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사육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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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친 야수를 방생하기 위해 거두어 들인다면 많은 노력을 해야한다.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야성은 잃지 않으면서 사육사를 공격하지 않을 정도의 분별력은 가져야 한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이 중요하다. 아무리 생명은 모두 존엄하다 해도 동물의 야성을 지키기 위해 사육사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수는 없다. 반대로 충분히 야성을 유지하지 못 해 준비한 방생이 실패한다면 그것도 낭비가 된다. 깊은 관심을 갖고 섬세하게 야성을 조율한 사육사의 노력, 깊은 관심을 가진 대상과의 이별을 준비하던 감정이 낭비가 된다. 이별은 사육사에게 힘든 일이지만, 야생에 적응하지 못 하여 이별에 실패하는 것도 힘든 일이다.

나는 그리 어려운 사육을 원하지 않았다. 영속적인 사육에 만족한다. 나를 새장에 가두어두고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켜주고, 내가 지저귀는 소리를 즐기기 것 이상을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나에게 필요한건 야생과의 단절이었다. 야생에서 살아남기 위한 야성을 키워내는건 어렵다. 방생을 목표로 하지 않더라도 마찬가지다. 가령 매사냥을 위한 매를 키워내는건 극도의 섬세함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나의 주인에게 내 야성을 유지하며 섬세하게 길러줄 것은 원하지 않는다. 야성을 유지하는걸 원치 않는 수준을 넘어, 야성을 잃고 싶었다. 원한다면 내 부리와 발톱을 갈아서 절대로 무언가를 해칠 수 없도록 약하게 만들어도 좋다. 도망가지 못 하게 날개의 기능을 앗아가도 좋다. 하지만 파격적인 조건에도 사육사를 구하기는 어려웠다. 대부분의 사육사의 이해와 내 이해는 일치하지 않았다. 사육사는 내 야성을 길들이고 싶어했다. 매사냥을 하고 싶어했다. 경주마가 되길 원했다. 사육사의 필요에 따라 야성을 발산하길 원했다. 하지만 훌륭한 경주마가 되는건, 훌륭한 사냥용 매가 되는건 기질만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사육사가 충분히 노력하지 않는다면 미친 말, 미친 새일 뿐이다.

그러다 2년 전, 왕을 가지려고 했던 적 있다. 나에게 동업을 권하던 그에게, 나는 거대한 영향력을 요구하며 한가지 약속을 했다. 나를 중용한다면 당신을 왕으로 섬기는 충신이 되겠노라고. 나는 아무에게나 고개를 조아리지 않는다. 그에게는 내가 갖지 못 한게 있었다.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동의를 얻어내고 끊임 없이 내 손에 닿는 것에 대한 영향력을 요구했다. 통제광인 나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건 모두 내가 해결하고 싶어한다. 그렇게 계속해서 내가 관여하는 분야가 늘어나던 어느 날, 그는 자신이 할 일은 무엇이냐 물었다. 왕의 업무에 대해 알았다면, 나는 왕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신하가 되길 택한 이유는, 왕의 업무에 무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가 무엇을 해야할지 알았다면, 당신을 섬기겠냐고 답했다. 내가 모르는 모든 것이 그의 업무였다. 하지만 그는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끝까지 알아내지 못 했다. 그리고 그의 가치가 무엇인지도, 내가 그에게서 무엇을 보고 신하를 자처했는가도. 결국 그는 내 왕이 되는걸 포기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이처럼 피-사육이란 하나의 사육이기도 하다. 새장의 주인은 새에 대해 알아야 한다. 내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나는 아름답게 지저귀는 대신 비명에 가깝게 지저귀다 죽어갈 것이다. 사육에는 책임이 따른다. 나는 나를 책임질 주인을 갖고 싶었다. 나는 피-사육을 통해 자유를 얻고 싶었다. 피-사육과 자유는 공존할 수 없는듯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피-사육을 통해 야성을 지니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는 자유, 맹목적인 복종에서 오는 안락함이 줄 정신적 자유, 주인을 통해 충족되는 욕구에 따른 육체적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맹수가 남에게 피해를 입힌다면, 맹수가 아니라 맹수를 키우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 하지만 걸핏하면 쇳소리로 울어대는 새를 돌보는 일이란 쉽지 않다. 정해진 시간에 물을 마셔야 하고 밥을 먹어야 하고 새장이 너무 크면 안 되고 새장이 너무 작아서도 안 되는 새를 돌보는건 어렵다. 나는 그래서 왕을 갖지 못 한다. 하지만 나는 영원히 왕을 찾아다닐 것이다. 기꺼이 섬길 가치가 있고, 기꺼이 나를 사육할 왕을. 그리고 세상에는 자유를 되찾아 줄 왕이 필요하다.

그의 말처럼 내가 왕이 존재하길 원하는 것이라면, 내가 왕을 자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자유를 사랑한다. 통제광인 내가 섬김을 받는다면 그들에게 자유란 없을 것이다. 그들을 통제하는 나의 자유도 잃어버린다. 제각각 성격이 다른 새들을 섬세하게 돌보기 위해서 나는 자유를 잃는다. 내가 왕이 될 자격과 능력이 있는가는 말 할 필요도 없고.


@zzoya 님께서 글작가와 그림작가의 협업을 계획하셨기에 저도 약간 보태보았습니다. 활발한 이벤트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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