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아주 쉽게 내 마음의 한 켠을 상대방에게 내어주곤 했다. 나의 마음은 또 너무 느려서, 내 마음 한 켠에 차지했던 사람이 다른 곳으로 떠나버려도, 다른 누구에게 내어주지도 않은 채 기다렸다. 그럴 때면 나의 마음은 늘 새벽 2시의 라디오 같았고, 음악밖에 안 나오는 라디오에 나는 매일 사연을 보냈다.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 사연을 쓰고, 또 쓰면서 잠들지 못했다.
어쩔 땐, 누구에게 내 마음 한 켠을 내어줄지 저울질하기도 했다. 가끔은 동시에 나를 찾아와 방을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론, 방을 누구에게 줄 것인지를 고민하는 동안 나의 마음은 끊임없이 누가 더 내 마음을 세게 두드리는지, 귀 기울이곤 했다. 누군가 더 세게 내 마음을 두드릴 때, 나의 심장소리는 더욱 쿵쾅거렸다.
많은 사람들이 나의 곁을 지키다가 떠났다. 하지만, 그들이 남겨 놓은 영화, 여행, 놀이동산, 메시지 등이 추억 또는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나의 마음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가 떠난 빈자리만큼 그가 채워 넣고 간 추억의 살림살이들이 많을 때면 나는 그것들을 정리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어떻게 하면 치울 수 있는지, 버릴 수 있는지 물어보기도 하고, 억지로 버리려고 노력도 해보고, 가만히 놔두기도 했다. 그가 떠나버린 내 마음 한 켠은 지워지지 않는 바닥의 얼룩 같기도 했고, 하얀 블라우스에 물들어 버린 오렌지주스 같기도 했다.
그가 남기고 간 물건을 치우는 일은 가끔, 새로운 입주자로 인해 해결되기도 했다. 새로운 내 마음의 입주자는 전에 살던 사람이 쓰던 물건을 식탁보로 가려두기도 하고, 진한 향수를 온 방 안에 뿌리면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새로운 입주자도 내 마음속에서 떠나 버리게 되면, 나는 '그'가 아닌 '그들'이 남기고 간 물건들을 멍하니 바라보곤 했다. 누구의 것이었는지 가물가물 해지기도 하고, 같이 봤던 영화 제목은, 잉크가 사라지는 것처럼 지워지기도 한다. 기껏 새로운 입주자가 가려놓았던 식탁보가 바람에 날려 펄럭일 때면, 나는 지나간 사람을 떠올리며 잠시 걸음을 멈춘다. 새로운 사랑을 내가 했다니...라는 생각도 들고, 새로운 사랑도 떠났네...라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바람이 불면 다시, 향기가 나면 다시, 사과를 먹다가도 다시, 그렇게 다시... 연못에 떠있는 연꽃처럼 기억이 떠오른다. 내 마음은 모래 위에 지어진 모래 성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은 물결이 일렁이고, 어느 날은 뜨거운 아스팔트 길이 되기도 한다.
나는 아직도 너무 쉽게 내 마음 한 켠을 내어준다. 그래서 아프고, 울고, 그리고 웃는다. 사랑하고 있을 때 나는 느낀다. 내 마음 한 켠이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기 위해 연한 분홍색 페인트를 바르고 있다는 사실을. 페인트 냄새 안 나게, 햇살 잘 드는 창문을 활짝 열어 두었음을. 그가 이 방에 낙서를 할지, 그림을 그릴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마음 한 켠을 내어주고, 오후 4시의 음악을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