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금을 다 지불했다. 이번 달 쓸 생활비를 다 벌어놓았다. 딸기 한 상자를 사놓았다. 기쁨은 이제 시작된다.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앉아 한 페이지씩 읽을 시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나에게 시를 읽는 시간은 소설을 읽는 시간과 다르다. 책장에서 시집 한 권을 고르는 것은 품이 드는 일이다. 시는 마음을 먹고 억지로 시간을 내어야 읽어진다. 시를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을 꼽아보니 일 년에 대 여섯 번 정도인데, 정신적으로 큰 고민이 없고 월말이 되기 전에 몇 달 치 생활비를 다 벌어놓은 풍족한 날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되면 나는 시를 읽기 위해 돈을 버는 사람같다. 알고 보니 시 한 페이지는 나 자신에게 바치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온전히 투자로 먹고 사는 나는 심리적으로 예민한 시기가 주기적으로 닥치는데 그 때는 시를 읽을 정신이 없어지게 된다. 그런데 소설은 오히려 읽힌다. 특히 폭락장에서 전 계좌가 푸른색으로 멍들어갈 때는 어김없이 장편소설을 골라서 읽는다. 왜 그런지 생각해보니, 소설 속의 갈등상황에 푹 빠져있으면 불안한 심리가 같이 녹아내리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시는 친절하지 않다. 시를 읽으려면 내가 적극적으로 행동해야한다. 시인의 머릿속에서 나온 생각들이 화음을 만들면서 끝없이 달려오는데 노래는 들리지 않는 기분이다. 그러면 그 노래를 듣기 위해 반물질 형태의 화음을 직접 내 악기로 연주하는 수고를 해야하는 것이다. 연주가 썩 만족스러울 때 느끼는 기쁨은 소설 한편의 감동을 능가할 때도 있다.
오늘은 모처럼 시집을 꺼내 읽었다. 시 읽는 날이 다시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지금 이 순간만은 마음껏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