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질적인 감수성들의 공존





예상치 못한 화두가 꺼내지고 이상한 대답이 오간다.




진심이랄지, 진정성이랄지 하는 따위의 것들은 애초부터 거론된 적도 염두해 둔 적도 없다.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지만, 자기 자신은 어디까지가 거짓인지 아닌지 경계도 없이 모든 것이 진실되다고 믿는다. 그렇게 내가 어떤 가면을 썼는지 인지조차 못한 상태로 연기가 시작된다. 서로 다른 환경속에서 삶의 결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마치 비슷한 라이프스타일을 사는 사람처럼 '한 때'를 같이한다. 이래서 이 현실은 지극히 비현실적이지만, 그렇다고 그다지 이상적일 것도 처절하게 어두울 것도 없는 그저 별것없는 현실인 것이다.

초면과 구면의 전혀 다른 가치관들이 뒤섞여 조화를 이루거나 조합되지는 못한채로 그저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는 공존이 이루어진다. 겉으로는 누가 뭐래도 공존이지만, 사실은 조금도 섞이지 않은 채 물과 기름처럼 각자 존재할 뿐이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 처럼 혹은 이게 맞는 것 처럼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아간다. 나는 이 당당함과 뻔뻔함들이 철저하게 나와는 다른 시대와 감수성임을 매순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욱 더 이 이질감을 지키려고 속으로 애써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매일 마시던 아메리카노는 일정선의 피로가 넘어가면서 더 이상 목에 넘기기 힘든 쓰디 쓴 존재가 되었다. 이럴 때 사람은 지극히 촌스러운 것들을 찾게 되는데, 세련된 음악도 더 이상 귀에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 찾는 것은 달짝지근한 콜라와 전혀 취향이 아닌 데시벨들이다. 지극히 일상적인 일상을 보내면서 입에 대지 않았던 콜라를 1년도 더 된 시간만에 마시게 되었는데, 매 식사 때 마다 콜라를 마시지 않으면 소화가 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에 밥에다 콜라를 마셨다.




그렇게 이질적인 감수성들과의 공존은 나의 기본적인 감각마저도 변종되게 만들었다.


끝까지 마음 속에 갖은 잡음을 다 만들어내던 일정이 끝나 원래의 내 자리로돌아왔지만, 갖고 있던 균형감과 속도감을 다시 회복하는데는 그 만큼의 시간이 또 필요하다. 오른손잡이인 내가 왼손만 쓰다가 돌아오니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오른손을 쓰기가 여간 어색한 것이 아닌 오늘을 보내고 있다. 이질적인 것은 그들과 나의 거리감만이 아니다. 그들에게 어설프게 뒤섞였던 나와 원래의 나 사이에도 적지 않은 간격이 흐른다.

나라는 사람에 대한 면역력이 약해진 나 자신을 발견하는 일은 사실은 조금 쓰라린 일이다. 따갑고 아프고 눈을 감으면 피로감이 잔뜩 밀려온다. 열을 내고 그 시간을 온전히 보내야 회복하는 몸살감기처럼 일단은 이불을 푹 뒤집어써야만 한다. 간격을 덜어내는 것은 애써서 나의 텐션을 잡는 것 보단 그냥 겨울잠을 택하는 것이 더 빠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나는 마지막을 예고하며 돌아왔다.






H2
H3
H4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8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