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 참여] '자기 앞의 생' by 에밀 아자르 - 사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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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글 쓰고 책 읽는 Bree입니다. 이번 2회 백일장에 참여는 하고 싶은데, 주제에 맞는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서 한참 고민을 했습니다. 사랑을 주제로 짧은 소설을 쓰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길어져서 못 올릴 것 같고요. (그 소설은 나중에 연재로 올릴까 생각중입니다. ^^) 이러다 참가 못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던 중 전에 읽었던 책 '자기 앞의 생'이 떠올랐습니다. 주제에 해당하는 첫사랑, 끝사랑은 아니지만 이 책도 '사랑'에 관한 것이니, 이 책의 독후감으로 백일장에 참여하는 걸 용인해주셨으면 합니다. ^^;;


한국어판 제목: 자기 앞의 생
출판사: 문학동네
프랑스어 원서 제목: La vie devant soi
영어판 제목: The Life Before Us
저자: 에밀 아자르 (Emile Ajar)

특이사항: 콩쿠르 상 수상작. 로맹 가리(Romain Gary)가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출판한 작품이다. 그는 이 작품으로 평생 한 작가에게 한 번만 수여되는 콩쿠르 상을 두 번 수상한다. 로맹 가리의 작품으로 한번, 에밀 아자르의 작품으로 또 한 번. 상을 수여해도 에밀 아자르라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서 모두가 비밀에 싸인 작가로만 생각했다. 로맹 가리는 훗날 자살을 하는데, 유언장에서 자신이 에밀 아자르였음을 밝혔다.


사진 출처: 교보문고

책의 내용은 슬프다. 그런데 재미있다. 웃기기도 하고, 눈물도 난다. 가슴이 아프고 한숨이 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다 읽고 나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삶과 죽음과 사랑에 대해 생각하느라.

주인공 모모는 열 살 먹은 아랍계 소년인데, 68세의 늙고 뚱뚱한 유태인 로자 아줌마와 함께 엘리베이터도 없는 건물의 7층에 살고 있다. 젊어서 그녀 자신이 창녀였던 로자 아줌마는 다른 창녀들의 아이들을 맡아 키워주고 있었다. 모모도 그렇게 맡겨진 창녀의 아이였다. 모모는 자신의 엄마와 아빠가 누군지 알지 못한다. 한 번도 자신을 찾으러 온 적이 없었고, 누군가 양육비 명목으로 보내오던 돈도 이젠 끊겨버렸다. 모모를 사랑했던 로자 아줌마는 송금이 끊겼어도 모모를 다른 시설에 맡기지 않고 계속 돌봐왔다. 하지만 이제 너무 뚱뚱하고 병이 들어버린 그녀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계단조차 오르내리기 힘들었다. 그녀의 상태가 나빠지고 있다는 걸 안 젊은 창녀들은 자신들의 아이를 찾아가기 시작했고, 아이를 맡아 기르는 대가로 돈을 받아오던 로자 아줌마는 이제 생계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허나 모모에겐 이것이 단순히 돈을 벌고, 못 벌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이 엄마처럼, 아빠처럼 믿고 의지하고 있던 로자 아줌마의 건강이 점점 나빠져가고 있었던 게 문제였다. 사랑하는 로자 아줌마를 잃는다는 건 그저 자신의 보호자가 없어지는 게 아니라, 온 세상이 다 없어지는 거였으니까.

비록 열살에 불과했지만, 모모는 속이 깊은 아이였다. 창녀의 아이로 태어나 엄마 아빠 얼굴도 모른 채, 늙은 창녀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라는 아이라면 '어리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에도 자장가는 있겠지만,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 자장가를 들을 만큼 어렸던 적이 내겐 없었고, 언제나 머릿속에 다른 걱정들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p. 235)

"자장가를 들을 만큼 어렸던 적이 없었던" 모모는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사랑하는 로자 아줌마의 병을 낫게 할 수 없으며, 어느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로자 아줌마의 사랑을 먹고 자랐던 모모는 로자 아줌마가 죽게 되면, 자신을 사랑해주던 거의 유일한 사람이 없어지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걱정을 한다.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이 책에서 가장 가슴에 와 박히는 문장 중 하나는 여러 번 반복해서 나오는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하밀 할아버지의 말씀일 것이다. 양탄자 장사를 하며 많은 곳을 다녀서 견문도 넓고, 아는 것도 많은 현명한 하밀 할아버지는 삶과 사랑을 비롯한 많은 것을 모모에게 가르쳐주셨다. 비록 나중에는 노망이 들어서 모모의 이름조차 기억을 못하게 되지만 말이다. 그런데 웃긴 건, 하밀 할아버지는 책에서 한 번도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는 말을 직접 한 적이 없다는 거다. 저 문장은 모모의 입을 통해 간접화법으로만 나온다.

모모는 책에서 “제가 어릴 때 할아버지가 그러셨잖아요. 사람은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다고.”라고 한다거나,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이 들기 전에 한 말이 맞는 것 같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라고 서술하고 있지만, 책 속에서 할아버지가 직접 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심지어는 노망이 들기 전에 정신이 멀쩡했을 때도 모모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냐고 묻자 그렇다고 대답하는 부분이 나온다. 할아버지는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다고 대답한 것이다.

“하밀 할아버지,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나요?”
할아버지는 그 말에 대답하는 대신 몸에 좋다는 박하차만 한 모금 마실 뿐이었다.

“하밀 할아버지, 왜 대답을 안 해주세요?”
“넌 아직 어려. 어릴 때는 차라리 모르고 지내는 게 더 나은 일들이 많이 있는 법이란다.”
“할어버지, 사람이 사랑 없이 살 수 있어요?”
“그렇단다.”
할아버지는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
갑자기 울음이 터져 나왔다. (p. 12)

많은 걸 알고 있는 현명한 하밀 할아버지조차 사람은 사랑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다음이다. 할아버지는 그 말을 하고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모모는 그 말을 듣고 냉소하거나 비관하는 게 아니라, 울음을 터뜨렸다. 아마도 모모는 그 대답을 믿지 않은 것 같다. 왜냐하면 이후에 노망이 들어 정신이 점점 혼미해져 가고, 모모의 이름조차 까먹은 할아버지에게 계속해서 "사람은 사랑 없이 살 수 있나요?"하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모모는 답을 이미 알면서 할아버지께 확인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랑 없이는,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의 1인칭 시점에서 서술되고 있는 이 책은 얼핏 중구난방인 것 같지만 짜임새가 있고, 무엇보다도 굉장히 재미있다. 마치 모모가 눈앞에서 차를 한잔 하며 얘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고나 할까. 307쪽 짜리지만 편집이 시원해서 금방 읽히고, 빨리 읽을 수는 있지만 책을 덮은 후에도 생각을 오래 하게 만드는 책이다.

산다는 건 무엇인지, 사랑은 무엇인지, 우리는 사랑 없이 살 수 있는지, 인간답게 살다가 인간답게 죽는다는 건 과연 무엇인지. 꽤 긴 여운을 남기는 책이다.


덧붙이는 글



어릴 적 좋아하던 노래가 있다. 김만준의 <모모>. (지금 찾아보니 무려 1978년 노래다. 난 왜 이 옛날 노래를 잘 아는 것인가. -_-;;)

어렸던 나는 당연히 노래의 주인공이 미하엘 엔데의 <모모>인 줄 알았다. 가사에 나오는 ‘니스’는, 비록 발음은 조금 다르지만, 몸이 작아진 뒤 기러기를 타고 날아다니며 모험을 즐겼던 <닐스의 이상한 여행>에 나오는 ‘닐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야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에 대한 구절을 읽고 나서야) 이 책이 <자기 앞의 생>에 대한 노래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됐다.

여기에 책의 그 부분과 노래를 소개한다. 연식이 좀 있으신 분들은 아닌 척하지 마시고, 가사 보면서 같이 따라 불러 보시길. ^^ 아래 동영상도 첨부한다.

공부를 끝내고 나서, 하밀 할아버지는 내가 좋아하는 니스 이야기를 해줬다. 할아버지가 거리에서 춤추는 광대며 마차 위에 앉아 있는 즐거운 거인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그곳에 있다는 미모사 숲이며 종려나무들을 좋아했고,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는 것처럼 날개를 파닥인다는 흰 새들에 대한 이야기도 좋아했다. (p 48)

어려서 들었던 김만준의 노래 <모모>가 미하엘 엔데의 ‘모모’가 아니라 <자기 앞의 생>에 나오는 ‘모모’라는 걸 확실히 알게 해 준 대목.


<모모> 김만준.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
모모는 생을 쫓아가는 시곗바늘이다.
모모는 방랑자, 모모는 외로운 그림자.
너무 기뻐서 박수를 치듯이 날갯짓하며
날아가는 니스의 새들을 꿈꾸는

모모는 환상가. 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래는 몇 년 전 KBS <콘서트 7080>에서 김만준 씨가 직접 불렀던 <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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