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06 올드스톤
모두가 불안해 한다. 그것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지금은 북한과 미국이 마치 하나의 레일 양쪽에서 열차를 몰고 서로 마주보고 부딪치려는 기세로 마구 달리고 있는 것 같다. 불안한 것은 우리가 그 가운데 끼여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 레일에서 내릴 수도 없다. 그런데 지금껏 마치 제3자인양 수수방관해왔다. 지금 우리는 그 댓가를 치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살펴보기전에 지금껏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에 대해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이글은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 것이며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살펴보기 위한 필자 나름의 준비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제까지 대북정책은 보수나 진보정권 모두 똑같이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국민 모두가 책임이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대북정책을 모두 정쟁의 도구로 이용해왔다는 뜻이다.1990년대 노태우 정권당시 공산진영이 붕괴될때 남북기본합의서가 체결되면서 북한도 마치 붕괴될 것 같은 분위기였던 적도 있었다. 돌이켜 보면 우리는 그런 호기를 이용하는데 실퍠했던 것 같다. 우리 내부의 역량이 국제적 상황변화를 수용할 만큼 성숙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이어서 김영삼 정권이 들어섰다. 핵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미국의 클린턴 정권은 영변핵시설을 외과수술식 공격으로 파괴하려고 했다. 김영삼 정부는 사생결단식으로 그것을 막아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북한이 핵을 발전시키는 결과가 되었다. 아마도 미국은 당시에 영변핵을 폭격하지 못한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할 지도 모른다. 당시에는 미국이 때려도 중국이 막을 힘이 없었다. 당시 미국은 걸프전을 끝내고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국력을 지니고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었는데 못했던 것이다. 필자는 미국이 만일 북한을 타격하려한다면 그 당시의 경험을 절대로 잊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이 공격하려고 할 경우 그 과정에 우리의 의견을 받지 않을 것이다. 아마 결정을 하고 통보만 할 것이다. 그 이후 94년 제네바 핵합의가 이루어졌다. 북한에 경수로 원자로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분위기가 잘 가는 듯했다.
진정한 대북정책은 김대중 정권때 부터 였다. 남북간 대화 무드가 조성되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94년 제네바 핵합의라는 미북간 협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위 햇볕정책이 시작되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보수세력 일각에서 퍼주기 논란이 나오기 시작했다.햇볕정책의 본질은 트로이의 목마이다. 남북간 서로 교류를 통해 남한의 자유를 북한에 집어 넣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북한도 변화를 할 것이라는 것이다. 정쟁이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던 수구세력들이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공격했다. 어리석은 우리 국민들은 거기에 부화뇌동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악수를 두었다.자신의 대북정책을 햇볕정책이라고 말해버린 것이다. 햇볕정책은 햇볕정책이라고 말하는 순간 실패해버리고 말았다. 대북정책이란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북한이 바보가 아닌 담에야 자신들의 외투를 벗기겠다는 햇볕정책을 그래도 수용할리 만무이다. 북한은 그 이후 단물만 빼먹으려고 했다. 그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비록 상황이 어렵더라도 이솝우화의 햇볕정책이야기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남북간 군사적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면서 적대감을 해소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이야기에서 그쳐야 했다.
국제적인 여건도 달라졌다. 미국내에서 경수로 원자로로도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경수로 사업은 지지부진해졌고 북한은 핵개발을 계속했다. 그 사이에 미국에는 부시행정부가 들어섰다. 미국은 우리의 햇볕정책을 노골적으로 반대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곤경에 처했다. 어떤 방식으로든 대북정책의 성과가 나와야 햇다. 북한에게 매달리는 형국이 되었다. 그럴수록 수구세력들은 김대중 정권을 공격했다. 한국의 대북정책이라는 것이 미국의 세계정책적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가 분명해진 것이 부시정권때 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전에는 한국과 미국이 서로 정책적으로 다른 방향을 선택할 일이 없었다. 냉전체제하에서는 오히려 우리가 더 미국보다 보수적이었느니 말이다.
부시정권의 등장으로 햇볕정책은 한계에 부딪칠 수 밖에 없었다. 그때 우리느 선택을 했어야 했다. 국민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지하든 아니면 다시 일사분란하게 반대를 하고 북한의 핵개발을 저지하든지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이도 아니고 저도 아닌 상황에서 오불관언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황도 그때의 행동에 대한 징벌인지도 모른다.
노무현 정권이 들어섰다. 노무현 정권은 남북간 교류확대보다는 남북간 직접적인 정치적 해결과 같은 보다 직접적인 방향으로 나간 듯하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 지원을 받대했다. 노무현 정권이 직접지원보다는 정치적 접촉을 추구한 것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 사이 북한의 해개발은 빠른 속도로 계속되고 있었다. 노무현 정권이 전작권 전환을 추진한 것도 미국의 정책적 압력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편이었는지 모른다. 안보를 미국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반대하는 안보정책을 구사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겠는가? 그러나 지금 한국의 안보상황은 우리가 어떻게 한다고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주한미군의 주둔이라는 것이 동북아 지역의 국제적 안보환경의 실상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그렇게 국제적 안보구도의 변화없는 전작권 전환이라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오면서 남북간 교류의 절반을 잘라 버렸다. 금강산 관광이 중지된 것이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이 들어서면서 개성공단이 중지되었다. 보수정권은 대북강경 일변도로 나갔다. 북한은 이마 남북교류없이도 자생적으로 최소한의 경제적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 버렸다. 보수정권의 대북교류 중단이 북한의 행동을 교정하는데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북한에 개입할 수 있는 여건 자체를 스스로 없애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북한은 남한에 경제적으로 의지하기보다는 외부에서 활로를 찾아갔다.
물론 보수정권 10년의 대북강경정책이 완전히 부정적이었다는 것만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대북강경정책이 북한내부의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역할도 했다. 북한도 먹고 살아아 했기 때문에 시장을 일정부분 인정해주지 않을 수 없었다. 배급체제가 붕괴되면서 주민들도 각자 도생의 길을 찾아 나서지 않으면 굶어 죽기 십상이었다. 당연히 자본이 형성되었고 자본은 내부의 변화를 초래하는 힘으로 작용했다. 철옹성 같은 북한 내부도 변화의 씨앗이 뿌려질 수 있는 토양이 갖추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진짜 변화는 의도하지 않았던 데에서 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문재인 정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정치가 생물인 것 처럼 남북관계도 국제안보환경도 생물이다. 끝임없이 변화한다. 변화는 모든 것의 본질이다. 이런 변화를 무시하고 닥치고 대화라는 프레임을 선택하면 결과는 뻔하다. 무엇인가 성과를 남기려면 내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어떤 양상을 띠고 있는지를 철저하고 냉정하게 파악해야 한다.
지금은 위기다.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일까? 필자는 우리의 위기는 우리가 우리일을 남의 일 처럼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지금껏 어떤 일이 있더라도 꾸준하게 해 왔더라면 지금쯤은 무엇인가 매우 긍정적인 그리고 가시적인 변화가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끊임없이 강압만 했었더라도 북한내부의 변화가 있을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있다. 대화하다가 압박하다가 다시 대화하다가 압박하다가 지속적으로 상황에 따라 정책을 바꾸어왔다. 마치 뒷골목 구멍가게 주인이 하는 것 처럼 이리저리 제마음대로 해왔다.
우리의 제일 큰 문제는 일관성의 부족이었다. 화해정책이든 강압정책이든 하나를 정했으면 끝까지 가보아야 하는 것이다. 정권 5년 바뀔 때마다 미친 X 널뛰듯이 이리 저리 바뀌어 왔으니 어찌 제대로 될까? 필자는 진보건 수구건 둘 다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모두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들은 민족사의 대업이라는 생각보다는 자신의 정파적 이익에 좌우되어서 대북정책을 수행했다. 그러니 지금과 같은 짝이 난 것이다.
현실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가장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정책방향을 설정하여 국민들의 동의를 얻고 꾸준하게 시행했어야 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는 우리가 스스로 만들었다.
현재 우리의 모습은 과거가 누적된 결과이다. 누가 잘했고 잘못했고를 따질 겨를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