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배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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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은 멋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당시에 소년이 멋진 사람이 아니었던 이유는 여럿 있지만 명쾌히 표현하긴 어렵다. 단지 역할기대도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만 할 수 있다. 소년이 스스로에게 갖는 기대감, 타인이 소년에게 갖는 기대감, 그 두가지가 엮여 소년을 괴롭혔다. 말로 표현할 수 없어도 모호하게 와닿는건 있다. 그리고 소년은 그럴 때마다 지탱할 사람을 찾는다.

소년을 지탱하는 사람이라 해서 특별하진 않다. 소년도 특별한 기대를 품지도 않고, 특별한 요구를 하지도 않는다. 그냥 존재하는 것, 그 자체에 기댄다. 소년이 거쳐온, 기대온 사람들도 모두 평범한 인간일 뿐이며 제각각 고뇌를 품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소년에게 이를 알리지 않았다.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저 소년에게 한풀이를 할만큼 비참하진 않은 사람들이었을 뿐. 소년 또한 그들에게 한풀이를 할만큼 비참하진 않았다.

소년이 한 일은 숭배였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이상을 씌운다. 소년은 그 평범한 사람들을 멋진 사람들로 만들고 추종한다. 이를 위해서 소년은 적당히 그들의 삶에 들어가지 않아야 했다. 그들이 평범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몰라야 했다. 하지만 신의, 사후세계의, 영혼의 존재에 증거는 필요 없다는 이들이 증거에 가장 집착하듯 소년 또한 그들의 멋의 증거를 찾곤 했다. 그래서 숭배는 영원할 수 없다. 소년의 우상이 스스로가 인간이라는걸 폭로하거나, 소년이 자신의 우상이 인간이라는걸 알아낸다면 숭배는 끝이 난다.

소년의 숭배는 그래서 몇번이나 끝이 났다. 그렇지만 소년의 섬김은 무가치 하지 않았다. 평범한 우상을 섬기던 소년은 성장했다. 아직도 소년은 말로 뚜렷하게 표현할 수 없지만 자신이 평범한 사람들에게 씌운 이상적인 인간의 틀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외부에서 보기에 소년의 삶과 주변 사람들과 맺는 관계는 크게 달라졌다. 소년은 잘 모르고 있지만 소년이 멋에 다가가며 소년을 숭배하는 이들이 생겼다.

이제 소년은 끝 없이 우상을 섬긴 비참한 인간과 섬김의 대상이 되는 멋진 인간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소년은 자신이 섬김의 대상이 되었다는걸 몰랐지만 모든 것은 자연스러웠다. 과거 소년의 우상들 또한 자각 없이 우상이 되었고, 자각 없이 우상의 자격을 박탈 당했다. 그래도 우상들에게도, 명확하게 표현하기는 어려우나 어렴풋이 느껴지는 무언가는 있었을 것이다. 소년 또한 그 길을 걷고 있다.

다시 최초의 갈등이 시작되었다. 소년이 우상으로 남아주길 원하는 소년의 신도들과 멋진 사람이 되고 싶은 소년의 내면, 그 두가지가 또 소년을 괴롭힌다. 소년은 아직 자신을 괴롭히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 하지만 자연스레 옛 우상들을 닮아갔다. 소년이 만들어 낸 우상의 아이덴티티가 아닌 우상의 실체를.

소년은 어느새 아무도 섬기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소년이 그 사실을 떠올렸을 때, 자신의 첫번째 신도와 헤어졌다. 헤어짐은 어느 한쪽의 선택이 아니었다. 신도에게는 더 이상 우상이 필요 없었으며, 우상에게는 더 이상 신도가 필요 없었다. 마침내 소년은 홀로서기에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

여유가 생긴 소년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소년의 부모, 소년이 보기에는 불완전한 인간. 그들에게도 신도가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소년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그들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소년은 부모에게 존경을 표했다. 소년의 부모는 걱정을 포함한 몇가지 감정이 섞인 겸연쩍은 미소를 지었다.

소년은 그토록 바라던 멋진 사람과 얼마나 가까워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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