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결과인가, 아니면 과정인가.
학창 시절에 주로 들었던 말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였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듣는 말도 달라진다. 소위 프로는 결과로 말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사회가 사람을 대우하는 방식은 지독할 만큼 후자에 가깝다. 일단 성공만 하면, 과정 따위는 잊혀지거나 아니면 더 심하게는 미화되기까지 하는 것이다. 게다가 어떤 자리에 올라가게 되면 자신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을 뿐더러, 자신이 바꿀 수도 없던 일을, 그 자리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책임질 것을 강요 받기도 한다. 재난이 일어나면 갓 당선된 대통령이라고 해도 일단 사죄부터 하지 않는가? 요컨대 세상은, 결과는 나쁘지만 과정을 보아달라는 말이 먹힐만큼 녹록하지 않다. 우리는 십대 청소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묻는다. 인생은 과정인가 결과인가? 내 답은 다음과 같다. 인생은 타인에게는 결과이지만 자신에게는 과정이다.
세상은 결과로 판단한다. 따라서 운조차도 실력이다.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서라도 성과를 내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인생은 본인에게는 과정이다. 나는 성공한 많은 어른들이 사석에서, 자신의 인생을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고 말하기도 송구하며 실은 운구기일(運九技一)이었노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을 들었다.
시대를 앞서가는 결단이었는가, 아니면 섣부르고 무모한 행동이었는가, 똑같은 인간이 동일한 사고 메커니즘으로 움직였다고 해도 결과에 따라 그 행위에 대한 평가는 절대적으로 달라진다. ‘우유부단해서 기회를 놓쳤다.’와 ‘인내할 줄 알아서 성공했다.’도 마찬가지다.
프레데릭 대왕은 3개의 강대국을 상대로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7년 전쟁에 뛰어들었고, 거듭된 패퇴 끝에 음독자살까지 시도하려 했다. 하지만 때마침 적국 러시아의 옐리자베타 페트로브나 여제가 급사한 후, 그 뒤를 이은 표토르 3세는 프레데릭 대왕을 사생팬 수준으로 흠모하던 인물이었다. 표토르 3세는 자신들이 이기고 있던 전쟁을 중단하고 프레데릭 대왕에게 유리한 강화 조건을 제시했다. 만약 이런 극적인 사건이 없었다면 그는 군신(軍神)이 아니라, 스웨덴의 칼 12세처럼, 군사적 재능은 있었지만 무리한 전쟁을 일으켜 주요 영토를 모두 빼앗긴 얼간이 왕으로 기억됐을 것이다.
이에야스가 기다림과 인내의 대명사로 통해지는 것에 반해, 협천자(挾天子)를 놓친 원소가 우유부단함의 아이콘으로 기억되는 것은 이에야스는 오래 살았고 원소가 일찍 죽었기 때문이다. 동탁이 옹립한 헌제는 애시당초 정통성이 없었기에 그 시점 협천자의 득실은 그 누구도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고 관도대전의 패배는 원소의 세력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지도 않았다. 만약 둘의 수명이 정반대였다면, 둘에 대한 역사의 평가 역시도 전혀 달랐을지 모른다.
만약 바깥에 보여줄 어떤 결과가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자신에게 강연료를 지급하고 성공담을 말해달라는 그 강연에서, 어차피 다 운에 불과하다고 말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이런 자기 PR의 시대라면 이룬 것을 과장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모든 것을 솔직히 드러낼 필요도 전혀 없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자기 자신은, 본인이 이룬 것이 운인지 실력인지 혼동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기 PR을 잘해서 남에게 자신을 비싸게 팔아먹는 것과, 스스로에게 엄격하고 늘 주의하는 것은 전혀 별개의 쟁점이며 또한 양립할 수 있다. 요컨대 인생은 타인에게는 결과이지만 자기 자신에게는 과정이다.
한화 감독 부임 전 김성근 감독은 오피니언 리더로서 비단 야구계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던 인물이었다. 아마 그가 인천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나갔다면 무리 없이 당선됐을 것이다. 하지만 한화에 부임하고 그는 모든 것을 잃었다. 지난 날 자신이 거둔 성공이 실은 상당 부분 운이었다거나, 이제 나이가 들어 전만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겸손히 돌아보았다면 어땠을까? 사람들은 그를 야신(野神)이라고 불렀다. 물론 자기 입으로 그걸 야매였다고 말하고 다닐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본인 스스로는 그것이 허명에 불과할 수도 있음을 늘 잊지 말았어야 했다. 자기 한계를 정확히 알고 적당히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 현명한 자이다.
오다 노부나가의 일화이다. 젊은 시절 그는 무모한 기습 작전을 펼쳤고 우연찮게 적장과 조우하여 그를 죽였다. 리더를 잃은 적군은 혼란에 빠졌고 그는 4배나 많은 적을 무찔렀다. 스스로 성공에 도취될 법 하건만 그는 그런 위험한 전략을 다시는 쓰지 않았다. 그 날 이후 오다 노부나가는 지독할만큼 철저하게 준비해서 적보다 다대한 병력을 집결해 승리하는 병법의 정석을 지켜 천하통일의 기틀을 닦았다. 율곡 이이는 인생의 3대 불행을 '초년출세' '중년상처' '노년빈곤'으로 정의했는데, 아마 그것은 젊은 날의 성공이 오만이라는 독으로 작용해, 끝내 큰 실패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온전히 자기 힘만으로 이루는 것은 없다. 오다 노부나가는 젊은 날부터 자신이 이룬 성과보다는 과정을 담담히 살폈기에 가 일본사에 손꼽히는 영웅으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 썼다. 무언가 이루었다고도, 앞으로 대단할 걸 이룰 수 있다고 장담도 할 수도 없다만, 한 줌 작게나마 손에 쥔 것이 생길 때 우쭐해지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나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늘 잊지 않기를.
위를 보는 사람도, 아래를 보는 사람도 자신의 삶에서 제각각 최선을 다했고, 실은 그 차이는 인간이 의지로 갈린 것이 아닐 수 있었음을 기억해두기를.
인생은 자신에게는 결과가 아니라 온전히 과정이라면, 늘 초심을 잃지 않고 과정을 살필 수 있기를. 결과가 좋아도 과정이 나쁘다면 늘 반성할 수 있는 지혜를, 반대로 결과는 나빠도 내가 잘 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초조해하지 않을 수 있는 담대함이 있기를.
그리고 결과란 애시당초 내 것이 아니니, 그 과정만을 즐길 수 있기를. 무엇이 온다고 해도 두려워하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