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써주신 @tata1 님 고맙습니다.
나는 스팀잇 블로그에 여러 종류의 글을 올리고 있다. 영어 강좌, 독후감, 때때로 수필과 소설까지. 지난번 소설을 올렸을 때 @dmy 님께서 내 영어 강좌와 소설의 글이 "굉장히 다르고 색다른 느낌"이라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미처 깨닫지 못했었는데 영어 강좌일 때와 소설일 때 내 글이 조금 다르다.
옷도 TPO(시간, 장소, 상황)에 맞게 바꿔 입는 것처럼, 글의 목적과 종류에 따라 문체나 스타일도 조금씩 바뀌곤 한다. (물론 문체가 전혀 안 바뀌는 분들도 많이 계시다. 이건 순전히 내게만 국한된 얘기다.) 영어 강좌 글과 독후감, 소설을 쓸 때 내 글쓰기는 어떻게 바뀔까?
스팀잇 블로그에 내가 올린 영어 강좌가 "오늘의 English 단어"와 "Bree's 번역 이야기"를 합해서 75개가 됐다. 지난번 드미 님의 말씀도 있었고, 영어 강좌가 이쯤 쌓이게 되니 누가 물어본 건 아니지만 내가 영어 강좌를 어떻게 쓰는지 한 번쯤 글로 남겨보면 어떨까 싶었다.
내가 쓰는 방법이 "영어 강좌 글쓰기의 정석"은 아니다. 각자 자신에게 맞는 글쓰기 방법을 택하고 이용할 테니까. 그저 이 사람은 이렇게 글을 쓰는구나, 정도로만 참고하시라. 혹여 어떤 분야건 "강좌 글쓰기"를 시작하시려는 분께 이런 방식도 있다는 걸 알려드리는 정도로 읽히면 좋을 것 같다.
Today I'd like to tell you how I write English lessons on Steemit. There is no golden rule you have to follow. As an experienced English educator, however, I thought I might help people with teaching posts. Here are certain steps I take when I write English lessons, including deciding theme of the post, finding subject of lessons, brainstorming, writing and proofreading, etc.
1. 주제 정하기
강좌는 대개 시리즈로 연재된다. 단 하나의 글로 모든 걸 다 만족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리즈를 구상할 때는 전체를 통과하는 커다란 주제를 정하고 시작하는 게 좋다. 그래야 글이 중구난방이 되지 않는다.
미리 주제를 정하고 시작하더라도 시리즈가 연재되다 보면 더 넣고 싶은 것, 빼고 싶은 것이 생기기 마련이고,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 곁길로 새기도 한다. 책이나 잡지, 신문에 정기적으로 연재되는 경우라면 시리즈의 처음과 끝까지 얼개를 잡아놓고 시작하는 게 좋지만, 스팀잇을 비롯한 블로그에 연재하는 거라면 너무 엄격하게 정하지 않아도 좋다. 독자와의 댓글에서 새로운 글이 탄생하기도 하고, 독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주제가 선회하기도 하니까.
나는 현재 재미있고 독특한 단어를 알려주는 "오늘의 English 단어", 우리말을 영어로 번역해보는 "Bree's 번역 이야기" 두 개의 시리즈를 진행하고 있다. 영어 공부방법이나 영어 회화, 영어 소설 읽기 등의 시리즈도 기획하고 있다. 시기는 미정이다.
2. 소재 정하기
주제가 강좌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테마라면, 소재는 하나의 글을 쓰는 재료다. 재미있는 단어를 알려주는 "오늘의 English 단어" 시리즈를 예로 들자면, 최근의 out of the blue, red tape, salt-and-pepper 등이 바로 그 소재가 되는 것이다.
강의를 많이 해보지 않은 분들은 소재 찾기에서부터 어려움을 겪기도 하는데,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이 많고 공부를 깊게 할수록 소재는 곳곳에서 튀어나오게 된다. 소재 찾는 게 어렵다면 해당 분야에 대해 좀 더 공부를 해보시라 말씀드리고 싶다.
3. brainstorming 하기
소재가 정해지면 그다음에는 브레인스토밍을 한다. 하나의 소재를 가지고도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느냐에 따라 열 가지의 다른 글이 나올 수 있다. 이 단계에서는 내 머리와 상상력을 열어두고, 소재를 어떤 방향으로 가지고 갈지 아이디어들을 여럿 떠올려 본다. 실제로 글을 쓸 수 있느냐 아니냐는 따지지 말고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두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보다 더 신선한 아이디어가 나온다.
예를 들어 최근의 salt-and-pepper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빛과 소금 - 소금과 후추
소금- 짠맛, 후추 - 매운맛.
짠맛을 보여주랴, 매운맛을 보여주랴.
테이블 위의 소금병 후추병 한쌍 - 결혼. 커플.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 - 소금이 후추를 만났을 때
주례사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될 때까지 - salt-and-pepper가 될 때까지
이 중에서 최종적으로 '결혼, 주례사'쪽으로 방향을 정해서 글을 써 나갔지만, 만일 "짠맛을 보여주랴, 매운맛을 보여주랴" 쪽으로 글을 썼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졌을 것이다.
4. 머리 속으로 구상하기
브레인스토밍이 끝나면 그걸 가지고 어떻게 글을 쓸지 구상을 한다. 대략적으로 처음 시작과 전개, 단어 소개까지 이어지는 부분을 머리 속으로 써본다. 이 시점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라 첨가하기도 하고, 글이 잘 써지지 않으면 그 아이디어를 버리고 3번 중에서 다른 아이디어를 채택하기도 한다.
컴퓨터 앞에 바로 앉아 글을 쓰지 않고 머리 속으로 구상을 하는 이유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다들 그렇겠지만 워낙 바쁘다 보니 컴퓨터 앞에 진득하니 앉아서 글을 쓸 시간이 무한정 있지는 않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하는 도중에 틈틈이 머리 속으로 글의 도입부와 단어 소개로 이어지는 부분까지 생각해본다.
생각하고, 다듬고, 고치고. 또 생각하고, 다듬고, 고치고.
컴퓨터 앞에 앉기 전까지 이 과정을 반복한다.
5. 글쓰기
이제 본격적으로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쓴다. 4번에서 머리 속으로 구상했던 것을 글로 옮겨 적는다. 4번이 잘 돼있는 날은 그저 머리 속에 있는 걸 타이핑해서 옮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설계도대로 따라 쓰다가 뜻밖의 복병을 만나서 설계를 다 엎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글이 생각처럼 잘 나오지 않을 때는 다시 3번으로 돌아간다. (이런 날이 가끔 있다. ㅠ.ㅠ)
그럼 어느 때 설계도를 다 엎어버리느냐? 글쓰기를 할 때는 아래 1, 2, 3, 4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1, 2번이 마음에 안 들 때는 엎어버리게 된다.
5-1. 정확성
강좌이니만큼 틀린 내용이 있으면 안 된다.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맞는지, 혹시 바뀐 건 없는지, 더 자세히 부연 설명할 것은 없는지 자료 조사를 해야 한다.
이때 글이나 책으로 알려주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다면 아예 내용을 접기도 한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확실치 않은 내용을 알려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글에는 책임을 져야 하니까.
5-2. 유용성
아무리 재미있는 표현이더라도 잘 쓰이지 않는 어려운 단어라면 그것도 접어버린다. 이 단계에 걸려서 빛을 보지 못한 단어가 몇 개 있다. 영어 상급자에게는 유용하지만 초급자에게는 어려울 수 있는 단어들이 주로 여기에 걸린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강의를 할 때는 타겟 독자층을 초보/왕초보 수준으로 놓고 하게 된다. 어느 분야건 상급자보다 초급자의 수가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유용성에 중점을 두기 위해 단어를 활용해서 쓸 수 있는 "대화"에도 심혈을 기울인다. 가급적 많이 사용할 수 있는 상황, 그러면서도 조금이라도 재미있는 상황을 대화 속에 넣으려고 애쓰고 있다. "대화"도 영어 강좌 글쓰기 중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부분이다.
5-3. 재미
글은 재미있어야 한다. 특히, 뭔가를 배우는 글이라면 더더욱 재미있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된 건 지루한 글을 내가 못 참기 때문이다. 나는 글이 딱딱하고 어려우면 읽어도 눈에 안 들어오고, 하나도 이해가 안 간다. 학창 시절 "XX영어" 같은 문법 책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이걸 재미있게 가르치는 게 그렇게 어렵나? (어렵긴 하다... -_-;;)
그래서 나는 가급적 재미있게 쓰려고 노력한다. 쓰는 나도 즐겁고, 읽는 사람도 재미있고. 웃으면서 읽다 보면 기억도 더 잘나고, 머리에 조금이라도 남는 게 있지 않을까, 나중에 복습을 하는 것도 더 즐겁지 않을까 싶어서다.
스팀잇 영어 강좌에서도 재미를 더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아지매 개그도 넣고, 거기에 딱 맞는 저작권 없는 사진을 찾아 헤매기도 한다. 어쩔 때는 사진 찾는 게 글 쓰는 것보다 더 힘들다. 그래도 이걸 포기하지 않는 건 "재미"가 있어야 글이 더 잘 읽히고 오래 기억된다는 나름의 신념 때문이다.
5-4. 가독성
나는 글의 흐름이 자연스러운 것을 좋아한다. 앞 문장에서 뒷문장으로, 도입부에서 전개를 거쳐 결말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걸 선호한다. 그래서 글을 쓰다가도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기도 한다. 다 쓴 후에 다시 읽어보는 건 당연하고. 그러면서 문장의 순서를 바꾸기도 하고, 단어나 문장, 때로는 문단을 첨삭하기도 한다.
6. 마무리
글을 다 쓰고, 사진까지 다 찾고 나면 이제 완성이다. 하지만 아직 바로 글을 올릴 순 없다.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서 빠진 부분은 없는지, 고쳐야 하는 곳은 없는지 챙겨본다. 너무 성급하게 넘어간 것 같으면 다시 자세한 설명을 덧붙이고, 불필요한 부분은 빼버린다.
마지막으로 포털 사이트의 "맞춤법 검사기"를 통해 오자와 맞춤법 교정을 한다. 이렇게 해도 나중에 보면 오자가 나오기도 한다. 그럴 때는 황급히 내용을 수정한다.
쉽게 설명했다고 생각했는데, 내용이 어렵다거나 강좌 내용을 잘못 이해하는 댓글이 달리기도 한다. 이런 독자들의 댓글도 소중한 피드백이다. 그 댓글을 바탕으로 내 글을 수정할 수 있고, 다음번에는 더 나은 글을 쓸 수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 오늘도 내 글을 읽어주시고, 보팅과 댓글로 힘을 보태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린다.
7. 스팀잇에 글 올리기
진짜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읽어보며 "역시 잘 썼군." 흐뭇해한다.
스팀잇에 들어가 "글쓰기" 버튼을 누른다.
다음번엔 독후감 글쓰기에 대해 써볼까 한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긁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