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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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썼던 글, 1년 전 오늘과 대구를 맞춰보았다.


역시나 뜬금없이 연락을 받게 되었다. 2박 3일 지방에 갈 건데 같이 가겠느냐고. 1년 전 오늘을 쓰고나서 한참 그 여운에 젖어 있었다. 그래서일까? 1년 만의 연락인데도 전혀 어색하지가 않았다. 스케줄을 대충 확인하고, 바로 그러겠다고 문자를 남겼다.

반가운 마음에 이것저것 재지 않고 따라가기로 했지만, 말하고선 조금 후회했다. 어쨌건 다른 일정을 옮겨야 했고, 무엇보다 타인과 2박 3일을 보내야 한다는 게 무척 부담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특이하게도 기차를 타고 간다. 기차에서 내리는 시간에 맞춰 어떤 분이 우리를 데리러 오신다고 한다. 데리러 오는 그분이 누구인지, 우리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2박 3일의 여행이지만, 늘 가지고 다니던 가방에, 늘 가지고 다니던 물건을 넣고, 세면도구와 옷가지 몇 개만 챙겼다. 그래도 가방이 꽉 찼다. 겨우 남은 공간에 얇은 가디건을 챙길지, 슬리퍼를 챙길지 고민하다가, 발을 물에 담그고 싶어 슬리퍼를 챙겼다. 바다에 가는지, 산에 가는지만 알 수 있어도 훨씬 수월할 텐데.

하지만 바다에 가더라도, 산에 가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다. 우리는 없으면 없는 대로 서로의 것을 내어주면서 여행을 완성해간다. 한 사람을 중심으로 갈 때마다 인원도, 장소도, 하는 것도 다 달라지지만, 그래서 더 부담 없이 함께할 수 있다. 이제 나도 1년의 시간을 내세워 이 기묘한 여행의 일원이 되었다고 생각해본다.


나는 지금 그곳에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이 글을 쓴다. 나만 표를 늦게 끊어 혼자 다른 자리에 앉아 있는데, 그래서 이 여행이 더 좋아졌다. KTX라 1시간도 안 돼 도착하지만, 빵도 사고 커피도 사고, 노트북도 꺼내 이 글을 쓰고 있다. 8시간 정도 걸리는 먼 곳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그분과 함께하는 여행은 돌아가는 시간이 정해져있지 않다. 그분을 따라다닐 때 그 점이 가장 힘들었다. 나는 돌아가 무언가를 해야 하지만, 그분께선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러다 보니 여행은 늘 조금씩, 가끔은 아주 길게 이어졌다.

목요일엔 돌아가서 일을 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 돌아갈지 모르니 알아서 일정을 정하라는 답을 듣고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목요일 아침에 모르는 분의 차를 타고 '거기서' 나와 근처 터미널에서 혼자 버스를 타고 서울에 올라오기로 했다.


여행은 늘 혼자 했지만, 갈수록 사람들과 함께 할 일이 많아진다. 그래서 함께면서 혼자이기를 꾸준히 연습하고 있다. 그리고 그 둘의 조화를 적절히 맞추려 노력 중이다. 그리고 혼자이길 원하는 나지만, 언제나 혼자이길 바라는 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나만의 시간은 기차를 타고 내려가는 지금, 또 내일 이른 아침, 그리고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보내게 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면서, 또 온통 함께이면 어떻냐는 생각도 조금 든다.

시작인 줄 알았는데 시작이 아니었고, 끝인 줄 알았는데 끝이 아니었다. 아주 조금 살아봤지만, 삶이 그런 것도 같다. 오늘은 나에겐 끝이면서, 시작인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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