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contest, 독서경연대회] <천국에서> (김사과, 2013, 창비)

@oldstone 님의 독서경연 대회 소식을 듣고 독서감상문 한 편 올립니다. 김사과 작가의 2013년작 장편소설 감상문 입니다. 감상문이라 경어체는 쓰지 않았습니다. 되게 재미있고 시간 술술 가고 어쩐지 부끄러워지는 좋은 소설입니다. 추천!


천국에서

         김사과 / 2013 / 창비



뉴욕에서 어학연수를 마치고 돌아온 뉴욕병 걸린 20대 초반 여대생의 연애 이야기. '어두운 힙스터의 터널' 한복판에서 힙하지만은 않은 불안한 청년들이 성장하는 이야기. IMF 전후 한 가정사를 통해 본 한국형 양극화 현상 이야기. 기득권에 편입되려 발버둥치지만 몰락밖에 남은 것이 없는 붕괴된 중산층 이야기. 진짜인지 가짜인지 구분 안가는 더러운 어른과 더러운 어른이 되어갈 청춘의 이야기. 소설인듯 르포인듯 주위에 정말 있을 것 같은, 내 어린 시절도 어느정도 스치는, 그래서 더 서늘한 한국 현대 젊은이들 이야기.

다양하게 읽힐 수 있고 그 어떤 면으로 봐도 지적이고 독특하며 명료한 소설이다. 작가 김사과는 힙스터에 대한 칼럼으로 먼저 접했었는데, 글 참 잘쓴다고 감탄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소개해준 친구는, 이 작가가 에세이집을 내는 것을 보고 싶다고 했었는데, 소설을 읽고 나니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간다. 서사보다,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능력이나 현실을 분석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이렇게 뇌 속에 구름처럼 떠도는 생각들을 글로 훌륭하게 뽑아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건 대체 어떤 기분일까? 만약 이 작가의 에세이집이 나온다면 분명 읽어보리라.

주인공 '케이'(경희라는 이름은 후반부에야 나온다. 이또한 의도적이겠지)의 부모는 호황기 흐름을 잘 타고 잠실의 신흥 부촌에 안착한다. IMF 때 사업이 망하자 인천의 단칸방에서 지내며 다시금 '서울'로 돌아오고야 말겠다는 의지로 결국 서울 성수동으로 재입성한다. 그리고 몇년만에 '케이'가 만난 고등학생이 된 '잠실 친구들'은 "성수동은 저평가 된" 지역이라는 부동산 품평을 하는 아이들로 성장해있다.

이런 디테일들은 너무 적나라하고 또렷해서 어쩐지 부끄러워질 정도다. 이 책의 아주 많은 부분이 날카로운데, 2013년에 씌여진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매일매일의 오늘자 뉴스에 이 소설이 건드리고 지나갔던 내용들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하필 많은 부분 중 잠실친구들 부분을 리뷰에 쓰는 이유는, '잠실나루역, 잠실 새내역'의 개명에 관한 기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오직 돈에 의한 가치가 명분이 되는 사회에 살고 있고, 앞으로 더 가속화되면 됐지 흐려지진 않을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건 참 슬픈 일이다.

전반적으로 우울한 분위기이고, 한국에 대한 혹평들 대부분이 맞는 말이라 반박할 여지가 별로 없는, 답없는 자화상같은 소설이다. 왠지 재미없을것 같아 보이지만, 의외로 술술 읽힌다. 하루 쉬는 날 오후에 책을 손에 잡았는데, 그 날 밤에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다.

좀 아쉬웠던 건, 갑자기 수족관을 나가겠다며 희망찬 경희씨의 모습으로 마무리되는 끝맺음이다. 그녀가 불행하길 바라는 것은 아닌데 그냥 너무 뜬금없다. 주인공으로써 책 한 권 내내 계속 붙어있다보니 연민이 들기는 하지만, 지원의 누나인 지은의 독설이 냉정한 분석이기도 한 캐릭터라... 한 십년쯤 후에 주인공과 다른 등장인물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도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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