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 미국 남가주는 일요일 저녁 7:30 pm...
이곳 날씨도 제법 쌀쌀해 졌다. 미국에 70년도말에
이민 왔을때는 이곳은 사계절의 변화가 별로 없었다.
요새는 지구 온실화의 영향때문인지 사계절의 변화를
뚜렷하게 느낄수가 있다... 추운것을 싫어해서 나는 여름이 좋다.
다시 70년대말 80년대초 때로 돌아가서
그때의 노래들과 나의 이민 초기 생활에 대해 적어 볼까 한다.
젊으신 kr 분들에게는 죄송하게 꼰대처럼 옛날 얘기, 옛날 노래만 ㅎㅎ.
나이가 먹어서 그럴까? 자꾸 처음 이민 왔을때가 생각이 난다.
음악에 대한 연재를 쓰면서 이민왔을 당시의 노래를 올리면서 듣다보니 더욱더 그러한거 같다. 처음 이민 올때 우리 아버지 연세가 지금 현재 나의 나이보다가 어렸을때니 참 오래도 되었다 ㅎㅎ. 그떄 당시 우리 식구는 San Fernando Valley 의 Chatsworth 란 조그마한 동네에 정착했었다. 지금은 한국분들 많이 계시지만 그 당시에는 완전 백인 동네 였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에도 (Junior High School) 한국어 하는 한국 아이들이 나, 우리형, 어머니 친구 아들 한명, 요렇게 3명 에다 한국말 전혀 못하는 한국애들 3명인가 있었던 걸로 안다. 아! 지금 생각나는 한국녀석이 하나 있었는데 이 녀석은 한국말을 잘 했지만 한국어를 모르는척 하며 나를 상대 안해줬던 기억이 난다. 내가 친구가 없어 좀 낄려면 하면 피했던 녀석 ㅋㅋㅋ. 엄청 밥맛 이어서 패 줄려다 그래도 같은 한국사람이라서 그냥 나뒀던 기억이 있다.
하여간 학교에 너무 백인들만 있어서 Busing 이라는 학교에서 했는데 그게 뭐냐면 매일 아침 우리 학교 학생 1/3 정도를 흑인 동네 학교에다 학교 버스로 데려다 주고 흑인 동네 학교 학생 1/3 을 우리학교로 데리고 오는 인종 섞기. 나는 다행이도(?) 영어를 못했기 때문에 그쪽으로 보내질 않았다.
그 당시 나의 학교생활은 매일 흑인 아이들과 멕시코 아이들과 싸우는게 내 일이었다. 우리형은 어머니 친구 아들하고 학년이 똑 같아 심심하고 외롭지 않게 지냈지만 나는 학년이 달라서 같이 볼 기회가 없었다. 점심시간이 학년에 따라 달랐기 때문이다. 또 어머니 친구 아들하고는 악연이 있어서 불편하기도 했고...이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하여간 처음에 친구가 없어서 학교 생활이 너무나도 외로웠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제법 친구들도 많고 활발하고 유머러스도 했던 나였는데 너무나 힘들었다. 특히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쓸쓸하고 처량하게 보이는게 너무 싫었고 친구도 없다는게 싫었다. 특히 중간에 15분 정도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이 너무나도 싫었다. 점심시간에는 1시간동안 혼자 있을라니 죽을맛이었다. 교실 이라도 열어 났으면 들어가 있으면 될텐데 ㅋㅋㅋ. 그냥 애들 다 있는곳에서 혼자 우두커니 있을라니 쪽이 너무 팔렸다. 80년대에 중반에 이민온 아이들은 그래도 한국아이들이 많이 생긴다음에 와서 편하거였다. 나는 말이 통하는 친구가 없어서 고생좀 많이 했다 ㅎㅎㅎ.
계속 이어 글을 쓰기 전에 그 당시 어머니가 차에서 매일 들어서 나도 지긋 지긋하게 들은 노래 한곡.
그 당시 미국에서 굉장히 히트치고 있던 Billy Joel 의 "Just the Way You Are".
가사가 그 당시 뭔지도 몰랐고 가사를 아는 지금도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멋진 가사라고는 생각지는 않지만 이 노래를 참 많이 듣고 또한 좋아했었다. 1977년에 발표한 "The Stranger" 이란 앨범에 수록된 곡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또 같은 앨범에 있던 " She's Always a Woman" 이란 곡도 좋아했다. 그 외에도 주옥 같은 노래들이 이 앨범에 많았던걸로 기억한다.
피아노맨 이란 별명을 갖고 있던 빌리 조엘은 1960년대부터 음악 활동을 했지만 별로 빛을 못보며 무명생활을 꽤 오래했다. 1973년에 유명한 "Piano Man"을 발표했지만 그 당시에는 큰주목을 받지 못했다. 아마 제목만 들어서는 이곡을 모르시는분들이 꽤 되실거다. 노래를 들으면 바로 아! 하고 바로 아실것 같다.
1977년도에 발표한 "The Stranger" 앨범의 대 히트 (천만장을 팔아 치웠다고 한다) 에 이어 연속으로 1978년도에 발표한 "52nd Street" 앨범이 또 대 히트를 친다. 이 앨범으로 두개의 Grammy 상을 받고 빌보드차트에서도 1등을 하기도 했다. 이 앨범에서 대 히트한 곡은 세곡: "My Life", "Big Shot", 그리고 "Honesty". 그 중에서 두곡 올려본다.
"My Life"
"Honesty"
이 두곡 진짜 많이 들었다. 학교 생활이 힘들고 쓸쓸할때 카셋트 플레이어와 테잎을 가방에 가지고 다니면서 할거 없던 점심시간에 아무도 없는곳에 가서 들었던 기억이 난다. ㅎㅎ. 요새 새대들은 카셋트가 뭔지 알까?
그 당시 미국에서는 음악의 혼돈의 (?) 시기라고 말할수 있었다. 소히 말하는 팝송위주와 록장르의 음악에서 새로운 disco 장르의 음악이 새로운 전자 사운드와 함께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마찬가지로 어렸던 나에게는 혼돈의 시기 이었다...이 혼돈의 외롭고 쓸쓸했던 나에게 바깥세상(?)으로 나가게 된 두 가지의 사건이 곧 생기게 된다.
바로 폭력사건(?)
첫번째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앞에 얘기 했듯이 흑인 지역에서 busing 해서 오는 흑인 양아치가 있었는데 매일 내 머리를 엄청 쎄개 때리고 도망 갔다. 너무 롱다리에다 빨라서 잡을수가 없었다. 그리고 숨어있다 튀어나와서 막을수도 없었다. 너무 약 올랐고 주위에 있던 애들도 낄낄 거리거 웃고... 매일 이런일이 벌어져서 그 자식을 죽이고 싶을 정도 이었다. 선생들이 뭐라 해도 뭐 이런놈이 말을 듣겠나?
그냥 일을 저지르기로 마음 먹고...
한 수업이 그 자식이랑 같이 있었다.
그 당시 교실에서 쓰던 책상들... 선생님이 한창 수업 진행 하고 있을때 저런 의자에 롱다리를 끼고 앉아 있었던놈을 그냥 내가 일어나 뚜벅 뚜벅 천천히 걸어가서 그냥 패기 시작했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일이라 아직도 선생님의 표정과 다른애들의 표정, 그리고 나 한테 맞고 있던 그 자식의 표정이 생각난다 ㅎㅎㅎ. 많이 때리지 않고 그 자식 머리까락을 위에서 잡고 뺨을 4~5대 손 바닥으로 세게 깠다. 엄청 겁에 질리면서 저 의자에 앉은 채로 그 녀석이 넘어졌고 넘어진 녀석을 다시 머리를 잡고 계속 빰을 때렸다...
훗 얘기는 다음에 이어서 올리겠습니다. 그 당시에 아마
한국에서도 디스코 바람이 불어서 디스코 뽕짝 노래들이 나온것 같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