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소설] 소녀와 모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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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걸었다. 모퉁이를 돌아가면 갓 구운 빵이 보기 좋게 진열된 가게가 나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모퉁이 너머에서 솔솔 불어오는 달콤한 버터향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매일 아침 말랑말랑한 빵을 입 안에 넣는 것. 그건 소녀의 운명처럼 생각되었다. 모퉁이는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처음에는 단지 몇 발짝만 움직이면 되는 거리였다. 소녀는 들떴다. 콧노래를 불렀다. 두 다리를 부지런히 움직였고 여기에 보조를 맞춰 두 팔도 흔들었다. 모퉁이는 멀어졌다. 소녀는 걷고 걸었다. 이마에서 땀이 흐르고 다리가 아팠다. 모퉁이는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소녀는 지치기 시작했다. 몸에 경련이 일어나고 숨이 목구멍까지 차오르자 공포를 느꼈다. 안타깝게도 소녀는 빵이 운명인지, 걷는 것이 운명인지, 아니면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모퉁이가 운명인지 알 수 없었다.


모퉁이는 다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바로 앞에 있었다. 따뜻한 빵 냄새는 소녀의 위를 자극했다. 소녀는 침을 삼키며 걸었다. 이대로 돌아갈 수 없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뒤를 돌아보기가 무서웠다. 소녀는 등 뒤에 아주 무서운 것이 따라오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배웠다. ‘그 내용이 참인지 거짓인지 한 번 알아볼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생각하기 위해서는 걸음을 멈추어야 했다. 그런데 걸음을 멈추는 것은 왠지 손해를 보는 행동 같았다.


“돌아보지 마. 돌아보지 마.”


소녀는 약속하듯이 자신에게 중얼거렸다. 소녀는 힘을 내어 다시 걸었다. 소녀는 영원히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드디어 소녀는 늙었다. 기억이 거의 다 사라져서 자신이 왜 걷고 있는지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후각도 떨어져서 더 이상 빵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걷는 것 빼고는 달리 할 일이 없었으므로 절뚝거리며 계속 걸어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제 노인이 된 소녀의 등 뒤에 모퉁이가 변함없이 얌전하게 따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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