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퀀텀소설] 키요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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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V를 보다가 문득 나 말고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영화관에서 팝콘봉지에 손을 넣은 순간 다른 사람의 손과 닿은 것처럼. 그것은 조용히 내 옆에 앉아있었다. 아주 얇은 비닐 같은 걸 덮어쓰고 조용히 있었다.

 많이 놀란 것은 아니었다. 나는 5년동안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명상을 하고 있었다. 명상을 하는 중간에, 혹은 낮잠을 잘 때 트랜스 상태가 되어 다른 차원의 존재들을 보는 경우가 있었다. 죽은 사람들이 자신이 죽은 줄 모르고 일상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적외선 차원에 있었던 적도 있다.

  '얘도 효리네 민박을 좋아하는구나.'

 녀석의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했다. 최대한 곁눈질을 해서 얇은 막 사이로 축 늘어진 노란색 피부와 너무 얇아서 자세히 봐야 구별이 가는 노란색 털을 훔쳐보았다.
 녀석에게서는 엷은 망고냄새가 났다.
얼마 전 바디로션을 화이트머스크향에서 망고향으로 바꿔서 녀석의 존재를 이제 알았나보다.

 그 무렵 나는 이 원룸에 이사왔다. 언제부터 이 녀석이 나와 함께 있었던 걸까. 내가 오기 전부터 여기에 살고 있었던 걸까. 나는 왜 오늘에서야 알아보았을까. 혼자 집에서 맥주를 마실 때 맥주가 빨리 사라졌던 것은 녀석 때문이었을까.

 효리네 민박이 끝나자 그 뭉치는 최대한 속도를 느리게 해서 위로 움직였다. 나는 폰을 보는 척하며 1시간에 걸쳐 녀석이 쇼파에서 천장으로 이동하는 것을 구경했다. 투명한 텍스쳐는 주위의 환경을 그대로 모방했기 때문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없는 허공처럼 보였다. 천장에서 정지했기 때문에 녀석의 흔적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양치를 하고 불을 끄고 침대에 누웠다.

 문득 이 녀석이 누구인지 생각났다. 일 년전 적외선 차원에 있는 몽이-몽이는 내가 초등학교 다닐때 집에서 키우던 개이다-가 말해주었는데, 녀석의 이름은 키요키다. 몽이가 그렇게 강조했는데 이제야 녀석을 알아보다니. 키요키는 99일 동안 한 인간과 동거하면서 그의 행동을 빠짐없이 자신의 피부에 기록한 후 100일째 밤에 그 인간의 살을 발라버리고 뼈만 먹어버린다고 했다.

 나는 이사온 날짜를 계산할 필요가 없었다. 1월 1일에 이사를 와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오늘은 2월 14일 수요일밤이다. 내일 당장 이사를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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