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art 이벤트 02] 동화의 재해석 : 인어공주를 사랑한 마녀이야기 by 심해가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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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는 사실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빛조차 찾아들지 않는 심연의 동굴 속에서 추악한 스스로를 감추며 살아야했던 마녀에게
왕국의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존재였던 그녀는
동경의 대상이이었다가도, 시기의 대상이었다가도,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미천한 신분, 추악한 자신의 모습, 넘을 수 없는 동성의 벽까지.
심해의 마녀에게 허락될 사랑이란, 얼굴한번 비출 수 없는 지독한 짝사랑일 수 밖에 없었지요.
이따금, 보이지 않는 먼 곳에서 애타는 연정을 삭이며 지켜볼 수 밖에 없는.
하지만 누구보다 깊고 뜨거운 사랑이었습니다.

그런 그녀가 불현듯 자신의 동굴로 찾아왔을 때, 마녀의 심장은 터질것만 같았어요.
간절한 자신의 사랑과 바람을 마침내 신이 들어준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했죠.
그녀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질투였어요.
아니, 절망이고 좌절이었어요.
사실은 예견된 결말이었죠.
마녀의 사랑은 끝이 너무나도 명백했으니까요.

평생을 마법에 몰두해온 마녀에게 지느러미를 다리로 만드는 것 따위가 문제될리 없었습니다.
아무런 부작용도 대가도 없이 가능한 사실 아주 간단한 일이었죠.
단지,
단지 마녀는 그녀가 포기하기를 바랐습니다.

마녀는 그녀에게 평생을 칼 위를 걷는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거짓말이었죠.
그녀는 상관없다고 했어요.
목소리를 잃어버리게 되어서 그와 사랑을 속삭일 수 없게 되리라고 했습니다. 물론, 이것도 거짓협박이었어요.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그래도 상관없다고 했어요.
초연한 그녀의 태도에 화가 난 마녀는 만일 사랑을 이루지 못하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게 될 것이라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두 눈을 반짝이며 말했어요.

그와 이루어지지 못할 세상에서라면, 차라리 사라지는 것이 나아요.

마녀는 자신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형용할 수 없는 질투와 분노가 뒤엉킨 감정에 이성이 마비되어버린 마녀는
사실은 거짓협박에 불과했던 세가지 저주를 정말로 걸어버렸고,
그녀는 마녀가 이제껏 한번도 본적 없던 가장 행복한 표정으로 심연을 떠났습니다.
그 아름다웠던 목소리만을 남겨둔채로.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마녀만을, 홀로 남겨둔채로.

마녀는 마녀인 추악한 자신의 본연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누구보다 당신을 사랑하는 자신의 마음을 배반한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일 뿐이라고,
스스로의 과오를 애써 위안하며
잊어도 잊어도 잊혀지지 않을 그녀를 마음에서 지워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녀의 사랑이 실패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어요.
아뇨, 그건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습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마녀에게는 망설일 시간이 없었어요.
여전히 마녀는, 세상에서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으니까요.

단숨에 그녀를 살릴 마법의 단검을 만든 마녀는
그녀의 언니들 편으로 그녀에게 보냈고
동이 트기전 바위 뒤에 숨어 그녀가 어서 단검을 왕자의 심장으로 찔러넣기만을,
내 곁이 아니어도 좋으니, 나를 멸시하고 증오해도 좋으니
그 아름다운 모습을 여전히 지켜볼 수 있기만을,

마녀는 사라져가는 그녀를 끌어안고 울부짖었습니다.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결코 사랑할 수 없었던 그녀를,
너무도 어리석었던 자신의 질투를,
생의 모든 것이었던, 가장 먼 곳에 가버린 사랑을
슬퍼하며...

마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녀를 밤하늘의 별로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 별빛은 누구도 찾지 않는 심연 속의 동글에 드리웠습니다.
처음부터 혼자였고, 어쩌면 앞으로도 여전히 텅 비어있을 심해에,
홀연히 빛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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