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프로스섬에서 채석장 감독을 하는 것은 그다지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시는 별처럼 빛났으나 팔리지 않았다. 팔리지 않은 시는 150년동안 읽히고 있다.
오늘 한 여자아이가 사라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이 아이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물론 얘기를 나눈 적도 없다. 우연히 인터넷을 떠돌던 실종 전단지 속 얼굴을 본 순간 뾰쪽한 입술이 랭보의 입술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여자아이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하러 나간 뒤 휴대폰과 지갑을 얌전하게 두고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마지막 모습은 서면 번화가의 CC카메라에 찍혀있다. 뒷모습이었는데 그걸 보는 순간 슬퍼졌다. 여자아이는 큰 보라색 보자기를 머리 끝부터 무릎 아래까지 덮어쓰고 있다. 헌옷수거함에서 보라색 침대시트를 꺼내 온 몸에 두르는 너의 모습을 상상한다. 하필이면 왜 보라색으로 너 자신을 감싸고 싶었을까.
사람들은 왜 사라지고 싶은걸까. 또한 주기적으로 지우고 싶은 욕망은 어디에서 나올까. 강박적으로 블로그나 SNS의 프로필, 글과 사진을 모조리 삭제하고 잠수 타는 사람들, 그리고 예쁘게 뽀샵된 모습으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사람들. 그들은 오히려 기억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