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잇에서 5개월동안 매일 글을 썼다. 매시간 댓글을 썼다. 출금 한번 없이 스팀달러를 스팀으로 환전했다. 그리고 스팀을 스팀파워로 전환했다. 그렇게 5개월동안 쌓은 내 스팀파워의 추정 자산가치는 800달러였다. 800달러는 큰 돈인가? 부족한 돈인가? 글을 쓰는데 커피가 필요 없는 사람에게는 부족하지 않을 돈일 수 있고, 글을 쓰는데 커피가 필요한 사람에게는 부족한 돈이다. 그래도 가난을 짜내어 가지고 있던 암호화폐가 밥은 굶게 해주지 않았다. 책임감이 없는 사람이라서 그냥 그렇게 살았다. 살다보면 좋은 일이 있다던데, 기회는 나서는 사람에게만 있다던데,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나에게는 기회도 좋은 일도 없을 예정이었다. 굳이 따지면 2011년에 경제학자의 강연을 들은 것, 암호화폐가 무엇인가를 듣고 그냥 흘려보내지 않은 것, 사회적 효용에 관심이 조금 있었던 것. 그럼에도 늦기는 했으나 늦지는 않은 시점에 암호화폐를 가지고 있었던 것. 암호화폐시장에 닥친 여러번의 고난을 버텨낸 것. 이것들이 기회이며 노력이었을까? 잘 모르겠다. 행복하게 살긴 했다. 세상에는 취향 참 희안하게도 골방 철학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라면 말고도 여러가지 먹으며 지냈다. 암호화폐를 더 팔았다면 내 돈으로 여러가지 먹을 수 있었을텐데 참 미안한 일이다. 그래도 최대한 버틴 덕에 내 암호화폐들은 조금 더 맛있는 음식을 더 많이 살 수 있는 돈이 되었다. 그래서 이번 달 내내 만나는 사람들에게 받은걸 다시 돌려주고 있다.
나는 정말 내세울게 없는 사람이다. 할 줄 아는게 무어냐 묻는다면 생각할 줄 안다, 그 대답 밖에 할 수 없다. 아, 게임을 조금 잘 했다. 연습생이 될 기회도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노력할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할 줄 아는걸 묻는다면 인간이라면 당연히 할 수 있는 생각, 누군가에게는 이마저도 부럽겠지만 보행, 호흡 정도가 있었다. 생각을 할 줄 안다는건 증명하기 아주 어려운 일이다. 증명하기 위해 세월이 필요하다. 교육에 의한게 아닌, 생각하는 힘에 의한, 엄밀히는 이것조차도 교육에 의한 것인 지성. 지식이 아닌 지성은 내비치기 쉽지 않다. 지식은 잘난 체 한다는 비아냥을 듣겠지만 원한다면 언제나 내비칠 수 있으나 지성이 빛나는 순간은 드물다. 지성에게는 포장지가 필요하다. 요즘 같은 사회에서는 더욱. 학문의 길에서 도망친 나에게 내 지성을 꾸며줄 포장지는 없다. 아니, 애초에 포장할 지성이 없을지도.
아, 내세울 점 하나는 있다. 장점인지 모르겠으나 자존감과 자신감이 더럽게 높은 편이다. 자존감과 자신감이 높은 학생은 사교관계가 좋으며 비난에도 강하다고 한다. 흔히 프라이드가 센 사람은 쉽게 상처 받고 흥분하는 것처럼 알려져 있으나, 정말로 자존감이 강한 사람은 '내 가치는 말 한마디에 무너지지 않는다'며 정신승리인지 무엇인지 모를 탈출구로 도망갈 수 있다. 자존감, 자존심, 자기애, 기타 등등의 차이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싶지 않다. 애초에 혼용되는 표현이며 사이비 심리학 서적이 이를 더욱 구분하기 어렵게 한다. 대충 알아들으시라. 다시 돌아가서 결론은, 좋다. 나는 멘탈 강한 깡통. 제목을 무제라 써두고 써내려가다 보니 이 글의 목적을 잊었다. 목적이 있던가? 일단 요약한다. 멘탈 강한 깡통은 5개월동안 800달러를 벌었다. 몇개 안 되는 암호화폐를 까먹으며 밥은 굶지 않고 살았다. 그 몇개 안 되는 암호화폐는 어떻게 가지고 있었는지 묻지 마시라. 이 글은 깡통의 스팀잇 일대기지, 자서전이 아니다. 아, 적당한 제목이 떠올랐다.
그렇게 5개월을 보내고 다시 한달이 조금 더 지난 지금, 깡통의 추정 자산가치는 14,517 달러다. 첫 출금을 하면 꼭 한반도 밖에 나가보지 못 한 우물 안 깡통이 세계를 조금 엿보고 오리라. 그리 생각하고 모으던 스팀달러도 엄청나게 큰 돈이 되었다. 스팀잇은 이런 곳이다. 내 지성이 갑자기 빛을 낸 것도, 내 글솜씨가 갑자기 늘어난 것도,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이 갑자기 늘어난 것도 아니다. 그냥 암호화폐 시장이 폭발하며, 스팀도 폭발하고, 800달러는 14,517 달러가 된다. 내가 전할 수 있는건 이게 전부다. 맨손으로 스팀잇에서 나보다 성공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누군가에게는 아주 작은 돈일지 모를 돈도 투자한, 어쨌든 맨손은 아니었던 내가 생존방법에 대해 논하겠는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도 좋다. 특별한 재주가 없어도 좋다. 별로 포장지가 좋지 않아도 좋다. 포장지가 좋으면 빨리 성공하겠지만. 그 모습을 보고 비관이 생기면 자조적인 웃음도 한번 지어보자. 나는 그런 사람이 좋다. 특별하지 않다 못 해 평범함도 잃어버린 사람. 제각각 모두 특별한 재주가 있는데 혼자만 재주가 없어 오히려 평범하지 않은 사람. 그래서 특별한 사람. 너는 밤을 지새우며 무엇을 했냐고 물으면 "생각..."이라고 답할 수 밖에 없는 사람.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꼭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라는 곡이 생각난다. 유튜브에 가장 보통의 존재를 검색하면 또 우스운 결과와 마주친다. 조회수가 가장 높은 영상은 아이유가 부른 가장 보통의 존재이다. 하지만 이 곡만큼은 절대로 원곡을 들어야한다. 언니네 이발관의 보컬 이석원이 쓴 보통의 존재라는 수필집도 있다. 글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서투르다. "괜찮은 책"이라 하면 무언가 위에서 내려다보는 느낌이고 "좋은 책"이라고 하면 성의 없이 느껴진다. 내가 누구냐 물으면, 나는 나라고 답할 수 밖에 없듯 보통의 존재가 어떤 책이냐 묻는다면 보통의 존재라 답할 수 밖에 없겠다.
누군가는 이 글을 읽고 기분이 나쁠 것이다. 내가 싫고, 내 글이 싫어서. 사정이 어떻든 카페에서 커피나 마시면서 글이나 쓰는 배부른 돼지 새끼. 암호화폐에 투자할 돈이 있었던 새끼. 그래서 그걸로 밥은 안 굶는 새끼. 그러면서 배고픈 소크라테스 흉내를 내는 새끼. 그 분노를 글로 보여달라. 당신도 배부른 돼지가 되어 평범함을 잃고 평범해질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