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가지감 감상평 릴레이] 바가바드기타(BHAGAVADGITA) 9장

9장 5~10

그리고, 나에게 머물러있는 존재들이 아니라 장엄한 나의 수행을 보라!
모든 존재들의 창조자인 나의 자아는 존재들을 지탱하지만
그럼에도 존재들에 머물러있지 않는다.
마치 우주에 머물러있는 방대한 공기가 항상 어디든 가닿듯이,
그렇게 모든 존재들이 내 안에 머물러있다고 여기라!
세상의 종말에 모든 존재들은, 꾼띠의 아들이여!
나의 분신인 자연으로 돌아온다.
세상의 개벽에 나는 다시 그것들을 내어놓는다.
나 자신인 자연을 통제한 채 나약한 모든 존재의 무더기를
자연의 영향으로부터 나는 거듭해서 내어놓는다.
그리고 그런 행위들은 나를 속박하지 않나니, 부를 차지하는 자여!
(나는) 그런 행위들에 대해 (마치) 낯선 사람처럼 내버려둔 채 집착하지 않는다
감독하는 자인 나의 보살핌 아래
자연은 움직이는 것과 움직이지 않는 것을 생산해낸다.
그 까닭에, 꾼띠의 아들이여! 세상은 돌아간다.

브라만(아트만), 신중의 신,전지전능,존재하는 모든것과 그이상의 모든것을 창조하는자이자 파멸시키는자,
그가 자기 자신 역시 수행자라고 말합니다.
그가 하는 수행은 자신의 창조물에 집착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것을 공평하게 대하려 하기에 자신의 창조물에 대한 집착에 벗어나려 애쓰는 것입니다.
(쉽게 생각해서 어떤 조직의 리더가 사심(집착)을 가지고 조직을 운영한다면 그 조직의 미래는 없을 것입니다.)

브라만은 자신의 창조물에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모든것에 공평하려 하기때문에
어쩌면 그것이 이 세상에 '악'이 존재하고 죽음이 존재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음'과 '악'이란것은 당연한것이고 벗어나는것이 불가능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악'과 '죽음'을 이겨내는 힘이 인간에게 있습니다.
왜냐면 '악'과 '죽음'은 인간에게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9장 11~12

인간의 모습을 지닌 어리석은 이들은 나를 경시하며,
모든 존재들의 위대한 군주인 지고한 나의 상태를 알지 못한다
헛된 희망을 가진 이들, 헛된 행위를 하는 이들,
헛된 알음알이를 가진 이들, 의식이 불안정한 이들,
(그들은) 사악하고도 악마 같은 참으로 매혹적인 자연에 빠져들게 된다.

인간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자신이 가진 신성한 힘(아트만)을 악을 행하는데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악이란 다른게 아니라 자신이 가진 신성함을 망각하는 것입니다.
브라만의 위대한 자비(공평심, 창조물에대한 집착에서 벗어남)에 의해서만히 모든 악이 존재할 수 있을까 합니다만.
그래서 성경의 주기도문중에 '제가 다른 이를 용서하듯이 저의 죄를 용서하소서'같은 구절이 있는가 봅니다.
용서함과 자비로움, 인내력등은 이러한 신의 수행과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9장 13

그러나 위대한 자아를 지닌 이들은
신성한 자연에 안주하여 전일한 생각으로
(내가) 불멸이요 존재들의 근원임을 알고 나에게 헌신(bhaj)한다

매혹적인 자연과 신성한 자연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관점의 차이입니다.
신성한 자연은 말그대로 모든것에 존재하는 신성함을 깨닫고 그것이 어떻게 자연에 작용하는지 아는 사람이 보는 자연입니다. 매혹적인 자연은 말그대로 자신의 신성함 조차도 망각해 다른것들, 즉 자연속에 있는 신성함을 모르는 사람이 보는 관점입니다. 보이지 않는 참다운 힘에 대해 깨닫지 못하고 이들의 특징은 현상에 집착한다는 것입니다. 우상을 받든다는 것입니다. 권선징악은 진리이지만, 이들에겐 잠깐이라도 권세를 누릴수 있는 눈에 보이는 악이 더 가치있다고 생각하여 그것을 따르는 자들입니다. 잠깐의 쾌락을 위해 영원을 고통받는 자들입니다. 악마들은 감히 브라만이 두려워 악한 짓을 못할 것 입니다. 오직 어리석은 인간들만이 지고지선의 존재 브라만을 몰라 악마들 대신에 악한 짓을 대신 해주고 있습니다.

9장 23~25

신념을 가지고 따르며 다른 신들에게 헌신하는 그들은
(자신을 위해 그 신들을) 숭배하는데,
그들 또한, 꾼띠의 아들이여!
맞지 않는 방식으로(나마) 나를 숭배하는 셈이다
나는 참으로 모든 희생들의 향유자이기도 하고 또한 주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실체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그래서 추락하게 된다.
신의 숭배자들은 신들에게 가고,
조상의 숭배자들은 조상들에게 가며,
(낮은) 존재의 예배자들은 그 존재들에게로 가고,
나를 받드는 사람들은 나에게로 온다.

어쩌면 브라만은 종교인들을 싫어할지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종교인들은 자신들만의 신과 교리을 숭배하기 때문입니다. 존재하는 모든것에 깃든 브라만(아트만) 그것은 어떤 한정한 교리나 특정 형상의 신이 될수 없습니다. 모든것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그 무엇에도 그가 있습니다.

9장 26~28

나뭇잎이나 꽃이나 과실이나 물을 어떤 이가 헌신으로 바치면
나는 순수한 자아를 소유한 이들의 그 헌신적인 헌공을 받아들인다
그대가 어떤 무엇을 하든, 무엇을 먹든,
무엇을 바치든, 무엇을 보시하든,
어떻게 고행하든, 꾼띠의 아들이여!
그것이 나를 위한 헌공이 되도록 하라!
그러면 선과 악의 결과들로 인한 행위의 속박들로부터
그대는 자유롭게 될 것이며,
(집착을) 내려놓은 채 수행에 몰두된 자아는
자유롭게 되어 내게 와닿을 것이다.

아트만을 깨달으면, 즉 참나를 꺠달아 그와 일치되는 행위를 하게되면, 그는 선악을 초월해 어떤 행위도 헌신(박티)이 됩니다.

9장 29~32

나는 모든 존재들에게 있어서 공정하니,
나에겐 미운 이도 존재하지 않으며 어여쁜 이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를 헌신으로 받드는 그들,
그들이 내 안에 있으며 또한 그들 안에 내가 있다.
설령 아주 나쁜 품행을 지닌 이가 나를 받든다 하더라도
(그것이) 전일한 헌신이면
그는 오직 훌륭한 사람이라 간주되어야 하나니,
그는 참으로 올바르게 결심하였기 때문이다.
순식간에 정의로운 이가 되어 궁극적인 평온에 다다르게 되나니,
꾼띠의 아들이여!
나의 귀의자는 (결코) 사라지지 않음을 그대는 깨달아야 한다

설령 아주 나쁜 품행을 지닌 이가 나를 받든다 하더라도 --->역시나 선악을 초월합니다. 성경에 '최고로선한사람은 그분 한분 밖에 없다' 뭐 이런 이야기 있던데. 이것은 다시말해서 인간(그분 외의 존재들)은 무엇을하더라고 절대 선할수 없다는 것입니다.티끌만큼이라도 악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악행을 하더라도 자신이 행하는 악이 뭔지 이해하고 행하기에 들행합니다. 미혹되 아트만을 망각하는 자들은 자신들이 하는짓들이 얼마나 어리석고 악한지 모르면서 행하나 또 아트만을 깨달은자는 비록 악할지라도 신의 자비로움 알고 또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선악을 초월해 자유롭게 행할 수 있습니다.

9장 34

나를 생각할 것이요, 나에게 헌신할 것이요,
나에게 희생할 것이요, 나에게 예배할지니라.
그렇게 자신을 참나와 하나가 되게 하여
나에게 전심전력하면 반드시 나에게 돌아오게 될 것이다

인간들(저를 포함해서 ^^;)에게 묻고 싶습니다. 어떻게 자신을 창조하고 또 그 권능을 나눠준 존재를 망각한채 자신들뿐만 아니라 모든것에 깃든 신성함마저 모욕하는데 그 권능을 쓰고 있는지. 그러면 안되는 것입니다. 구지 저런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그러면 안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 일겁니다.

9장에 나온 온갖 비밀과 지혜는 정말 9장 첫부분에 나온 글처럼 정말 제왕같은 지혜이자 심오함이자 최상의 정화기라 할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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