 둘다 소개팅 안 잡아 주기로 마음먹었다.

“야, 은정이 불러서 같이 술마시면 안되냐?”

술 두 병을 비우자 정훈이가 내 눈치를 은근슬쩍 보며 운을 띄운다. 택도 없는 소리.

“아! 니가 부르면 백빵 나오잖아~ 한번만 불러줘. 술값 다 내준다. 중간 족보도 다 니 준다. 진짜 사람 한번만 살리는 셈 치고 딱 한번만! 딱 한번만 불러달라니까!”

아이고, 이 빙신 넘버 투가 뭐래는거야.

“야! 니가 직접 부르지도 못하는데 은정이 불러서 뭔 얘길 하려고. 니 저번에 밥약 잡아주니까 어쨌는지 기억 안나냐? 이 미친 새끼 막 밥먹으면서 손 덜덜 떨다가 옷에 카레 질질 흘리고.”

앞의 어묵탕을 떠서 벌벌 떠는 흉내를 내자 명훈과 시훈이 빵 터졌다. 빙신 넘버 투는 머리를 붙잡고 그때 그러고 싶어서 그런게 아니라고 구차한 변명을 했다.

“은정이가 나한테 정훈 오빠 좀 이상한 것 같다고 그러더라. 넌 텄어 임마.”

셋이서 정훈을 가루가 되도록 까고, CC가 지금 학기 초랑 똑같이 열 명인데 다들 파트너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하고, 수업 이야기로 넘어가는데 명훈이 내 이야기를 꺼냈다.

“아 맞다. 니 수영 수업에서 인기 쩔드만? 등짝에 문신 있는 걔 누구냐고 아들이 존나게 물어본다.”

솔직히 내가 봐도 내 몸매가 좀 쩔긴 하지. 거울 앞에서 등에 있는 문신을 보면 나도 감탄한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지? 오늘 한번 보여줘?

“야, 오늘 내가 여기서 웃통 까고 등짝에 싸인 받아온다. 성공하면 니네가 술값 쏘기, 콜?”

내 제안에 명훈이 웃다가 뒤로 넘어갔다. 명훈은 완전히 취해서 시뻘건 얼굴로 웃다가 벌떡 일어나 남색 칼하트 맨투맨을 벗어 던졌다. 184의 키에 모델같은 광배근, 쫙쫙 갈라진 복근을 보고 여자애들이 꺄악꺄악 비명을 질렀고, 남자들은 감탄 반, 시기 반의 눈빛으로 명훈을 바라봤다.

“수현이 니는 진짜 개미쳤다. 니만 벗으면 쪽팔린께 나도 벗는다! 수현이 벗어라! 벗어라! 여러분-! 여 보소! 오늘 점마는 웃통 까고 테이블 돈다카네! 벗어-”

고래고래 소리지르는 명훈이 입을 정훈이가 틀어막았다. 하지 마, 쪽팔려 병신아-. 지훈은 내가 셔츠 단추를 푸는 걸 보고 제대로 사례가 들려서 시뻘건 얼굴로 기침했다. 저러다 죽겠다 싶어서 웃통 까는 건 포기하고 등을 퍽퍽 두드려 줬다.

나와 명훈은 숨도 못쉬는 지훈이를 두드려 주며 정말 세상이 떠나가라 웃었다.

그래, 지훈이 니가 사람을 좋아하는 게 니 마음대론 안 되겠지. 어쩌겠냐. 근데 난 효진이랑 오래 사귈 것 같은데. 아 근데 은정이 때문에 좀 불안불안 하긴 해도, 아 몰라, 몰라. 될 대로 되라. 하여튼 넌 확실히 아냐.


“클럽 가자!!”

아니 얜 또 왜이래. 누가 자꾸 바람을 넣지? 명훈이인가?

“거기 가 봤자 재미없어. 시끄럽기만 하고 이상한 남자들만 꼬이고.”
“아냐~ 명훈이가 진짜 완전 재밌었다고 그랬어! 그리고 나한테 클못찐이라고 맨날 놀린다고!”

명훈이 얘는 자꾸 쓸모없는 소리를 하네. 그래도 같이 가면 좋을 것 같기도 하고...

“수현아~나 요새 EDM에 꽃혔잖아. 진짜 클럽 가면 완전 재밌을 것 같거든? 게다가 주말 옥타곤에 소다도 온대~ 너도 소다 좋아하잖아~ 같이 가자아~”

아니 걔는 음악이 좋아서 좋아하는 건 아닌데...그 우유통이 좋은 거지. 굳이 소다 음악 들으려고는 안 가도 괜찮은데... EDM에 꽃혔으면 스크릴이나 MOK2같은 애들 떴을 때 가야지. 하지만 내 속마음과는 다르게 같이 영화 보고, 밤 열한시에 클럽에 가자고 약속을 잡았다. 약속을 잡는 내내 배시시 웃음이 나왔다.

아..그리고 효진이하고는 지지난주에 대판 싸우고 깨졌다. 맨날 은정이랑 학교 다니고 웃고 할 거면 은정이랑 사귀지 왜 자기랑 사귀냐고. 진짜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이야기 해봐도 같은 걸로 다섯 번째 싸우고 나니 내가 다 지쳐서 결국 그만뒀다. 싸우는 동안 은정이랑 잘 안 만나고 그러다가 오랜만에 은정이가 놀러가자고 하니... 좋긴 하다.

하지만 주말의 클럽은 생각보다 개판이었다. 초반엔 그나마 괜찮았는데, 사람이 조금씩 많아지더니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사람이 찼다. 은정이랑 붙어 있기도 힘든데다가 장발 곱슬충이 은근슬쩍 내 엉덩이를 만져서 빡돌았다. 곱슬이랑 같이 왔다는 힙합 돼지가 룸에서 같이 놀자고, 테이블에 보드카 깔아놨다고 그러는데 진짜 닥터마틴 구둣발로 목을 짓밟아 죽이고 싶었다. 뒤에서 느끼하게 윙크하던 장발 곱슬때문인지 돼지의 육수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동안 은정이한테는 자꾸 부비부비를 시도하던 놈이 있어서, 은정이 표정이 정말 안 좋았다. 옆에 다가가 그 놈 정강이를 있는 힘껏 까주자 끄억 하는 비명이 들렸다. 근데 나도 디딤발을 잘못 디뎌서 발목을 삐었다. 더 이상 춤 출 수도 없고 춤추기도 싫어 울상인 은정이를 데리고 밤 거리로 나왔다.

“클럽 재미없다.”

“그걸 이제 알았니?”

시계는 한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버스도 없고, 택시 타면 둘이 나눠서 2만 오천원씩. 야간 버스 타고 택시 타고 하면... 근데 발목이 너무 아프다. 은정이한테 안 들키려고 잘 걷는 척을 하려고 했지만 금세 들통났다.

“뭐야, 수현이 너 걷는 게 왜 그래.”

“아니, 니 뒤 따라다니던 병신 정강이 까다가...”

은정은 온갖 호들갑을 떨며 편의점의 의자에 나를 앉혔다. 발목을 심각한 얼굴로 바라보며 많이 부었다고, 편의점에서 돌얼음을 사와서 내 발목에 대 주고 꼭 붙들고 있으라고 했다. 다람쥐처럼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자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뭐야, 왜 웃어?”

“그냥. 귀여워서.”

“뭐래. 니가 더 귀엽거든.”

나는 은정을 빤히 쳐다봤다. 은정이도 뭐? 하는 눈빛으로 날 봤다.

“야, 솔직히 나 발목 아파서 오늘 더는 못 걷겠다. 걍 쉬었다가 내일 가자. 내가 모텔비 낼게, 찜질방은 내가 좀 예민해서 못 잘 것 같거든.”

이상하게 들리지 않도록, 내 속마음은 깊숙이 묻어두고 말했다. 혹시 내가 말할 때 목소리가 떨리진 않았겠지.

“싫은데.”

내가 뭘 잘못 말했나? 목소리가 너무 떨렸나? 좀 이상하게 들렸나?

“반반씩 내. 너도 돈 없으면서 뭘 혼자 내게~. 가자! 발목 부은 거 봐. 다음부턴 절대 그러지 마라~?”

절뚝거리며 은정이한테 절반 정도는 의지해 모텔로 들어갔다. 카운터에 사람 없이 카드결제 하는 곳이었다. 반반 결제가 안 되길래 그냥 내 카드로 긁었다. 그러자 은정이가 잠깐 고민하더니, 앞의 GS로 달려갔다. 그냥 오라고 소리를 쳤지만 나를 무시하고 봉투 하나에 바리바리 먹을 걸 사 왔다.

“소주 마시게?”
“너무 짜증나서 좀 더 마실거야. 아니 사람이 싫으면 싫다는 줄 알고 그만 해야 하는데 왜 이렇게 집적거려? 원래 클럽에선 다 이래?”
“어, 항상 그래. 그러니까 다신 오지 마.”

나는 정말로 은정이가 다시는 클럽에 오지 않길 바라며 말해줬다. 재미있을 때도 있지만 대체로 병신같으니까. 특히 너처럼 제대로 거절 못하는 성격이라면. 하지만 말 해봤자 절대 안 듣겠지. 나는 묵묵히 은정이의 술잔에 술을 따라 줬다.

“그으러어니이까아~ 나아도오~ 연애를 해에 보고 시이퍼어~”
은정이는 잔뜩 취했다. 그리고 나도. 자꾸만 시선이 은정이의 입술로 향한다. 옅은 분홍색 립스틱과 흰 피부, 흰 목. 하얀 목소리. 나를 바라보는 풀린 눈. 아, 신이시여.
“그러구 보니까... 수현이 너어~ 커풀링 빼앴다?”
“...깨졌어.”
은정이의 손이 휘적휘적 허공을 젓다가 앞으로 덜컥 넘어졌다. 나는 깜짝 놀라 은정이를 받았다.
“손가락...차암 길고 이쁘다아...피부도 하얗고...”
은정이가 내게 온 몸을 맡기고 내 손가락을 더듬고 있었다. 온 몸에서 손가락만 남은 것 같이 뜨거웠다. 갑자기 온 몸에 전기가 올랐다.
은정이가 내 손가락을 잘근잘근 깨물고 있었다. 숨결이 내 손가락을 훑고 지나갔다. 손가락을 깨물고, 손바닥을 핥고, 내 팔뚝을 잘근잘근 깨물며 천천히 올라오고 있었다.

“잠깐만...야....”

제지하자 은정이가 고개를 들어 날 올려다봤다.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묻는 얼굴이었다. 나는 천천히 다가갔다. 흰 피부가 아찔할 정도로 부드러워 보였고, 서로의 코가 살짝 닿았다. 고개를 살짝 틀어서, 분홍빛 입술에 부드럽게 키스했다.

익숙하던 립스틱과는 다른 향이 났다. 아주 짧은 순간이 흘렀던 것 같기도 하고, 우주가 생성될 정도로 긴 시간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은정이가 나를 밀어냈다.

“뭐하는 거야~”

그리고 은정이 작게 웃었다. 심장이 터지다 못해 찢어질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키스했다. 나는 아직도 후회하고 있다. 여기서 그만 뒀어야 했다고.

내가 과거로 다시 돌아갈 수 있으면 다시 키스를 하고, 숨이 멈출 때까지 키스를 하고, 거기서 멈출 것이다. 아니, 거기서 멈추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둑이 터지듯, 처음부터 다시 한번 후회할 짓거리를 반복하겠지. 나는 그 때 그만큼, 찢어져 쏟아지고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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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정이가 나를 밀어내고 비칠비칠 일어나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 나를 보고 배시시 웃더니, 침대 쿠션을 팡팡 쳤다.

“뽀뽀..하지마... 그건 싫어.”

나는 홀린 듯 침대 위로 올라가 은정의 옆에 누웠다. 은정이가 팔을 뻗어 내 목을 감싸더니, 작은 숨을 내쉬었다. 숨결이 닿은 곳의 솜털이 모조리 일어섰고, 온 몸에 불이 흐르는 것 같았다.

은정이는 수면과 현실의 경계에 반쯤 걸쳐져 있었다. 내가 몸을 살짝 건드리면 눈을 떠서 날 봤지만, 시선은 먼 곳을 보고 있었다.

‘허리띠 하고 있잖아. 숨 쉬기 불편할거야.’

나는 한 손으로 흰 숏팬츠의 버클을 끌러줬다. 허리띠를 젖히자 은정의 입에서 긴 한숨이 나왔다. 내가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지만, 머릿속에선 숨 쉬기 불편하니까 그런 것이라는 생각이 자기 합리화를 했다. 검은색 허리띠를 천천히 뽑아내 벽으로 던졌다. 허리띠는 눈을 빛내는 뱀처럼, 벽에 짤깍 부딫히고 바닥으로 떨어졌다. 버클의 쇠 장식이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서,

그 때 있었던 일을 묘사할 필요는 없겠지. 이건 은정이를 위해서 말하지 않겠지만, 맹세코 당신들이 상상하는 일은 없었다. 그저, 조금, 아주 조금 스킨십을 했을 뿐이지, 여러분이 생각하는 걸 난 할 수 없다. 그래. 눈치 빠른 사람은 벌써 눈치채고 있을 지도 모르겠지만...이런, 너무 오래 생각에 빠져 있었네.


“왜 니가 사귀던 사람이 여자라고 말 안했어?”

“...미안.”

“모텔에서...나한테 왜 그랬어? 그 날 그러려고 모텔에 들어가자고 한 거야? 나랑 자고 싶어서? 그냥 처음부터 그렇게 날 본 거야? 언제부터? 왜 니가 여자를 좋아한다고 말 안해줬어?”

“잠깐 이야기를...”

“더 가까이 오면 신고할 거야. 너 보기 싫어. 난 너한테 할 말 다 했어. 이제...가. 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마.”

은정은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려 사라져 버렸다.
나는 가만히, 전봇대 앞에 서서, 움직일 힘도 없이 한참을 서 있었다.
마치 은정이를 처음 만났던 그 날, 사이비들에게 둘러쌓여 있던 그 때처럼
내가 저지른 죄들에 둘러쌓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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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위의 그림을 보고 영감을 얻었으며(작품명: 금방이라도 신고할 준비가 되어있는 여성,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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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정이의 그림은 이 그림을 따서 그렸습니다.

오랜만에 소설을 써 봅니다. 엽편이라고 하기엔 길고 단편이라고 하기엔 짧지만, 잘 읽어 주셨는지요? 궁금증이 있다면, 여기에 댓글을 달아 주십시오. 길어서 몇 분이나 읽을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정말 오랜만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은 이벤트였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이벤트를 열어 주신 쪼야님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무리한 요청에도 그림을 열심히 그려주신 김SS님에게도 무한한 사랑을!

술을 마시지 않고 맨정신으로 할 수 없는 행위라면
술에 취해서도 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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