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돌아온 문화영어이지만, 이번 편은 다소 어원에 집중되어 있어, 관련 주제에 관심이 없으신 경우 딱딱할 수 있습니다.
사전에서 curate를 찾아보면, 두 가지가 나온다.
1. 사제(curate)라는 의미의 명사(발음: 큐럿)
2. '큐레이팅하다'를 뜻하는 원형 동사(curate. 발음: 큐레이트)
우선 1번만 보기로 하자.
시대와 문화권에 따라 부목사, 보조 신부, 교구 사제, 일반 사제 등 구체적인 의미가 약간 다르지만, curate는 어쨌든 성직자를 뜻한다.
그 어원은 라틴어 cura.
이는 영어로 명사형 care에 해당하는 용어이다.
(기본 동사형 curare는 영어의 cure, 즉 '고치다'를 뜻하는 용어로도 발전되었다.)
로마 시대에 cura, 즉 "돌보는 것"을 하던 사람은 curatores이다. 문자 그대로 영어로 이해하면 caretaker일텐데, 현대의 관리인caretaker보다 훨씬 폭넓게 적용되었다.
다음은 curatores, 즉 care을 하는 사람(caretaker)의 여러 직위의 예시이다.
curatores annonae. 곡물이나 기름 등을 수입, 관리하는 자.
curatores ludorum. 검투 등 공공 행사 관련 일을 주관하는 자.
curatores viarum. 길을 관리하는 자.
"Caretaker 즉 관리자"로 표현하면 마치 실무를 담당하는 하급 공무원처럼 들리지만, 그렇지는 않았다. 주로 명망 있는 사람이 임명되어서, 그 수하에 세부적인 일과들을 담당하는 이들이 있는 경우도 많았다.
사족 1:
그리스도의 처형 집행자이자 한 지역의 총독 위치였던 폰티우스 필라투스의 직위는 역사가 타키투스 등에 의해서 보통 procuratores로 알려져 있다. 라틴어의 접두사 pro~는 "대리로 하는"의 의미를 일차적으로 갖기 때문에 procuratores는 결국 황제를 대리해서 지역을 돌보는 curatores의 의미이다. 그러나 실제로 필라투스의 직위 명칭은 praefectus(영어 prefect로 발전)였다고 한다. 유대 지역의 헤롯 아그립바 왕이 죽고 나서야, 총독 지위의 이름이 procuratores로 바뀌었다고. 즉 명색상의 왕을 인정해주던 시대가 지나자, 총독의 명칭이 바뀐 것이다. 따라서 타키투스의 증언은 우리가 60, 70년대는 초등학교의 명칭이 국민학교였다는 사실을 놓치고 당시의 학교를 초등학교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한 실수이다.위대한 학자들의 이런 실수, 개인적으로 너무 좋다.
그렇다면 다시 한번 cura에서 중세 라틴어, 중세 영어를 거쳐 굳어진 사제curate라는 용어를 보자. 이는 결국 cura를 하는 사람, 즉 curatores 가 영어로 변신한 결과이다.
중세 curate사제들의 기본 업무는 "돌보는 것", 병자나 빈민을 구제하는 등의 일, 그리고 종교적으로 영혼을 "돌보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curare가 영어의 cure를 낳은 것을 감안하면 이 '돌보다'는 것은 '고치다'와 겹치는 의미이다.
(종교가 지배층과 피지배층을 연계했던 로마 시대에, 각 계층의 "관리자"들이 사제로서의 역할을 담당한 경우도 많다는 점에서, 생각보다 큰 의미의 변화를 거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요약하자면, Curatores/Caretaker, 나아가 사제curate는 결국 행정뿐 아니라 영혼의 caretaker, 나아가 curer이다.
사족 2:
만약에 라틴어 curatores의 철자를 영어 속으로 보다 그대로 받아들였다면, 역시 큐럿curate보다는 큐레이터curator였을 것이다. 그랬을 경우 큐레이터curator라는 단어는 현재의 의미가 아닌, caretaker 또는 사제와 동일한 의미로 쓰이게 되었으리라고 보는 것도 나름대로 논리적이다. 그러나 curatores에 앞서, cura의 직접적인 영향으로 curate가 탄생한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까지의 논의에서는 큐레이터curator 라는 특정 용어의 등장은 배제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제는 영어 curate의 두 번째 의미, 동사형 curate(큐레이팅하다)를 볼 차례다.
위의 사족 2에서, 만일 라틴어 curatores의 철자를 그대로 영어에 반영했다면 아마도 curator가 되었으리라는 가설을 내세운 바 있다. 그런데 실제로 그렇게 된 결과가 존재한다.
말할 필요도 없이, 언어란 수많은 다양한 사용자들에 의해 산발적으로 형성된다. 그러나 최종적으로는 특정 지역의 주류가 합의하고, 영어의 경우 새뮤얼 존슨 등등의 대표적 지식인이 집필한 사전 속에서 권위를 얻어, 그렇게 굳어져 왔다. 그러나 예외는 존재하게 마련이다.
비록 이 글의 근간을 이루는 옥스포드 영어 사전의 변천사에서 주류로 취급할만한 스탠더드 영어 단어는 아니지만, 스코틀랜드의 법전에 curator라는 용어가 아직도 현대의 큐레이터라는 의미와 무관하게 "법적 보호자/후견인'의 의미로 살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curator는 옛 불어 curateur에서 직접적으로 파생되었다.
즉 이 curator에는 현대 curate의 첫번째 의미, 즉 (돌보고 고치는) 사제라는 의미와 별개로 "지키는 사람"의 의미가 더해져 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이전에, 중세 영어 시대부터, 사제라는 의미로 curator라는 용어를 쓴 흔적도 있다. 스코틀랜드에서는 curator, 잉글랜드에서는 curate라고 썼다고 지방별로 딱 구분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지역에 따라) curate와 curator가 둘 다 사제의 의미였으나, curate을 쓰는 쪽이 우세하여, curate가 사제를 뜻하는 스탠더드 용어가 된 것이라고 말이다.
curator가 일부 지역에서 "보호자, 후견인"으로 쓰이게 되었다면, 현대적 의미의 curator는 어디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을까? 일반 사전만 보아도 17세기부터라고 명시하고 있다.
즉 우리가 아는 curator는 매우 근대적인 용어이다. 물론 처음부터 우리가 아는 그 의미는 아니었다. 17세기에 등장한 curator라는 용어의 사용법은 존 이블린(John Evelyn)의 일기(1640~1706년)에서 드러나는데, curator란 일종의 작은 발명품인 "다이빙 벨"의 기능을 실험하는 자들로 나온다. 다시 말해, 옥스포드 사전에 따르면 이때부터 이미 curator란 박물관, 미술관 등에서 장비를 "지키는"자의 의미였으나, 실제 업무는 다소 다양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시점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박물관, 미술관, 콘서트 홀, 나아가 온라인 샵 등등에 이르기까지, curator에는 돌보고 지키는 것뿐 아니라 적절한 것을 선택하다는 의미가 덧입혀지게 되었다.
"선택하다"는 것은 실제 용어에서 찾아볼 수 있는 뜻이라기보다는, 실제 업무가 그렇게 변화하고 확장되면서 뜻을 생성해낸 것이다. 물론 아예 없던 새로운 업무가 생긴 것은 아니다. 고대 로마의 curatores annonae도 곡물을 사기 위해 상품을 취사선택하는 업무를 했을 터이니 말이다.
단지, 현대 curator 용어가 탄생하기까지는, 선택이라는 업무가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너무 중요해져서, 원래 curator의 의미에 내포되어 있었던 관리라거나 보호라는 뜻은 많이 희석되었다. 실제로 온라인 컨텐츠를 관리, 보호할 필요도 없어졌고 말이다(그 업무는 다른 직업으로 돌아갔으니). 특히 현대에 와서 말하는 리얼타임 큐레이터(real-time curator) 등은 트위터 등의 SNS의 발달의 결과로 생겨난 개념이다.
흥미로운 점은, 보통 동사(예시: to take care, to bake, to work)에서 명사(예시: caretaker, baker, worker)가 결정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현대의 큐레이터curator는 애초에 사제나 보호자 등의 의미와 때로는 함께, 때로는 따로 발전된 것이기 때문에, 큐레이터curator라는 명사가 먼저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Curator라는, 근대에 태어나서 현대에 완성된 단어가 있고, 그 큐레이터가 하는 일은? 큐레이터curator라는 용어가 있으니 거기에서 동사를 도출하려면 결국 큐레이팅curate, curating인 것이다. 마치 창렬, 혜자의 이름에서 창렬스럽다, 혜자스럽다는 용어가 탄생한 것과 비슷
다시 말해, 사제curate와는 그 어원 cura(care), curare(to care), curatores(caretaker)을 공유하지만, 사제curate와는 다른 비주류 보호자curator로 명맥을 이었고, 그것이 또 발전하여 현대의 큐레이터curator가 된 것이다.
스코틀랜드 법률 용어인 보호자/후견인curator이 하는 업무가 큐레이팅curate, curating이라고 명명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보호자/후견인curator라는 용어의 존재는 지금도 찾아볼 수 있지만, 큐레이터curator는 그와 별개로 현대까지 계속 그 의미가 다듬어진 용어이고, 큐레이터curator가 하는 업무인 큐레이팅curate,curating은 바로 그 자신의 이름, 큐레이터curator에서 나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애초의 질문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사제curate와 큐레이팅하다curate의 관계는?
관련이 분명히 있지만, 한 편으로는 서로 구분되는 두 줄기로 뻗어서 발전한 두 용어이다. 그러나, 과연 이 둘을 완전히 구분된 것으로 볼 수 있을까?
중세의 수도승. 돌보고 고치는 것뿐 아니라, 인류의 자산인 문서들을 관리하는 것 역시 수도승, 사제의 업무였다. 현대적 의미로서의 큐레이팅(위조 문서, 원본, 번역본 등을 "가려내는" 작업)이 없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근현대의 성직자curate. 마을 주민들을 돌보고, 병문안도 간다. 이것도 일종의 관리이다. 그의 업무에서, 현대적 의미의 큐레이팅(선별하여 혜택을 주는 것)도 혹시 찾아볼 수 있을까?
사족 3.
근현대 성직자 그림의 대사 풀이:
새로 부임한 성직자(curate): (부드럽게) 성도여, 무엇이 당신으로 하여금 나를 부르게(induced you to send for me) 했는가?
최고령 주민: 베티, 뭐라는 거야?
베티: 대체 뭔 망할 이유로(what the deuce) 불렀냐고 하잖어.
애초의 어원 그리고 사제, 보호자, 큐레이터의 변천사를 생각하면, 큐레이터에게는 선별, 선택한다는 업무 외에도, 고치거나 관리, 보호하고 돌볼 의무도 원래는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퇴색된 의미들이고 성직자curate에게만 그런 의무가 남아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한번 원래의 의미들도 한번쯤 고려해보는 것은 어떨까.
- 옥스포드 영영 사전과 기타 영영 사전, 존 이블린의 일기 등을 참조하였으나, 모든 논지는 철저히 개인의 저작물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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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영어 #1: 리히텐슈타인과 Stardust
문화영어 #2: Paris의 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