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동화] 해녀 순심 할머니와 누렁이와 나비.

제주도 바닷가 근처 아름답고 작은 마을에 순심이 할머니가 강아지 누렁이와 고양이 나비와 함께 살고 있었어요. 순심이 할머니는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일 같이 물질을 나가는 해녀셨고, 마음씨가 착해서 길거리에 버려져 있던 누렁이와 나비도 집에 데리고 와서 함께 지냈어요.

마을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날씨가 좋은 날이면 어김없이 커다란 나무 폭낭 아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곤 했어요. 순심 할머니는 누렁이와 나비를 데리고 폭낭 앞을 지나 산책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폭낭 아래 앉아 있던 할머니 한 분이 인사를 했어요.

“어디 감수광?”
“어디 감쪄.”

순심이 할머니는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인사했어요.

“육지 갔던 막내 아들 경남이 돌아왔다며? 사업 잘되서 돈 많이 번다고 자랑하더니 무슨 일로 이 시골 마을로 돌아왔데?”
“뉘 집 아들이 집에 오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아들이 엄마 집에 찾아오는 게 이상한일인가?”

순심 할머니는 버럭 화를 내며 돌아섰어요.

집으로 돌아오자 순심이 할머니의 아들 경남이 기다리고 있었어요.

“엄마, 어디 갔다와요?”
“응, 얘네들 데리고 산책갔다 왔지.”

순심 할머니가 누렁이와 나비를 가르키며 대답했어요.

“그나저나 지난 번에 이야기한건 생각해보셨어요? 지금 땅값이 많이 올랐을 때 팔아야 한다니까요. 그럼 제가 그 돈으로 다시 사업해서 금방 다 갚아드릴게요. 얼른 도장 좀 주세요.”
“무슨 소리야. 평생을 살아온 집을 왜 팔아. 꿈도 꾸지 말라”
“에잇, 정말 아들 한번 살려주는 셈치고 도와주세요.”
“그런 소리할거면 나가라. 나가.”

순심 할머니는 빗자루를 들고 아들을 내쫓았어요.

그날 밤, 천둥 번개가 치고, 하늘이 뚫린 듯이 비가 쏟아져 내렸어요. 할머니의 집으로 누군가 살금 살금 들어왔어요. 누렁이가 자다가 깜짝 놀라 크게 짖었어요.

“멍! 멍! 멍!”
“에이, 누렁아 나야 나, 조용히 해”

알고 봤더니 순심 할머니의 아들 경남이었어요. 누렁이는 반갑게 꼬리를 흔들었어요. 경남은 누렁이를 지나쳐서 할머니가 곤히 잠든 안방 문을 살며시 열었어요. 그리고 서랍이며 장롱이며 곳곳을 샅샅이 뒤졌어요. 그리고 장롱 속에서 뭔가를 발견했어요.

“찾았다. 깊숙이도 숨겨놓으셨네. 엄마 내가 잠깐만 빌려갔다가 다시 돌려줄게요. 걱정 마세요.”

경남은 도장을 손에 들고, 잠든 순심 할머니를 쳐다보며 속삭이듯 말하고는 몰래 집밖으로 빠져나왔어요. 뒤늦게 할머니 곁에서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뜬 나비가 누렁이에게 물었어요.

“누렁아, 방금 집 밖으로 나간 사람 누구야?
“응, 경남이가 왔다 갔어.”
“경남이가? 손에 뭔가 들고 있던데?”
“할머니 도장을 들고 가던데?”
“뭐야!? 할머니 도장!? 그걸 가지고 가는데 짖지도 않고 뭐하고 있었어?”
“왜? 나도 짖었어.”
“으이구, 이 멍청아! 얼른 쫓아가자!”

나비와 누렁이가 경남이를 부리나케 쫓아 달리기 시작했어요.

경남은 바닷가 항구 근처의 허름한 건물 사무실에 들어갔어요. 사무실 안에는 검은 양복을 입은 아저씨 두 명이 앉아 있었어요. 그리고 문 틈으로 나비도 살며시 따라 들어왔어요.

“오, 경남이 왔어. 그래 도장은 가지고 왔고?”
“네네, 여기 도장이요.”
“그래, 그래 잘했어. 이제 넌 돈 걱정 할 필요 없어. 우리가 잘 처분해서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정말이죠? 그리고 귤 밭만 밀어버리고, 우리 어머니 집은 그대로 살게 해주시는 거죠?”
“물론이지, 그걸 말이라고 해? 어디 도장 좀 볼까?”

능글맞게 웃으며 도장을 살펴보던 검은 양복을 입은 아저씨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기 시작했어요.

“뭐야, 이게 이건 이름이 강순심이 아니잖아. 이 녀석이 딴 도장을 가지고 와선 우릴 속이려 들어?”

아저씨는 화를 내며 도장을 집어 던졌어요.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나비가 도장을 입에 물고 창 밖으로 도망쳤어요. 깜짝 놀란 경남도 나비를 쫓아갔어요. 나비는 항구에 정박해있는 배 위로 뛰어 들어갔고, 경남도 나비를 쫓아 배 위를 돌아다녔어요. 바다 위로는 폭우가 쏟아지고 배가 쓰러질 듯 바람이 불었어요.

“나비야, 어디 있니? 도장 돌려주라. 맛있는 참치캔 줄게”

나비를 부르며 출렁거리는 배 위를 걷던 경남에게 갑자기 돌풍이 불어 배가 기울고, 발을 헛디뎌서 그만 배 사이 바다로 빠지고 말았어요.

“으앗. 어푸어푸 사람살려, 사람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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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이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순심이 할머니의 집 안이었어요.

“으… 이게 무슨 일이지? 내가 꿈을 꿨나?”

머리를 잡고,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키던 사이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났어요. 그리고 갑자기

“탕! 탕! 탕!”

총소리가 났어요. 놀란 경남은 문 틈으로 밖을 살펴보았어요. 총을 쏜 사람은 보이지가 않았고, 남자 어른 한 명과 두 아이가 마당에 쓰러져 있었어요. 그리고 잠시 후에 해녀 한 명이 마당으로 들어와 울기 시작했어요. 그 해녀는 바로 젊은 순심 할머니였어요. 경남은 깜짝 놀라 밖으로 나갔어요.

“엄마, 엄마 이게 무슨일이야?”

그런데 순심은 경남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것처럼 행동했어요. 그때였어요. 옆 집에서 아기가 우는 소리가 들렸어요. 순심은 일어나서 옆 집으로 향했고, 경남도 순심을 따라 들어갔어요. 옆 집도 마당에 사람들이 쓰러져 죽어 있었고 마당 한 켠에는 돼지우리가 있었는데, 그곳에서 아기 울음 소리가 나고 있었어요. 순심은 얼른 가서 아기를 들쳐 업고 나왔어요. 그리고 산 속 깊은 곳으로 숨었어요. 순심의 품에 안긴 아기는 울다 지쳐 잠이 들었어요. 잠든 아기 손에는 작은 도장하나가 쥐어져 있었어요. 경남은 그 모든 상황을 지켜보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귓가에 어떤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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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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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아! 경남아! 일어나라! 눈 좀 떠봐라”

경남은 바닷가 위로 올라와 누워있었고, 순심 할머니가 울면서 경남을 흔들고 있었어요. 누렁이와 나비는 주위를 돌면서 구슬프게 짖고 있었어요. 경남은 입에서 물을 토하며 눈을 떴어요.

“켁켁켁, 엄마….이게 어떻게 된거에요?”
“아이고, 이제 정신이 드냐? 누렁이가 갑자기 짖더니 이리로 나를 끌고 와서 너가 물에 빠진 거 보고 내가 죽기살기로 건져냈다. 이게 뭔일이냐?”
“엄마….엄마가 또 저를 살려주셨네요…으흐흑흑…”
“그게 뭔소리야? 너 괜찮은거냐?”
“엄마 잘못했어요. 제가 잘못했어요.”
“괜찮아, 괜찮아. 이렇게 살았으면 된거야. 사업 망하면 어떠냐.. 다시 성실하게 일하고 한 푼 두 푼 벌면 되지. 살다보며 다 살아진다.”

순심 할머니와 경남은 끌어안고 울었어요.

다음 날, 그치지 않을 것만 같았던 비가 그치고 하늘이 맑게 개었어요. 나비는 집 앞 마당에 생선 한마리를 물어다 놓았어요. 순심 할머니가 생선을 발견하고, 생선 배를 가르자 그 속에서 순심 할머니의 도장, 그리고 경남이 도장이기도 한 그 도장이 나왔어요.

나비와 누렁이는 함께 바닷가 앞을 걸으며 이야기 했어요.

“나비야, 너 어떻게 도장을 찾았어?”
“응, 사실 배 위에서 물에 빠뜨렸는데……”

cat.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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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ief88 님의 노을 그림을 보고 떠올려서 쓴 글입니다.

멋진 그림을 그려주신 @relief88 님 감사드려요! ^^

사실 위의 글은 전래동화인 구슬을 물어온 개와 고양이 이야기와 제주 4.3 역사를 다룬 그림책 "나무도장" 이야기를 모티브로 퓨전한 글이에요. 제주에 살면서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 처음 들어봤어요. 요즘 택시운전사 영화에서 다뤄진 광주에서 일어난 5.18 민주화 운동은 많이 알려지고 교과서에도 배우지만 제주 4.3.에 대해서는 많이 알려지진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 글을 통해 혹 제주 4.3이 궁금해지셨다면 나무도장 그림책도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

이 글은 @zzoya 님의 [#kr-art] 그림작가&글작가 콜라보 이벤트!! (총 상금 90SBD) 응모기간 2월 5일(월) ~ 12일(월) 이벤트에 참가하기 위해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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