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의 일상기록 #12/Music Box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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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낮이면 드디어 해방이라 기쁜 표정의 대문

원래 일상기록(일기)를 연달아 쓰지는 않는데, 아직 책 한 권짜리에 해당하는 일이 다 안 끝나서 스트레스 해소용 일기를 쓰게 된다. 눈 잠깐 붙이고 새벽에 일어나서 마무리할 생각...그럼 드디어 해방...

여름이 끝나가면 뭔가 마음이 저리고 섭섭한 느낌이 든다는 사람들이 주변에 몇 있다. 언뜻 보면 가을을 탄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사실 계절을 탄다는 표현의 의미가 업이냐 다운이냐에 따라서 다를 듯 하다. 내 경우는 봄을 좋아하지 않는데, 미세먼지와 황사도 그렇지만 뭔가 찌뿌둥한 느낌의 계절이라고 느낀다.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의 피부 상태도 싫다.

반면 가을은 너무 사랑한다. 약간 쌀쌀할 때의 늦가을이 가장 좋은데, 그럴 때는 하루종일 밖에 있는 날이 가장 많다. 덜덜 떨 정도의 추위에서도 아이스 음료 마시면서 카페 테라스 자리에 앉아 있는 경우도 많고. 남들보다 추위를 안 타는 것도, 더위를 더 타는 것도 아니지만 그 바삭한 맑음이 좋다. 가을과 겨울에 가장 활동적이고 그나마 들뜨는 편이다.

가을이 되면 쓸쓸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들이 보통 가을을 탄다고 표현이 되니까, 내 경우는 가을을 타는 것도 아니고 봄은 워낙 싫어하기 때문에 더더욱 아니다. 그럼 뭘까. 뭐가 됐건 1년 내내 가을과 겨울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아직은 습하지만 오늘 같은 날엔 가을 노래를 좀 들어도 될 듯...뉴욕의 가을(Autumn in New York)은 영화 뉴욕의 가을보다 훨씬 앞서 무려 1934년도에 작곡되었다. 연주는 꾹꾹 눌러치기와 흘려치기를 절묘하게 조화시켜서 좋아하는 버드 파웰(Bud Powell)의 것이 떠오른다.

버드 파웰 연주의 뉴욕의 가을


요즘 몬티가 욕심이 많아졌다. 특별히 어떤 류의 욕심이 많아졌다기보다는, 먹는 것도 자주 달라고 하고, 이뻐하는 것도 더 자주 해달라고 하고, 어릴 적에 들여서 꼼짝도 못하고 따라만 다니던 첫째 마누라 까뮤가 선호하는 자리마다 빼앗기도 한다. 워낙 점잖고 자기 자식들한테도 양보를 잘 하는 애라서 못된 짓을 할 염려까지는 없는데, 아무래도 더 이상 자기를 괴롭히지 못하는 까뮤한테 세 과시를 하는 면도 조금은 있는 듯...

일을 하면서도 오디오북을 들을 때가 많다. 멀티태스킹을 잘한다는 자신에서이지만, 사실 그만큼 일에 대한 집중력을 약간 할애해서 듣는다고 봐야겠지. 물론 다 귀에 들어오진 않는다. 오늘은 아가사 크리스티의 Sparkling Cyanide를 들었는데, 문자 그대로 "반짝이는 청산가리"의 의미다. 제대로 다 듣지 못해서 결말은 모르겠지만, 여러 인물을 거의 파트로 나누다시피 해서 서술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그 자체가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크리스티 소설에선 거의 못 본 것 같아서.

비슷하게 여러 화자의 입장으로 나눠진 단편을 한번 써봐야겠다. 아마 눈치챈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소설도 그냥 평소 글을 쓰듯이 쓴다. 특별히 문학적인 글이 아니라 에세이를 쓰듯이 쓴다는 의미에서이다. 오글거리는 글을 싫어하기 때문에 어쩌면 앞으로도 계속 픽션을 그런 식으로 쓸지도 모르겠는데, 화자를 여럿으로 나눠서 쓰면 지나치게 치밀한 화자의 패턴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는 좋은 꼼수가 될 것 같다.

사실 소설을 쓰려는 욕심은 아예 없다시피 하다. 그러나 좀 역설적이게도 단편소설을 쓰고 싶은 생각은 종종 든다. 어릴적에 읽은 것 중에서 가장 인상이 깊은 단편들이 몇 있다. 골즈워디의 제목 모를 무슨 단편에서는 형이 아우의 죽음을 맞아서 그에게 숨겨진 여자가 있음을 알게 된다. 한글 번역본 밖에는 못 봤는데 제목을 도무지 모르겠다. 요즘 나올만한 단편선 레퍼토리도 아니고. 푸시킨처럼 단편이 유명한 작가의 작품들은 물론이고, 장편에서 빛을 발한 작가들이 쓴 단편들도 확실히 달랐다. 하디의 알리샤의 일기 같은 일기 형태의 단편도 쓰기에 재미있을 것 같다. 또 가령 스탕달의 바나나 바니니는 한 8살 이후로는 읽어보지 못했지만 인상이 강하게 남아 있는데, 나중에 스무 살이 넘어서 본 비스콘티의 영화 센소에서 주연들이 비슷한 구도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다시금 기억이 났다.

언젠가 Jem tv 시리즈에서 다루겠지만, 시네마토그래피라는 말은 이런 영화에서나 거론해야 되는 것 아닌가 싶다. 물론 비스콘티 영화들은 하나같이 인상이 강하지만, 고작 로맨스 씬이 브루크너 7번 2악장의 무게에도 눌리지 않던 것이 기억난다.

이 음악에 맞춰서 머리 따위를 빗는다고!

사실 아주 어울린다는 생각보다는, 좀 생뚱맞지만 화면이 너무 아름다워서 저게 감당이 되는구나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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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스콘티의 센소(1954) 中

히치콕의 로프에서 어벙한 범인 역할을 맡은 팔리 그레인저가 남주인데, 고고한 여자가 인성조차 영 아닌 적국의 남자에게 마음을 주는 내용이라 사실 캐스팅이 잘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나중에 팔리 그레인저는 여주에게 사랑을 위해 조국을 배신했다며 비웃고, 결국 파국으로 치닫는데... 버림받은 여주는 마지막 배신을 하게 되는 내용이다. 비스콘티 감독은 원래 말론 브란도와 잉그리드 버그만을 캐스팅하려 했다고 하는데, 그랬다면 아마 이런 느낌이 나오지 못했을 듯.

언젠가 한번 제대로 알아봐야겠다 싶은 주제는 미국 배우가 유럽 영화에 캐스팅이 쉽게 되던 저 당시의 현상에 관한 것이다. 유럽 배우가 미국 영화에 나오는 건 지금도 은근히 흔한 일이고 뭐 그러려니 하는데...더빙에 의존했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겠지만, 그만큼 제작 환경이 독특했던 것 같다. 가령 팔리 그레인저는 제쳐놓고서라도 안소니 퀸 급의 배우가 굳이 더빙을 써가면서까지 유럽 감독의 영화에 출연한건 그 감독이 거물이라서이기도 하겠지만, 당대의 시네마가 그만큼 지금과는 다른 의미에서 글로벌(미국+유럽)했다는 것이겠지.

새벽에 다시 일어나야 하니 이만 눈을 붙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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