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밤의 꿈

어제는 맥주 없이도, TV 소리 없이도 금방 잠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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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해보니, 역시나 아름다운 곳이었다. 거기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됐다. 먼 곳에서 온 적당히 유명한 인디 가수와 그와 친한 동네 형이었는데, 어르신은 그 둘을 '망해서 행복한 사람들'이라고 불렀다.

첫날엔 도착해서 짐을 풀고, 관계자들이 준비해주신 능이백숙을 먹었다. 오래된 고택에서 직접 만든 동동주도 함께 했는데, 술자리가 길어지진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선 모두 일찍 쉬러 가셨고, 아쉬운 젊은이 몇 명이 모여 부엌에서 맥주를 마셨다.

다음 날은 망해서 행복한 사람 한 명이 더 왔다. 또 종종 여행에서 만나던 오빠와 유명하지 않은 배우 한 명이 왔고, 연주자가 한 명 더 왔다. 이들은 모두 시간차를 두고 도착했는데, 사람이 한 명 한 명 늘어나는 게 재밌었다. 나는 고민 끝에, 여행 마지막 날에 잡혀있던 일정을 취소했다.


인원이 많아 차에 탈 인원을 분배해야 했다. 나는 여행 내내 '망해서 행복한 사람들'과 함께 다니게 되었다. 띠동갑이 넘는 나이차 였지만, XX씨라곤 부를 수 없어 냉큼 오빠라고 불렀다.

우리는 이틀간 간단한 먹거리나 필요한 것을 사왔다. 차 타는 걸 좋아하는 나는 심부름을 핑계로 매번 뒷자리에 앉았다. 길을 잘못 들어 꽤 오랜 시간이 걸린 적도 있고, 그냥 먼 거리를 가야 했던 때도 있다. 자연스럽게 우리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눴다.

적당히 유명한 오빠는 맨정신에도 사랑한다는 말을, 감사하다는 말을, 반갑다는 말을 진심으로 건네는 사람이었다. 나는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부끄러워 상황을 가리곤 했는데, 그는 언제나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큰소리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들과 함께 다니면서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을 알게 됐다. 장난처럼 시작된 말이지만, 그들에겐 일상인 듯 보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언제나 '그럴 수 있어'라는 식의 가벼운 태도로 넘겨주었다.

나는 정말로 망해버린 사람들을 보니 마음이 편해져 구구절절 내 깊은 고민을 이야기했다. 돌아와서 생각해 보니 한 번도 '그래도 그때가 좋은 거야'라던가, '내가 그래 봤는데', '요즘 애들은'과 같은 말을 듣지 못했다. 그냥 그들은 묵묵히 얘기를 들어주고, '그럴 수 있어'라는 생각으로 넘겨주었다. 마흔이 넘는 그들을 어른이 아닌 오빠라 생각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가 아니었나 싶다.


둘째 날의 저녁 식사는 여행의 클라이막스였다. 여섯 시부터 숯불에 고기를 굽기 시작해 새벽 세 시까지 술자리가 이어졌다. 인원이 많아 나는 여기에서 놀다가, 저기로 갔다가, 잠깐 방에 누워 있기를 반복했다. 노을이 지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술도 더 늦게 취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술자리에서 늘 우리를 불러주시는 어른께서 일 년 간 다른 나라로 떠나신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송별회라는 단어를 몇 번 꺼내다 마음이 아파진 우리는 축송회로 그 이름을 바꿨다.

그 자리에서 들은 수많은 따뜻한 말과 사랑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지만, 그냥 묻어 두기로 했다. 거기서 적당히 유명한 오빠는 평소와 같이 연신 고맙다는 말을 했고, 나도 술기운을 빌어 여러 사람의 손을 맞잡았다. 이 자리에, 이 시간에 함께할 수 있어 행복하다는 말이나, 감사하다는 말, 혹은 사랑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자리의 반 이상이 음악인이었지만, 아무도 악기를 꺼내지 않아 좋았다. 어떤 이가 안 쓰는 컵에 핸드폰을 넣고 노래를 튼 게 전부였다. 적당히 유명한 오빠와 내 곡이 번갈아 가며 나왔다. 술자리에선 몇 번 목이 멨다. 밤이 캄캄해 대화를 나누면서도 울 수 있어 좋았다.


마지막 날, 우리는 점심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망해서 행복한 사람들'과 함께 식당으로 가는데, 역시나 길을 잘못 들어 늦게 도착했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나는 그들과 좀 더 있을 수 있어 좋았다.

밥을 먹고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쉽게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우리는 손을 꼭 맞잡고, 반가웠어요. 행복하세요. 다음에 또 봐요. 꼭 연락해요. 같은 말들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나는 서울로 돌아가는 차로 자리를 옮겼다.

돌아오는 길엔 다들 지치셨는지 별말이 없었다. 나는 책을 좀 읽으려 했는데,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집중이 되지 않아 새파란 하늘을 계속 쳐다봤다.

서울에 도착한 우리도 헤어질 때가 됐다. 어쩌면 어르신과도 오늘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몇 번 이별을 하는지... 그분과 포옹을 하면서 "가기 전에 꼭 한 번 더 봬요"라는 말을 했다. 또 떠나는 곳을 말하지 않는 그분에게 "계신 곳에 놀러 갈게요"라는 말을 했다. 그것으로 긴 여행이 끝났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엔 늘 타던 406번 버스를 탔다. 사소한 이별들이 통렬한 아픔으로 다가왔다. 버스 안에서 우리가 나눴던 수많은 대화를 돌아보고, 내가 그들에게 받았던 조건 없는 깊고 넓은 사랑을 되새겨 보았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 아름다운 산자락의 우리를 생각하면서 엉엉 울었다.


늘 그렇듯 금방 기뻐지는 나는 집에 돌아와 뜨거운 물로 샤워하니 기분이 금세 좋아졌다. 잠들기 전엔 적당히 유명한, 망해서 행복한 오빠에게 이런 문자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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