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주의] 난 솔직히 말해서 그림에는 큰 관심이 없어. 그냥 봐서 뭔가 눈이 고정되면 마음에 든다, 좋다고만 하는 식이지. 흔하게 있는 일은 아냐.
그런데 어릴 때, 어떤 화가의 작품들을 보고 잠을 잘 못 잤어.
밤이 되면 그림들이 떠올라서 너무 무서웠고, 그 그림들이 담긴 책을 베란다에 있는 책장 구석탱이에 넣고도 거기서 뭔가 살아 나올 것 같아서 무서웠지.
화가 이름은 구스타프 아돌프 모사였는데 (발음상 모싸가 더 맞지?), 비슷하게 생긴 여자를 자주 그렸더라. 그 여자도 무서웠고, 그 여자가 안 나와도 무서웠어.
미술에 큰 관심도 없으면서 검색해보면 금방 나오는 사항들을 교양인 척 나열하는 것도 우스우니까, 날짜나 제목이나 그런 구체적인 것들은 생략할게. 내가 보여주고 싶은건 그냥 그 그림들 자체랑, 내가 생각한 것들이야.
처음 보고 충격을 먹었던 그림은 이거야.
와, 이건 무슨 단테의 신곡 지옥 편을 보고 그린건지, 요한 계시록을 보고 그린건지, 아니면 영원한 미술가들의 영감 살로메를 그린건지 모르겠어. 제목도 기억 안 나. 너무 무서워서 오래 못 쳐다봤었거든.
근데 아마 내 추측은 다 틀렸고, 그냥 이 화가랑 한때 연애했거나 짝사랑했던 여자를 그린 것 같은 느낌이야. 왜냐하면 다른 그림에서도 아주 닮은 여자가 여러 번 나와.
솔직히 지금은 이 그림이 더 무섭다. 그리고 슬퍼. 한 문명을 잡아먹은 느낌이야.
얼굴은 안 나오지만 어떻게 생긴 여자인지 알 것만 같아.
그 여자가 이렇게 떠나버린 걸까.
마치 하얀 귀족 복장을 입은 광대의 느낌의 남자가 정신이 나간 얼굴로 서 있어. 혹시 베니스의 죽음이라는 토마스 만의 단편 소설 알아? 그 주인공도 생각나게 하는 캐릭터야.
하여간 죽음으로 이끄는 여자로 묘사한 듯.
그리고 이 그림도 정말 기분 나쁘고, 지금 봐도 무서워.
그렇다고 완전히 다른 외모의 여자를 이런 식으로 그리지 않은 것은 아니야.
마치 기형적인 소년을 농락하는 내지는 죽음으로 데려가는 여신 같은 모습. 화가의 의도는 실제로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소녀도 이런 식으로 그렸어. 대체 무슨 생각들을 한 걸까, 이 화가는?
악의 씨앗?
그리고 구약성경의 한 장면도 있어.
아까 처음에 나온 그 여자 같은데, 저 이야기는 한 나라의 왕이 마음에 드는 여자를 차지하려고 여자의 남편을 전쟁터로 보낸 사건을 그리고 있어. 여자의 마음은 어땠는지 성서는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이 화가는 이렇게 해석했던 것 같네. 여자의 얼굴이 말해주고 있는 것 같지. "낚았다."
봐도 봐도 기괴한 그림들은 더 많지만, 화가의 자화상으로 마무리 할게.
저 여자의 정체가 어머니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 자화상이야. 심하게 데인 애인일 수도 있겠지만. 테드 번디가 생각나네.
그림은 무조건 아름답고 황홀해야 한다고 생각지 않아. 어릴 적에 잠도 못 이룰 정도로 무서웠던 그림들이, 지금도 징그럽기는 하지만, 지금까지도 인상이 매우 강하게 남아 있어. 그리고 화가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모르지만 (사실 그림이 무서워서 배경 스토리는 찾아보지도 않았어. 영혼이 잠식될까봐), 그의 그림들은 요즘 말하는 여성혐오를 나타내는 것 같긴 해.
그래도 그렇게 쉽게 딱지를 붙이진 않겠어. 남자를 묘사한 것도 비슷한 느낌이야. 뭔가 고통이 느껴지지. 말 나온 김에 한 장 더 보여줄게.
이 결혼식이 아름다워 보이는 사람이 있을까? 나는 개인적으로 살로: 소돔의 120일이라는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나. 혹시 저주받은 호기심을 타고나지 않아서 아직 안 봤다면 절대로 보지 말기를 권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찾은 화가의 유일한 사진이야. 내가 보기엔 굉장히 잘생긴 편인데, 대체 어떤 것들이 그를 채우고 있었을까. 아까 말했듯이 찾아보진 않을거야. 상상에 맡기는 편이 더 그럴싸할 것 같아서. 그럼 이만, 이 화가의 그림들을 보아도 더 이상 수면에 방해받지 않을 정도로 성장한 나 자신을 뿌듯하게 여기며,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