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ropos #2: 근대의 살롱과 커피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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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ropos의 의미: ~에 대하여, (특정한 상황에) 맞는. 적절한.

최근에 취향 공동체, '살롱'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일부 모임은 기존 문화센터 강좌와 다른 점을 잘 모르겠다. 취향이란 사실 굉장히 세부적인 것으로, 관심 영역이 같다는 점만으로는 기존처럼 네이버 카페나 동호회를 만들면 해결되는 것 같은데, '취향 공동체'나 '살롱'도 일종의 유행어로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든다.

실제로 '살롱'이라는 근대 문화의 현상은 상당히 넓은 분야들에 걸친 대화를 하던 사교적인 모임 정도로 정의할 수 있겠다. 현대인이 거기에서 얻을만한 것은 무엇일까. 이 글에서는 근대 프랑스의 살롱, 영국의 커피하우스에 대한 기본적인 사항들을 잠깐 살펴보기로 한다. '현대에 살롱이라는 것을 만든다면'이라는 가정으로 출발한 소회들을 중간중간에 넣을 생각이다.

살롱(Salon)

17~18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성행했다. 다른 유럽 국가와 미국에도 살롱문화가 있었으나, 보통 살롱이라고 하면 가장 대표적인 17~18세기의 프랑스 살롱 문화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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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프랑스의 살롱

살롱이란 예술을 비롯한 여러 주제에 대한 대화와 토론의 장으로 정의할 수 있다. 살롱의 가장 큰 업적을 꼽는다면, 18세기 계몽주의를 주도한 문화로 볼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제법 급진적이거나 박식하다고 하는 이들이 살롱에 많이들 모여들었겠지만, 무슨 의도적인 기획이라기보다는 지식과 문화, 예술을 향유하는 유익한 시간을 갖기 원하는 이들, 그리고 그에 공감하는 이들이 모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었을까 싶다.

현대 살롱을 위한 노트 1. 살롱의 목적과 수준, 대중성 등은 비교적 초기부터 명확히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살롱도 계몽주의 시대의 살롱처럼 사회적, 지적 담론의 한 축을 담당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질 수도 있다. 그게 아니라면, 일상성을 특별한 것으로 취급하며 소소한 대화를 즐기는, 현대 트렌드에 맞는 모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경우든, 살롱의 지향점은 비교적 초기부터 명확하게 의식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살롱의 근원지는 이탈리아였다. 살롱은 이탈리아어의 salone를 바로 받은 것으로, salone의 뿌리는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용어인 sala, 즉 이탈리아 저택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장소인 큰 홀을 말한다.

따라서 초기 프랑스 살롱의 주인들은 이탈리아 식의 예절을 살롱의 기본 규칙으로 도입했고, 그것이 그대로 후대에까지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의 살롱은 길게 잡아 프랑스 혁명 시기까지도 이어졌다고 보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프랑스의 살롱 문화가 프랑스 혁명 이전에 끝난 것으로 본다. 반면 이탈리아를 비롯한 여러 유럽 국가에서는 19세기까지도 살롱이 유행했다. 대부분의 살롱 연구가들은 16세기 초부터 18세기 말까지의 연구를 진행했다.

이탈리아 식의 살롱이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이전 프랑스에서는 저택의 안주인이 침실에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놓고 대화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살롱의 가장 대표격인 프랑스 살롱의 시초는 이처럼, 친분이 두터운 사람들 사이의 모임이었던 것이다.

현대 살롱을 위한 노트 2. 개최자의 개성이 모임의 성격 자체를 결정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식과 말솜씨, 인간관계 및 중재의 요령과 위트 등이 특출난 여성이 주로 프랑스의 살롱을 이끌었다면, 현대의 살롱은 어떤 개최자를 필요로 하는지 모호하다. 개최자의 캐릭터는 가히 살롱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그 목적이 친목이 아니라 하더라도, 결국 중심인물을 보고 모이고, 또 남기도 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살롱의 컨셉에 따라서는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사회자가 맞을 수도 있다. 개최자(들)의 캐릭터란 곧 모임의 성격이 될 것이다.

그러다 사회 각 계층의 남성들을 초대하거나 음악 연주 등의 이벤트를 여는 데에 적합한 이탈리아 식의 살롱 문화를 도입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 살롱을 위한 노트 3. 살롱과 같은 모임을 기획하려면 예나 지금이나 장소가 결정적인 중요성을 가지리라고 생각한다. 참가자가 언제든 찾을 수 있어야 활성화가 용이할 것이다.

그러나 친구들 간의 모임이라는 측면이 상당부분 남아 있었을 것이며, 모이는 인원이 살롱 개최자의 '친구들'로 불리는 현상은 오래 지속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부분은 기록에 전적으로 반영되지는 않게 마련이라, 추정을 할 수밖에 없다.

현대의 살롱을 위한 노트 4. 시간이 흐르면서 살롱이 친목 기반의 모임과 얼마나 구분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만나서 하는 일은 보다 생산적일 수 있지만, 결국 서로 편하고 익숙한 사람들이 남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마 근대 프랑스의 살롱도 그런 식으로, 각자의 친분과 선호에 따라 나뉘게 되었을 것이다.

프랑스의 살롱에서는 예의(politesse) 정중함(civilité), 정직성 (honnêteté)을 명시적인 예절 코드로 꼽았는데, 실제로 어느 정도의 실질적인 의미를 가졌는지에 대해서는 연구자의 의견이 분분하다.

앞서 살롱이 18세기 계몽주의의 중요한 거점으로 일컬어진다는 이야길 했다. 왕족과 귀족에 들지 못하는 부르조아지나 일반 시민도 참석할 수 있고 거기에서 의견 교환을 자유로이 할 수 있었다는 전제에서다. 그러나 16~18세기에 이르는 기간 동안 그러한 현상이 얼마나 두드러졌을지는 의문이다.

살롱의 코드, 행동규범이라는 예의, 정중함, 정직성 역시 실제로 지켜졌느냐의 여부보다는, 귀족층의 코드를 객관화한 표현에 지나지 않은 것일 수 있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말하는 습관, 발음부터가 차이가 나는 계층들이 그 코드에 잘 따르면서 활발한 의견 개진을 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특히, 편의상 정직성으로 표현되는 honnêteté는 보다 복잡한 개념이다.마땅히 가져야 할, 혹은 본분에 맞는 성격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가령 여성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지켜야 할 정절, 남성이라면 갖춰야할 할 용맹 등의 덕목 등을 내포하는 표현인 것이다. 젠더뿐 아니라, 각 계급을 더욱 구분짓는 덕목의 의미를 내포하였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살롱을 위한 노트 5. 근대의 기준이 현대의 것으로 미루어보아 평등주의적이었을 수는 없다. 일시적인, 그리고 살롱이라는 공통된 에티켓의 장 내에서만 가능한, 표면적인 평등이 아니었을까. 사실 현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많은 모임이 누구에게나 열려있음을 광고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현대의 살롱도 누구에게나 열려 있을 수는 없다. 어떤 공통점들이 있는 회원들을 모집하고 싶은지, 상당히 명료하게 정해야만 할 것이다.

위와 같은 부분들 때문에, 일부 연구자들은 살롱을 다양한 계층이 참여하는 토론의 장이 아니라 궁중의 연장선에서 평가 하기도 한다. 궁에서 예술가들을 초빙하여 작품 낭독이나 연주를 듣기도 했던 것처럼, 살롱은 그런 후견인과 후원인 사이의 모임이자, 궁전에서의 유희와 에티켓이 확장된 문화였다는 것이다.

현대 살롱을 위한 노트 6. 만일 현대 살롱에서 주기적으로 예술가나 강사를 초빙한다면, 어떤 관계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 행사일 것인가. 비용도 많이 들 것이고 각종 문화센터들이 이미 잘 하고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살롱 일원들만으로도 교육과 강의, 체험과 작품 발표가 가능하다면 이상적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런 이들을 끌어들이고 남게끔 동기부여를 하는 것이 관건일 것이다.

프랑스의 살롱이 궁중 문화에 연장일 뿐이었다는 견해와 가장 대비되는 것이 그 유명한 위르겐 하버마스의 살롱 연구이다. 그 이론에 따르면 살롱은 궁중 사회에 대한 대안의 공론장(The public sphere)을 형성했다.

그러나 앞서 거론한 반대의견에 따르면 가장 대표적인 살롱들은 궁중 사회의 일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살롱에는 궁중 사회와 공론장의 양면이 다 존재했다는 견해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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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벤자민 프랭클린, 살롱 문화에 돌풍을 몰고 왔다고 알려졌지만 정작 위 그림은 궁중에 초빙되었을 때의 모습. 과연 둘 사이에 큰 차이가 있었을지.

하버마스가 생각한 공론장의 개념이 성립하려면, 살롱에서는 상당히 적극적인 정치사회적 토론이 일어나야 했을 것으로 보인다. 마르셀 프루스트에 따르면, 정치란 살롱에서 정중하게 기피하는 주제였다. 물론 전혀 다른 증언도 많이 존재한다. 말의 기록은 매우 드물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들에 대해서는 결국 추정만이 가능하다.

현대 살롱을 위한 노트 7. 말로 오간 살롱의 대화에 대해서는 확언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다. 현대의 살롱은 대화의 기록과 공개를 할 것인가. 하는 쪽을 선택한다면, 더 많은 회원을 유인하는데 유용할 수 있다. 물론 살롱에서 이루어진 대화를 비공개로 두는 편이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커피하우스

프랑스에 살롱이 있었다면, 영국에는 커피하우스가 있었다. 물론 영국에서도 뒤늦게 여성이 이끄는 살롱이 활성화 되었으나, 커피하우스는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가에서 출발한 독특한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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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커피하우스

페니 하나를 내면 입장도 하고 커피도 마실 수 있어서 페니 유니버시티라고도 불렸던 옥스포드의 커피하우스는 정보와 지식의 교류, 상거래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소식지, 신문을 발간하기도 했다.

현대 살롱을 위한 노트 8. 영국의 커피하우스에서 운영비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입장료란 일종의 1일 회비로 볼 수 있다. 현대에는 음료 자체를 파는 장소가 살롱으로 기능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각자 조용히 할 일 하는 도서관 카페로 평소에 운영하고, 모임이 있을 때는 별도의 방을 사용하는 것 정도는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공간일수록 규모가 커야 할 것이다. 반면에 아예 일반 영업을 하지 않고 살롱 회원의 개념을 '정기 회비를 내는 후원자'로 정할 수도 있을 텐데, 이렇게 되면 일종의 클럽 개념이 된다.

커피하우스의 커피란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술을 마시지 않고도 활발한 대화를 개진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교류의 필수 매개체였다. 왕정복고 이전에 꽃피우고 이후까지도 성행한 커피하우스는 청교도 시대의 정서에 맞는 금주 문화에 제격이기도 했다. 카페인으로 또렷해진 정신으로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 그 자체로 장점이었다. 왕정복고 이후로도, 술을 마시지 않기에 험한 말다툼이 일어나지 않고 정치적 대립이 심하게 드러나지 않는 등, 커피하우스의 이미지는 긍정적인 것으로 유지되었다.

현대 살롱을 위한 노트 9. 현재 한국은 커피문화가 상당히 강하다. 근대 영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술 대신에 대화의 매개로서는 제격일 수 있다. 단지 체질 때문에 거의 못 마시는 경우도 적지 않기에 대안은 필요하고, 그 이상으로 기타 메뉴들로 유지비를 벌 방법도 많이 있을 것이다. 문제는 회원 위주로 운영할지의 여부인데, 정말 어려운 부분이다. 회원만으로 운영하면 재료 회전과 운영비 충당이 어렵고, 일반인에게도 영업하면 장소의 정체성이 반드시 흔들리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회원 영입을 위해 비회원들의 1일 사용은 권장되어야 할 것이고, 책이나 굿즈 판매도 그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영국의 커피하우스는 프랑스의 살롱에 비해 더 쉽게 여러 사회계층이 교류할 수 있는 곳이었다고 여겨진다. 페니 하나만 있으면 입장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커피하우스에서도 블루스타킹이라 불린 여성 지식인들의 역할이 두드러지기는 했으나, 일반 여성들의 출입은 금기시되었다. 신경 써야 하는 일반 여성이 없으니 더욱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했다는 점이 회원들의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따라서 일반 기혼여성들의 경우, 남자들을 밖으로 돌게 한다는 이유로 커피를 해로운 음료로 배척하는 사례도 있었다.

커피하우스의 몰락은 보통 회원들이 너무 언론 주도권을 쥐려 했다는 이유로 설명된다. 그 외에는 영국이 커피보다는 차를 대거 수입하게 되면서 차 문화로 변모해갔다는 점이 있다.

모임의 문화는 차차 커피하우스 대신 각종 클럽으로 나뉘어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클럽은 식사와 공연관람이 가능한 장소이자 카드놀이 등 회원끼리의 교류와 친목의 장소였는데, 같은 사회 계층의 일원들끼리 모인 곳이었다. 영국에 이어 미국에서도 지역사회의 컨츄리클럽을 위시하여, 개인의 소속 클럽으로 자신의 자본 규모나 사회 계층을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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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의 유럽 살롱. 여전히 예술을 향유하지만 특정 계층의 산물로 자리잡아, 일종의 클럽 문화로 이어지는 모습

현대 살롱을 위한 노트 10. 시간이 지날수록, 다양한 사람들이 계속 공통점을 느끼며 모이기란 어렵다. 교회 같은 종교 기관에서도 내쳐야 하는 사람은 있게 마련이다. 회원이 자주 교체되더라도 정체성을 지킬 수 있을지 계산이 필요하다. 일단 살롱의 컨셉을 정하면, 그저 흔들리지 않고 운영하는 것만이 답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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