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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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월에, 좀 더 아름다운 글을 쓸 수는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스타벅스에 와 커피를 마시고, 맛없는 빵을 먹고 있다.


칙 코리아의 Senor Mouse를 들으면서 이른 아침 광안리 주변을 한 바퀴 돌았다. 선생님이 좋아하시던 곡이다. 이제야 귀에 들어온다. 내가 들은 버전은 첫 프레이즈에 칙 코리아의 실수가 담겨있다. 칙 코리아도 실수하는구나. 틀리고선 이를 악물었을까? 개의치 않았을까?


아름다운 날에, 아름다운 사람들과 아름다운 곳에 함께했는데, 왜 마음은 더 서글퍼지고 코끝이 찡해지는 걸까?


도착한 날 그들은 터미널, 내가 내리는 곳까지 찾아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를 타고 숙소에 가서 짐을 풀었다. 그리고 그들과 회를 먹으러 자리를 옮겼다. 한 명 두 명 모르는 이들이 오기 시작하더니 해산할 때는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평소에도 자주 모이는 이들인데, 이미 모두가 내 이름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떠나본 여행이 얼마 만인지... 여백과 공백이 많던 기존의 여행들과는 달리, 생각할 틈도 없이 빽빽한 일정이었다. 그때 만난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을 짧은 하루 동안 모두 따로 만나게 되었다. 심지어 오늘은 이른 아침 올라가려 했는데, 그 열 명 중 한 명에게서 연락을 받았다. 올라가기 전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그들은 만날 때마다 어디를 갔는지, 어딜 가서 무얼 먹었는지, 내일은 어딜 가는지 궁금해했고, 거기는 맛이 없다며 아쉬워도 하다가, 좋은 데 가셨다고도 하다가, 다음 날 갈만한 곳을 알려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길을 말로 설명해주는데 어찌나 열심인지. "지도에 검색하면 잘 나와요."라는 말을 차마 뱉지 못하고 이해도 못 하면서 연신 고개만 크게 끄덕였다.


그들이 나를 데리고 다닌 곳은, 모두 그들의 지인이 운영하는 가게였는데, 죄다 맛있고 개성 있는 곳이었다. '적당히 유명한' 오빠는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피아니스트면서 곡도 쓰고 노래도 하는 싱어송라이터 @ab7b13'라고 소개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머쓱하고 민망한 표정을 지으면서 인사를 건넸다. 그러면서도 앞으로는 '곡 쓰는데 피아노를 즐겨 연주하고, 기분 좋으면 가끔 노래도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해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여러 시간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완전히 망해버린' 오빠와 '적당히 유명한' 오빠. 또 '적당히 유명한' 오빠를 만나러 온 일본 감독과 함께 '적당히 유명한 오빠'의 단골 카페에 앉아 창문 밖을 바라보던 일이다. 대화의 내용은 대수롭지 않았지만, 그 아늑하고 기묘한 분위기가 쉽게 잊히지 않는다. 마감 시간을 넘기고도 길게 이어지던 대화. 카페를 정리하던 사장님까지 모두 하나가 되었던 시간. 어제저녁 그 카페를 나와 '적당히 유명한' 오빠와 마지막 인사를 했을 때, 오빠는 내게 나무와 풀의 기운을 전해주어 고맙다는 말을 했다. 서로의 손을 꽉 맞잡았을 때, 나는 여행이 끝났음을 알게 되었다.


'완전히 망해버린' 오빠는 이틀간 종일 나를 데리고 다녔다. 먹고 싶은 음식, 가고 싶은 곳. 어디든 말만 하면 갈 수 있었다. 오늘은 오빠가 일정이 있어 지하철을 타고 터미널로 간다. 그것을 오래오래 미안해했다. 어제 숙소 앞에서야 오늘은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생각지도 못한 이별이 아쉽고 미안해 말을 뱅뱅 돌렸다. 정말 많은 곳을 함께했다. 기름을 넣어드리고 싶었다.

저녁에 숙소에 돌아와 '적당히 유명한 오빠'와 긴 통화를 했다. 그 통화에서 실은 '완전히 망해버린' 오빠가 많이 힘든 상황인데, 내가 와 무척 즐거워하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 행복했다.


어제 늦은 저녁에는 '망해서 행복한' 오빠 한 명을 만났다. 내가 묵는 숙소가 그 오빠의 집과 가까워서 가볍게 말을 꺼냈는데, 그 오빠는 13시간 넘게 강도 높은 노동을 하고 돌아오던 길이었다. 열두 시에 겨우 만났다. 피곤에 절은 모습을 보니 내가 괜한 말을 꺼낸 것 같아 미안했다.


그들과 즐겁게 놀다가도, 문득 마음이 시릴 때가 있다. 망해서 행복한, 행복하지만, 온통 가난한, 가난한 사람들...

정작 그들의 삶에 대해선 아는 게 없다. 아름다운 시절에 아름다운 모습만 보고 가는 것이다. 그래도 넌지시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큰 웃음소리, 푸른 바다, 담배 연기, 그 안에 숨은 그들의 땀, 가끔은 눈물... 그런 것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온다. 온통 아름다운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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